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올해 전 세계 투자자들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주식, 부동산은 물론 채권까지 거의 모든 자산군의 가격이 동반 폭락하면서 마땅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었다. 안전 자산이라는 금(金)도 매서운 긴축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연초 이후 금 가격은 10%나 주저앉았고, 글로벌 국채의 평균 가격도 20% 넘게 하락했다.

보통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시장 변동성이 높아지면 안전자산인 금이나 국채에 자금이 몰리며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금리가 순식간에 너무 빨리 오르다 보니 되레 금과 국채의 단점이 부각됐다. 금은 금리 인상기에 이자도 배당도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국채는 고정된 표면금리가 시장 금리 대비 너무 낮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졌다. 결국 일부 원자재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자산은 달러(수익률 18.3%)가 유일할 정도다. 미국 블룸버그는 현 상황에 대해 “주식·채권 중심의 전통적 자산배분 전략이 무너진 총체적 난국”이라고 평가했다.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 물가 상승)에 시달렸던 1970~1980년대 포트폴리오를 분석한다면 반등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각종 지표를 토대로 인플레이션 추이와 통화 정책의 향방을 예측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자산을 골라낼 수 있다. WEEKLY BIZ가 ‘투자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는 자산배분 전략을 정리했다.

그래픽=김의균

◇물가 ‘피크아웃’ 시점을 노려라

올해 시장을 초토화한 주범은 ‘인플레이션 폭탄’이다. 공급망 대란과 리오프닝(코로나 이후 경제 활동 재개),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가세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40여 년 만에 최고치까지 밀어올렸다.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면 금리 인상, 실질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 기업 실적 악화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경기가 하강하고 투자 손실이 커진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PGIM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지난 50여 년간(1973~2021년) 연평균 CPI 상승률이 4% 이상인 고물가 시기에 미국 주식·국채의 평균 수익률(실질)은 각각 -1.9%, -0.1%였다. CPI 상승률이 4% 미만인 저물가 시기의 평균치(각각 11%, 4.1%)를 크게 밑돈다. 주요 자산 중 원자재만이 고물가(7.2%) 상황에서 저물가(1.2%) 때보다 성과가 좋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같은 고물가라고 해도 물가가 상승 추세인지, 하강 추세인지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NH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1970년 이후 미국 CPI가 5%를 상향 돌파한 경우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제외하고 네 번 있었는데, 이 기간 모두 주가는 크게 하락하고 채권 수익률은 한 자릿수에 그치거나 마이너스였다. 반면 CPI 그래프가 정점을 찍은 뒤 2%대까지 내려간 경우(금융위기 제외하면 네 번)에는 주식·채권 수익률이 모두 10~20%대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잦아들자 경기 개선과 통화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쌓이면서 자산 수익률이 반등한 것이다.

이번에도 물가가 2%를 넘어 상승하는 동안 어김없이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CPI가 지난해 3월 2.6%에서 올해 6월 9.1%까지 치솟는 동안 주식과 채권 수익률은 각각 -5.41%, -6.99%를 기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6월 고점을 기록한 뒤 점차 하락(피크아웃)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뚜렷해진다면 투자 수익률은 점차 개선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81년을 주목하라

물가 피크아웃에 대비해 자산배분 전략을 짤 때 참고할 것은 1981년이다. 그때와 지금의 경제 상황이 흡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힘입어 미국 CPI 상승률은 1980년 3월(14.6%) 정점을 찍은 뒤 1981년 6월(9.7%)까지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하지만 당시 연준은 물가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았다고 보고 1981년 상반기 내내 긴축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현 연준도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최근 3개월(올해 7~9월) 연속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8%대로 높은 수준인 데다 소비와 고용도 견고한 편이어서 금리 인상을 감당할 체력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미 금리 선물 시장에 반영된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치는 내년 6월까지 계속 상승해 4.50~4.75%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처럼 물가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금리 인상의 여진이 이어지는 기간에는 주식보다 채권 수익률이 먼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연준 금리 인상 사이클의 막바지였던 1981년 상반기에도 주가는 여전히 부진(수익률 -6.61%)했지만 채권은 회복 기미(0.3%)를 보이기 시작했다. 채권 금리가 오를 대로 오르자(채권 가격 하락) 더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본 투자자들이 채권을 저가 매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리가 인하 사이클에 접어든 초기에도 주식보다는 채권 투자가 재미를 봤다. 1981년 하반기 연준이 금리 인하로 전환했지만 투자자들이 이를 경기 침체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주가는 11.87%나 빠졌다. 반면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로 채권은 12.44%라는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1982년에는 주가도 반등(15.13%)을 시작했는데, 이때도 채권 수익률이 30%를 넘기며 주식을 압도했다.

1981년 사례를 대입하면 내년 상반기 채권부터 수익률을 서서히 회복하고, 주식은 2024년 초쯤 돼서야 반등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NH투자증권 하재석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높아진 금리 수준(채권 가격 하락)으로 인해 매력이 커진 한·미 국채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며 “다만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채권의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능력이 취약해진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우량기업 단기채 위주로

채권 투자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모든 채권이 유망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만기가 짧은 단기채를 중심으로 선진국과 우량 기업 채권을 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기준 금리가 상승해 채권 금리가 추가 상승(채권 가격 하락)하더라도 만기까지 보유하는 전략으로 원금과 표면 이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만기가 10년 이상으로 긴 장기채는 비교적 낮은 표면 이자에 오랜 기간 묶여 있어야 하므로 단기채에 비해 손해다.

현재 단기채와 장기채 금리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점(평탄화)을 감안해도 단기채 투자가 낫다. 지난달 말 기준 만기 3년 미만의 미국 회사채 평균 수익률은 연 5.2%로 만기가 10년 이상인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5.9%)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 채권 시장 변동성이 클 때는 단기채가 장기채보다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만기 1~2년 이하 단기채를 추천하는 이유다. 미국 3대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업체인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매슈 바톨리니 연구원은 “급격한 금리 상승은 만기가 짧은 투자 등급(IG) 회사채의 수익률에 큰 도움이 됐다”며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IG 회사채의 실질 수익률이 연 5%를 넘었고, 이는 지난 20년 평균 수익률보다 2.25%포인트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흥국이나 투기 등급에 해당하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은 만기가 짧고, 금리가 높아도 피하는 것이 낫다. 신흥국의 경우, 달러 초강세로 재정 건전성이 취약해질 확률이 높고,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 투기 등급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원금 손실 위험성이 크다.

◇美·印 증시도 주목할 만

주요 자산 중 채권 쪽이 먼저 반등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식 또한 일부 시장과 종목에 한해서는 포트폴리오에 꼭 포함시켜야 할 자산이다. 현재 경제 상황은 1980년대 초처럼 실업률이 두 자릿수까지 치솟고, 큰 폭의 역성장을 할 만큼 최악은 아니다. 또 경제 및 금융 시장 환경이 크게 다른 40년 전 성과를 현 시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미국 자산운용사 다나 인베스트먼트의 마크 미어스버거 CEO(최고경영자)는 “현 국면에서는 변동성이 적고 기회가 많은 채권 쪽에 투자의 무게가 더 실릴 수 있다”며 “주식은 보유 비중을 낮추라는 것이지 강력한 성장성과 회복력을 보유한 질 좋은 기업을 매도하라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가격 전가력이 높고, 필수 소비재를 판매하는 대형 가치주는 투자 여건과 관계없이 주가가 오를 여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령 대표적인 소비재기업 P&G는 강달러와 판매량 감소에도 제품 판매 가격을 9% 인상해 매출과 이익을 방어했다. 반대로 테슬라처럼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 성장성 등을 보고 투자하는 성장주는 통상 금리가 상승하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기업의 미래 가치가 작아지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유망 주식투자 지역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선뜻 떠올리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유럽·중국 등 다른 주요 지역에 비해 경기가 양호한 데다 현재 거의 유일한 안전자산인 달러로 투자할 수 있어 환차익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러 가치가 20여 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은 상황이어서 향후 미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강달러로 올해 2분기 유럽·중동·아프리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급감했고, 농기계 업체인 애그코는 강달러로 인한 환차손으로 상반기 해외 매출이 8.5% 감소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달러 인덱스가 현 수준 이상으로 높았던 2001~2002년에도 미국 주가가 큰 약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지역은 인도다. 인도는 높은 성장 잠재력에 미·중 갈등 반사 이익까지 누리면서 올 들어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올 상반기 인도 시장으로 쏠린 직접 투자금 규모는 약 320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260억달러) 대비 23%가량 늘었다. 식료품을 제외한 인플레이션이 지난해부터 6~7%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어 기준금리가 연초 대비 크게 높아지지 않은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인도 센섹스 지수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3.8%로 미국 S&P 500(-7.6%) 대비 훨씬 양호한 실적을 냈다.

◇원자재·리츠는 ‘글쎄’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원자재, 리츠 등의 대체 자산 투자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올 상반기 급등세를 보였던 원유·농산물은 글로벌 침체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하반기에만 10~20% 넘게 하락했다. 구리·알루미늄 등의 주요 산업 금속도 전체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부진 등으로 전망이 어둡다. 대표 안전자산인 금은 실질금리가 급등하면서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증가해 가격이 연초 대비 10% 넘게 하락했다. 리츠 역시 모기지 금리 급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그나마 일본, 싱가포르 리츠의 경우 국채 금리(10년물 기준) 대비 배당 수익률이 3%포인트 이상 높아 금리 상승의 부담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지역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개별 종목이나 상품 투자보다는 안정성이 높고, 거래가 용이한 ETF를 택할 것을 권한다. 예컨대 단기채를 담고 싶다면 미국 1~3년물 국채를 추종하는 ETF인 ‘슈왑 숏텀 US 트레저리(종목명 SCHO)’나 투자등급(IG) 기업이 발행한 단기 회사채를 담는 ‘뱅가드 숏텀 코퍼레이트 본드(VCSH)’에 투자하고, 미국 대형 가치주를 겨냥한다면 미 증시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하는 대형 종목 중에서 가치주를 골라 투자하는 ‘뱅가드 메가 캡 밸류 인덱스 펀드(MGV)’에 투자하는 식이다. 정확히 저점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립식으로 조금씩 투자금을 쌓아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KB증권 신동준 WM솔루션총괄본부장은 “우량한 국가·기업이 발행하는 짧은 만기의 채권에 투자하면서 높은 이자를 챙기고, 월·분기별로 정해진 수익이 들어오는 ‘인컴형’ ETF나 ELS(주가연계증권), 유망 리츠 등을 선별해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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