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신음한 가운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주목받은 나라가 있다. 한때 한국·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대만이다. 대만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대부분이 마이너스 성장한 재작년 3.4% 성장률을 기록했고, 작년에는 6.6%로 급성장하며 처음으로 1인당 GDP 3만달러를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펴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대만 경제가 올해도 3.2% 성장해 한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대만 부상(浮上)의 주요 비결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코로나 방역 성공을 꼽는다. 이와 관련해 대만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왕메이화(王美花) 경제부 장관은 WEEKLY BIZ와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미·중 무역 전쟁과 코로나를 통해 대만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며 “‘칩4 동맹(미국·한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 지위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허청장 출신인 왕 장관은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하던 2016년 경제부 차관을 맡았고 2020년 6월 장관으로 임명됐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장관 인터뷰… “고성장 비결은 방역과 반도체”
왕 장관 역시 높은 경제성장률의 첫째 비결로 코로나 초기 방역을 꼽았다. 대만은 2020년 1월 말 중국 우한 주민의 대만 입국 금지를 시작으로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중국 전역으로 금지 대상을 확대했다. 마스크가 부족해지자 제조업체들과 협력해 하루 200만개이던 생산량을 40일 만에 2000만개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19년 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심각성을 발 빠르게 판단한 것이 주효했다”고 했다.
코로나로 반도체와 전자 부품 수요가 급증한 것도 기회가 됐다. 대만에는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TSMC가 있고, 세계 3위 업체 UMC도 보유하고 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미디어텍과 노바텍, 리얼텍 등이 세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따르면 대만의 매출액 10억달러 초과 반도체 대기업 수는 28개사로 한국(12개사)의 2배 이상이다.
이런 쟁쟁한 기업들을 앞세워 대만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한국을 밀어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 대만의 수입 시장 점유율은 2018년 28.9%에서 올해 1~7월 35%까지 올라갔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24.4%에서 19.6%로 떨어졌다. 왕 장관은 “대만의 대중 수출 가운데 반도체 비율은 2015년 32%에서 2021년 50%로 증가했다”며 “대만 반도체 산업의 경쟁 우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다.
대만은 1970년대부터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왔다. 1973년 국책 연구 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 설립을 시작으로 1980년 대만의 첫 번째 반도체 기업이 세워졌다. 1985년엔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일했던 모리스 창이 정부 요청을 받고 귀국해 ITRI 원장을 맡았다. 이후 그는 설계 없이 생산만 맡는 ‘파운드리’라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구상해 TSMC를 탄생시켰다. 왕 장관은 “현재와 같은 반도체 생산의 전 세계적인 분업화는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식”이라며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 수준을 계속 높이고 올해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2025년 2나노미터 양산에 돌입해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인재 양성으로 훗날의 경쟁에도 대비하고 있다. 왕 장관은 “미래에도 반도체 인재 수요는 늘어나고 공급은 부족할 것”이라며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게 작년 만든 ‘국가 중점 영역 산학 협력 및 인재 육성 혁신 조례’다. 국립대와 기업의 반도체 연구 대학 공동 설립, 반도체·AI·기계·소재 등 국가 중점 영역의 정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지난 8월까지 국립대학 6곳에 반도체 연구 대학이 새로 설립됐다.
◇“중국 반도체 개발 병목 현상 처해”
최근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 합류를 놓고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칩4는 올 3월 미국이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한국과 일본, 대만에 제안한 동맹으로, 대만은 일찌감치 합류 의사를 밝혔다. 우리나라는 참여를 놓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오다 지난달 말 열린 ‘칩4 예비회의’에 일단 참석한 상태다.
왕 장관은 “대만은 (칩4 동맹으로) 공급망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협력을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길 원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상호 간의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도 강화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칩4 동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이른바 진영 대결과 관련해서는 지난달 개최된 예비 회의에서 ‘누구를 배제하자’는 등의 주제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올 들어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수요도 줄고 있다. 이에 대해 왕 장관은 “대만도 1~7월 패널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하는 등 일부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다만 전반적으로 대부분 산업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무역 흑자도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는 수십년 동안 막대한 보조금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왔지만 여전히 개발 병목 현상에 처해 있다”며 한국과 대만 등 경쟁자들을 단시간 내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대만 경제부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10.4% 성장하고, 이 가운데 대만의 성장률은 17.5%로 더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고환율에 대해서도 다소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왕 장관은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가격 부담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수 있다”며 “다만 대만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대를 유지하고 있어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과의 경제 교류·협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대만 정부는 ‘5+2(사물인터넷·신재생에너지·스마트기계·바이오메디컬·방위+순환경제·신농업) 산업 혁신 정책’ 등을 통해 반도체 외에도 다른 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산업 발전의 트렌드인 탄소 중립 과정에서 한국의 관련 전략과 대응 방안을 참고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