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그리고 위고비.” 지난 10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트윗에 이렇게 답했다. 머스크가 언급한 위고비(Wegovy)는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로, 작년 6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이후 미국 시장에서 수요가 폭발하면서 현재는 공급량이 달려 처방전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회사의 라스 프루어가르드 예르겐센 CEO는 “위고비의 어마어마한 수요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생활 습관 변화와 함께 전 세계 비만 인구가 급증한 데다,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다. 기술 발전으로 비만 치료제의 체중 감량 효과가 좋아지면서 ‘비만은 의지력의 문제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도 바뀌고 있다. 에이미 도넬란 로이터 칼럼니스트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제약사에 ‘현대판 골드러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차세대 블록버스터 신약 되나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지난 10월 FDA로부터 비만 치료제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심사) 권한을 부여받았다. 패스트트랙은 중요한 신약을 환자에게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 제약사는 FDA와 더 자주 소통하며 빠르게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일라이 릴리는 같은 성분을 이미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로 내놨는데, 이를 비만 치료제로도 승인받으려는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이 약의 체중 감량 효과가 20%가량으로 나타난 만큼, 정식 출시되면 연간 수십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위고비로 비만 치료 시장의 ‘게임 체인저’라는 평까지 들은 노보 노디스크는 주사 방식을 넘어 경구용(알약) 형태의 치료제도 연구하고 있다. 이 회사 주가는 위고비 출시 이후 최근까지 거의 2배로 뛰었다. 미국에선 위고비 물량이 달리자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을 처방받는 꼼수까지 벌어지고 있다.
위고비의 주요 성분은 세마글루타이드다. 음식을 먹으면 분비되는 호르몬과 유사하게 만든 약물로, 식욕을 감소시키고 포만감을 느끼게 만든다. 일라이 릴리의 신약 성분인 터제파타이드 역시 비슷한 원리지만,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해서 체중 감소를 돕는다. 이달 초엔 미국 제약사 암젠도 새로운 성분의 비만 치료제 임상 1상 결과를 공개하며 신약 경쟁에 뛰어들었다. 알티뮨, 아스트라제네카, 질랜드파마 등 다른 대형 제약사들도 비만 치료 신약을 개발 중이다.
마크 퍼셀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고혈압 치료제가 1990년대 300억달러 시장으로 급성장한 것처럼 현재 비만 치료가 주류로 이동하는 시점에 있다”며 “비만 치료제가 새로운 블록버스터 신약(연간 매출 10억달러 이상 의약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올해 24억달러에서 2030년 540억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은 질병” 인식 변화
전문가들이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장을 점치는 가장 큰 이유는 급증하는 비만 인구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율은 1975년 이후 거의 3배로 증가했다. 2016년 기준 과체중 성인 인구는 19억명 이상으로, 이 가운데 비만 인구는 6억5000만명에 달한다. 특히 미국의 비만 문제는 꽤 심각하다. 2019년 기준 미국 성인 비만 인구 비율은 43%에 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비만과 관련한 연간 의료 비용을 1730억달러(약 225조원)로 추산한다.
호주(30%), 영국(28%), 캐나다(25%) 등도 비만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비만율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을 기준으로 보면 5.9%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2020년에는 7.4%까지 늘었다. 국내 기준인 체질량지수 25 이상으로는 성인 인구의 40% 가까이가 비만으로 분류된다. 서구식 생활 방식이 확산하며 국내 비만율은 20년 전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비만을 질병으로 보는 분위기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미국의학협회(AMA)가 비만을 질병으로 선언했고, 작년 3월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비만을 ‘다른 비전염성 질병의 관문 역할을 하는 만성 재발성 질병’이라고 정의했다. 미국 의회는 작년 공적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 보장 범위에 다양한 비만 치료를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오스트리아에선 최근 보건 전문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비만 동맹’이 “건강보험 시스템에 비만 관리를 포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비만을 일종의 도덕적 타락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체중 감량 효과가 크게 개선된 것도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예컨대 노보 노디스크가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을 기반으로 2015년 출시한 삭센다는 하루에 한 번 주사를 놔야 하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68주 후 6% 정도 체중 감량에 그쳤다. 반면 위고비는 일주일에 한 번 주사로 같은 기간 15% 체중 감량 효과를 인정받았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비만 의학 전문가인 파티마 스탠퍼드 박사는 “비만약의 효과가 비만 수술과 비슷할 정도로 좋아지면서 비만 환자들이 약물 치료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법의 약 아냐... 비싼 가격도 한계
소셜미디어에서 여러 이용자가 주사기를 든 사진과 함께 체중 감량 경과를 공유하자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직 위고비가 출시되지 않은 나라에서도 이 약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국의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비만 치료제를 이용해 몸매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하지만 비만 치료제를 단기간에 살을 빼는 ‘기적의 약’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노보 노디스크의 영국 임상 책임자인 아비데 나제리 박사는 “비만 치료제는 마법의 다이어트 약이 아니며 빠른 해결책도 아니다”라며 “비만 환자가 위험한 수준에서 체중을 줄이고, 체중이 다시 늘지 않도록 습관을 만들 기회를 줄 뿐”이라고 했다.
가격 부담도 만만치 않다. 비만 수술과 달리 약물은 보험 적용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 위고비의 한 달 투약 가격은 1349달러(약 175만원)에 달한다. 사보험이든 국가 차원의 건강보험이든 마찬가지다. 리사 자비스 블룸버그 생명공학 칼럼니스트는 “비만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보험 보장 방식의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장이 예상하는 것만큼 높은 판매량을 보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