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도 세계 증시는 물가와 금리에 울고 웃었다. 한때 물가가 정점을 지났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며 S&P500지수는 4주 연속 랠리 끝에 8월 중순 4300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비관론이 지배하며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9월 말에는 3500선까지 밀렸다.

혼조세가 이어지자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큰손’들도 증시의 바닥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지난 9월 중순 “향후 미국 증시가 최대 25%까지 급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운드화 공매도로 영란은행을 굴복시켰던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스탠리 드러켄밀러 역시 “주식은 앞으로 10년간 횡보할 것”이라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반면 워런 버핏도 인정한 가치투자계 거물인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캐피털 회장은 지난 7월 본지 인터뷰에서 “단정할 수 없지만 ‘비교적 싼 시점’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때”라며 분할 매수를 추천했다. 과연 이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1억달러(약 1340억원) 이상을 굴리는 900개 기관투자자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분기마다 제출하는 투자 보고서(Form 13F)를 WEEKLY BIZ가 분석했다.

자료=13F 보고서

◇반등 대비한 드러켄밀러

‘분산 투자의 귀재’ 레이 달리오는 지난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최고투자책임자(CIO) 자리에서 내려왔다. 지난 분기는 사실상 달리오의 마지막 투자 결정이었다. 달리오의 마지막 포트폴리오는 증시 추가 하락 전망을 반영하듯 매수보단 매도에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포트폴리오에 새로 추가하거나 지분을 늘린 종목은 361개이지만, 없애거나 지분을 줄인 종목은 678개나 됐다. 매수는 소비재 기업 등 경기 방어주에 집중했다. 미국 대형 제과업체 몬델리즈 인터내셔널 주식 231만주를 추가 매입했고, 이미 포트폴리오 비중 상위 2~4위 종목인 존슨앤드존슨과 펩시코, 코카콜라 주식도 보유량을 5~8%씩 늘렸다. 그 결과 전체 포트폴리오 중 28.71%가 필수 소비재 종목으로 채워졌다.

반면 10년 횡보를 경고한 드러켄밀러가 이끄는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는 오히려 매수세로 전환했다. 지난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운용 자산 규모를 꾸준히 줄여온 그는 3분기에는 6개 종목을 빼는 대신 28개 종목을 추가하며 운용 자산을 늘렸다. 지난 분기 1억9900만달러어치 전량을 매도했던 아마존 주식도 90만6250만주(약 1억240만달러 상당)를 다시 사들였다. 이 밖에 7326만달러를 들여 식품 가공 기업 램웨스턴 주식(94만6800주)을 새로 편입시켰고, 제약사 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 주식도 18만7745주 매입하며 보유량을 확대했다. 포트폴리오 전체로 보면 경기 방어주인 필수 소비재(0%→4.21%)와 헬스케어(10.27%→13.74%) 비율을 늘리는 동시에 아마존처럼 경기를 타는 임의 소비재 비율을 공격적으로 늘린 것(19.09%→24.77%)이 특징이다. 반면 주가가 충분히 오른 셰브론(14만140주)·코테라 에너지(27만3516주)·세노버스 에너지(23만1500주)·앤테로 리소스(73만6895주) 등 에너지 주식은 대거 처분했다.

◇하락에 베팅한 하워드 막스

11월 이후 강세장 전환을 전망했던 켄 피셔의 피셔 애셋 매니지먼트는 3분기 적극적인 매수를 자제하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우선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 중국 최대 기술기업 텐센트 주식은 보유량의 거의 전부인 98%(3939만8939주)를, 전자상거래 공룡 알리바바는 71%(1031만6884주)를 내다 팔았다. 가장 많이 들고 있는 애플 주식도 보유량의 9%(649만3537주)를 줄였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알파벳 A) 같은 빅테크 주식 보유량은 1~2%씩 소폭 늘렸고, 대표적인 기술주 ETF(상장지수펀드)인 ‘iShares Expanded Tech-Software Sector ETF(IGV)’도 487만4041주를 대량 매입했다. 2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며 빅테크 중 유일하게 선방한 애플은 일부 팔아 수익을 실현하고,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한 다른 빅테크 주식은 저가 매수(Buy the dip)한 것으로 풀이된다.

분할 매수를 추천했던 하워드 막스의 오크트리는 뜻밖에 미국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S&P500을 추종하는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 풋옵션 22만5000주를 추가로 담았다. 풋옵션은 향후 주식을 팔 권리를 담은 파생상품으로, SPY의 가격이 하락할수록 수익이 커진다. 미국 증시 추가 하락에 베팅한 셈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예상한 듯 관련 주식도 내다 팔았다. 미국 부동산 기업 미스터 쿠퍼 그룹 콜옵션 52만주와 부동산 투자 신탁 에이커스 커머셜 리얼티(전환사채) 2902만1000주를 전량 매도했다. 반면 광물 자원에 지분을 투자하는 기업 시티오 로열티스는 2억8599만5000달러를 들여 1293만5120주를 사들였다.

◇시장 재진입한 공매도 달인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 주식을 처음 포트폴리오에 담아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버핏은 총 41억달러(한화 5조4000억원 규모)를 들여 TSMC 지분 1.16%를 사들였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3분기 주식에 투자한 자금(90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경쟁자가 생기기 어려운 경제적 해자(垓子)를 가진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워런 버핏의 이번 투자를 두고 “전기차·자율주행·AI 등 앞으로 늘어날 반도체 수요와 TSMC의 독점력에 베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투자자문사 가드너루소앤드퀸의 톰 루소 파트너는 “세계가 TSMC 제품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믿는 것 같다”며 “일상생활에 필수가 된 반도체를 생산할 만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맞혔던 ‘공매도의 전설’ 마이클 버리의 포트폴리오도 눈에 띈다. 버리가 운영하는 사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는 지난 2분기에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지오그룹 한 종목만 남기고 모든 주식을 처분하는 등 증시 폭락에 베팅했지만, 3분기 들어 시장에 재진입했다. 지오그룹 주식은 302% 더 늘렸고, 홈쇼핑 회사인 큐레이트 리테일 그룹과 또 다른 교도소 기업 코어시빅, 로켓 제조사 에어로제트 로켓다인 등 5개 기업을 추가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이후 큐레이트 리테일은 시간 외 거래에서 6% 이상 급등했다. 다만 버리는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내가 얼마나 쇼트(공매도)를 쳤는지 당신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라고 밝혀 아직 공시되지 않은 쇼트 포지션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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