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찌 보면 협상의 연속이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더 올려달라고 조를 때도, 당근마켓에서 가격을 흥정할 때도, 집을 사고팔 때도, 부부가 가사 분담 몫을 정할 때도 일종의 협상을 한다. 협상의 기본 자세는 상대방의 관점과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원만한 협의가 이뤄진다면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거나 아예 협상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협상학에서 반드시 배우는 개념 중 하나가 바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다. 하버드대 협상학 강의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협상이 결렬되거나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나 플랜 B를 뜻한다. 강력한 바트나가 있다면 협상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협상에 목을 맬 필요가 없고 상대방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트나가 상대에게 먹히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을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상대방이 나의 제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어렵게 해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당선 비화에는 이 같은 바트나의 원리가 담겨 있다. 선거캠프는 그의 지방 유세 직전 큰 문제를 발견했다. 홍보 팸플릿에 넣은 루스벨트 사진의 저작권이 한 사진관에 있었는데 허락을 받지 않아 도용 소지가 있었고, 문제가 생긴다면 수백만달러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거캠프는 묘안을 짜냈다. 사진관에 팸플릿으로 홍보할 절호의 기회를 줄 테니 대가로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즉시 답변하라 재촉했다. 사진관은 250달러를 주겠다고 즉시 답신했다. 선거캠프는 팸플릿 사진을 홍보 기회로 바꿔 자신들에게 마치 다른 대안(다른 사진관과 협상)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고, 동시에 사진관에는 그들이 가진 대안이 ‘돈을 주지 않고 홍보도 하지 않음’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12년 선거 캠페인에 사용한 사진. 저작권 때문에 자칫 거액의 소송을 당할 뻔했으나 절묘한 협상 기술로 문제를 해결했다. /미국 의회도서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의 협상이 깨진 이유도 바트나에서 찾을 수 있다. 서방은 대(對)러시아 금융제재와 석유 수입 금지로 압박했지만, 러시아는 서방과의 협상을 포기하고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러시아에는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BRICS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 질서에 맞선다는 바트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서방은 협상이 깨졌을 때 택할 대안이 많지 않았다. 최근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60달러 가격 상한제라는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 역시 같은 이유로 효과가 불투명하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협상이 가장 어려운 상대는 다름 아닌 배우자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까닭도 있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도 큰 이유일 것이다. 친구는 마음에 맞지 않으면 다른 친구를 만나면 되지만, 부부는 아예 헤어지지 않는 이상 대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우자와 협상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넓은 배려심과 섬세한 대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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