끝없이 오르던 미국 주택 가격이 10여 년 만에 처음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RED)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의 20개 대도시 주택 가격은 전월 대비 0.44% 하락했다. 20개 대도시의 주택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2년 3월(-0.3%) 이후 10년 4개월 만이다. 같은 달 미 전역의 주택 가격(-0.3%) 역시 2019년 1월(-0.2%) 이후 3년 6개월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미국 주택 시장 선행지표이자 체감지표인 ‘전미주택건설협회(NAHB)주택시장지수’ 9월치도 시장 예상(47)을 밑도는 46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초만 해도 80이 넘던 NAHB 지수의 급락세는 향후 주택 경기 위축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택 가격 상승세가 꺾인 직접적인 원인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 모기지 금리(30년 만기)는 지난달 말 기준 연 6.7%까지 올랐다. 올해 초 연 3%대 초반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 신규 주택 공급이 크게 늘면서 미국은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은 수요자 우위 시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주택 가격 하락으로 월세 가격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데이터업체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지난 8월 미 전역의 아파트 임대료 호가는 전월보다 0.1% 하락했다. 임대료 호가가 떨어진 것은 2020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산업은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7%(39억달러)를 차지할 만큼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주택 가격 하락은 경기에 부정적 신호로 해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된다는 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최근 주택 가격 하락을 반기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2.4%나 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인플레이션이 잡힐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이유가 줄어드는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달 FOMC 후 물가 압력과 관련해 주택 시장의 안정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주택 가격 하락이 당장 이번 달부터 인플레이션을 크게 끌어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 계약 시차가 있는 데다 전월이 아닌 전년 기준으로는 주택 가격 상승률이 여전히 두 자릿수를 기록할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쯤 주택 가격 하락 효과가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중고차, 원유 등 미국 물가 상승을 주도하던 상품들이 최근 가격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주택 가격마저 잡히기 시작하면서 내년 초에는 물가 압력이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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