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발매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의 솔로 앨범에는 실물 CD가 없다. 종이 앨범 안에 포토카드와 카드 홀더(카드 보관 용품), QR코드만 들어있고, QR코드를 찍어 수록곡과 포토북을 디지털로 즐기는 구조다. 아이돌 앨범이 보통 플라스틱 CD와 포토북 같은 부속물로 이뤄진 것과 대조적이다. 소속사인 하이브 측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길 원하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적용되는 앨범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친환경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K팝을 바꾸고 있다. 작년 전 세계 K팝 팬들이 모여 만든 기후 행동 단체 ‘케이팝포플래닛’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K팝 시장이 기후 위기 등을 고려해 친환경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다연씨는 “각각 1만명 이상의 온라인 청원을 받아 엔터테인먼트사와 음원 스트리밍 업체에 전달했다”며 “엔터사에는 실물 앨범 문화 개선을, 스트리밍 업체에는 데이터 센터 운영 등에 쓰이는 에너지를 100% 재생 에너지로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른바 ‘플랫폼 앨범’이라 불리는 CD 없는 앨범이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에 따르면 판매량 1~400위 기준 2017년 1693만장이던 국내 발매 앨범 판매량은 작년 5709만장까지 급증했다. 팬 규모 자체가 증가하기도 했지만 팬 사인회 응모나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한 사람이 수십 장씩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소장용으론 1~2장만 보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필요한 쓰레기가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팬덤 목소리가 커지면서 세븐틴 등 다수 아이돌 그룹이 실물 앨범과 함께 플랫폼 앨범을 같이 내기 시작했다.
친환경 소재로 제작되는 앨범도 늘고 있다. YG는 지난 9월 나온 블랙핑크 앨범에 국제산림관리협회(FSC) 인증을 받은 용지, 자연 분해가 쉬운 콩기름 잉크 등을 사용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 등도 앨범 제작에 친환경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음반 판매량 집계 시스템 써클차트를 운영하는 음콘협은 앞으로 플랫폼 앨범이나 친환경 소재로 만든 앨범 등의 판매량을 따로 집계해 ‘클린 차트’를 만들겠다고 했다.
기업 운영에도 환경을 내세우는 분위기다. JYP는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인 한국형 ‘RE100′에 참여해 지난 6월 인증을 받았다. 지난 8월엔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중 처음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7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에 가입했고, 하이브는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설치했다.
일각에선 기획사들의 친환경 마케팅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포토카드를 무작위로 넣는 방식 등으로 팬들이 불필요한 앨범을 사게 만들면서 친환경을 내세우는 게 모순이라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랫폼 앨범이나 친환경 앨범 제작이 늘어나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 “다만 랜덤 카드 같은 상술로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문화도 같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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