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억누르는 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매우 무딘 도구(very blunt tool)’일 뿐이다. 개방적인 이민정책이 물가를 잡는 데 더 효과적이다.”(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최고경영자)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를 잡을 해법으로 이민(移民)을 확대해야 한다는 미국 내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력 부족→인건비 상승→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들여와야 한다는 얘기다. 마티 월시 미국 노동부 장관도 지난달 “노동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민 정책을 개혁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나 경기 침체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며 문호 개방을 서두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도 인력 부족과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에 역대 가장 많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연 노동시장 개방은 인플레이션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일러스트=김영석

◇구인난이 부른 인플레이션

미국에서 이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는 것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구인난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1010만건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은 580만명에 불과하다. 구직자 1명당 1.7개의 일자리가 있는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발적 퇴사자가 급증한 반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기업들의 인력 수요가 늘어나며 고용시장 불균형이 심화된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이민 억제 정책도 노동력 부족에 일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외국인의 영주권과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정책을 폈다. 그 여파로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 1년간 미국에 입국한 이민자는 24만4600여 명에 그쳤다. 2009년 이후 매년 100만명 정도의 이민자가 미국에 유입된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로 급감한 셈이다. 미국 UC데이비스 조반니 페리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이 없었다면 생산연령(15~64세)의 외국인 근로자가 미국 내에 240만명 더 많았을 것으로 추산했다.

노동력 부족이 본격적으로 임금 인상으로 나타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미국의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5월만 해도 0.3%에 그쳤지만 8월 4.3%, 10월 4.6%, 12월 4.8%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5%(6월)→5.4%(8월)→5.4%(10월)→6.8%(12월)로 치솟았다. 지난해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다급하게 금리 인상으로 전환한 것도 임금과 물가의 동반 상승세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임금·물가 동반 급등은 좀처럼 사그라질 기세가 아니다. 임금 상승률은 10개월 연속 5%를 넘었고, 물가상승률도 여전히 8~9%를 넘나들고 있다. 그러자 임금 상승 압력을 낮추려면 외국인 근로자를 대거 들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5.7%를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는 ‘3D(기피) 업종’을 중심으로 악화한 인력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빈 일자리 수는 23만4000개로, 지난 2018년 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건비 부담도 가중돼 2020년 1.4%, 2021년 2%였던 근로자 평균 임금상승률이 올 들어 5.3%로 껑충 뛰었다. 특히 주로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는 시간제 근로자 임금은 9.1%나 뛰었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 노동자 감소가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취업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 수는 11만4000여 명이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에는 5만2000명으로 줄었고, 지난해도 6만7000명에 그쳤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조선·건설·농축산업계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자 결국 정부는 내년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E-9 비자) 도입 규모를 11만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물가 잡는 데 특효” vs “효과 미미”

많은 전문가는 외국인 근로자 증가가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배선영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정치나 사회 요인을 배제하고 경제학 자체로만 보면 이민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오는 두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인 ‘비용 인상(cost-push)’을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특히 저숙련 노동자가 생산하는 품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카토 연구소의 데이비드 비어 연구원은 “미국이 지금보다 약 12만5000명의 농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면 18억달러 이상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어 농산물 가격이 그만큼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이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실증 연구도 있다. 퍼트리샤 코르테스 MIT 교수가 2005년 발표한 ‘저숙련 노동자 이민이 미국 물가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정원사나 가사도우미 등 저숙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민자 비율이 10% 증가하면 저숙련 업종 이민자의 임금은 8%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저숙련 업종에 종사하는 원주민(미국인)의 임금도 0.6% 하락했다. 이로 인해 해당 업종의 서비스 가격은 1.3% 내려갔고, 비수입품 가격도 0.2% 하락했다. 코르테스 교수는 “비수입품 가격 하락에는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임금 하락이 끼치는 영향이 50~8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 전반적인 물가 하락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미국 이민센터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근로자가 주로 종사하는 저임금 업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2%다. 건설·토목(2.2%), 청소·유지 보수(1%), 음식·서빙(1.1%) 등이다. 만약 이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 임금이 10% 떨어지더라도 전체 소비자물가는 2.1% 정도만 낮출 수 있다는 게 센터의 분석이다. 스티븐 카마로타 연구원은 “저임금 종사자가 일하는 직종이 미국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작기 때문에 전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이민은 인플레이션을 크게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로자 평균 임금에 비해 최저임금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외국인 노동력 공급 효과가 더 미미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외국인 근로자 임금도 함께 오른 상태라 임금과 물가 상승 억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일부 잠식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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