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금(金)이 역대급 인플레이션에도 맥을 못 추자 관련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아이디어 중 하나로 꺼내든 것이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디지털 금 거래 플랫폼이다.

국제 금광 기업들의 연합체인 세계 금협회(WGC· World Gold Council)는 ‘골드 247′이라는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 금괴를 추적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금괴와 연동한 디지털 토큰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쉽게 금을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데이비드 테이트 WGC CEO(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에 “디지털화는 더 많은 투자자가 쉽게 금을 보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며 금 거래의 디지털화가 금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1kg짜리 순금바. /로이터

금을 매개로 한 투자 상품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시가총액이 51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 금 현물 투자 ETF ‘SPDR 골드 셰어즈(GLD)’도 있고, 팍스골드(PAXG)나 테더골드(XAUT)같이 금 가치와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도 있다. 하지만 이런 투자 상품들은 실물 금과 직접적인 교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간접 투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개인 투자자가 금괴에 직접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국제 금 시장 거래 단위인 골드바의 거래 기준은 미국이 100온스(약 3.11㎏), 영국은 400온스에 달한다. 런던 금 시장에서 골드바 하나를 사려면 65만달러(약 9억2800만원)가 필요하다.

이에 금 소유권을 디지털 토큰으로 나눠 개인 투자자도 쉽게 사고 팔 수 있게 한다는 게 WGC의 아이디어다.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금을 이용한 자금 세탁이 어려워진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WGC가 이런 아이디어를 꺼내든 것은 금이 다른 자산에 밀려 과거의 위세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디지털 금’을 자처한 가상 화폐 비트코인에 위협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안전 자산 명성을 되찾는 듯했으나 ‘킹달러’에 밀려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초 온스당 2043.3달러를 찍었던 국제 금값은 이후 약 20% 하락해 지난 24일 기준 1663달러를 기록 중이다.

실물 금 소유권을 24시간 거래한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11조달러(약 1경5697조원) 규모에 달하는 국제 금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금 거래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금 선물 거래를 가장 많이 처리하는 JP모건체이스와 HSBC홀딩스가 골드 247 참여를 거부하면서 벌써 프로젝트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온라인 귀금속 전문 거래소 불리온볼트의 에이드리언 애시 리서치 책임자는 “금은 형태와 보관 위치가 중요하다”며 “금을 디지털화하면 실물 자산이 추상화되고 투자자들은 결과적으로 (금이 아닌) 토큰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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