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지난달 영국 콜린스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Permacrisis)’를 선정했다. ‘영구적인(permanent)’과 ‘위기(crisis)’의 합성어로, 불안정과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을 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지속적인 물가 상승, 정치적 불안정 등 세계가 맞닥뜨린 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콜린스 측은 “올해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매우 간결하게 요약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인플레이션, 부채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겹이 쌓여 나타난 현재의 위기는 해가 바뀐다고 해서 쉽사리 해소되기 어렵다. 그래서 세계 주요 경제 기관들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 중이다. 일각에서는 내년에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2023년이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의 파도를 넘어 반등을 모색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이들도 있다. WEEKLY BIZ가 이달 경제·경영 분야 석학, 글로벌 투자기관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가 13명에게 내년 세계 경제의 향방을 물었다.

◇물가 하락하겠지만... 속도는 ‘빅 퀘스천’

세계가 내년 경기 침체(recession)를 피할 수 있을까. 심각성과 시기, 지역 등에 대해서는 조금씩 의견이 달랐지만 경기 침체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영국 금융회사 AJ벨의 러스 몰드 투자책임자는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전통적인 경기 침체 신호로, 항상 맞는 건 아니었지만 신호가 잘못된 경우도 드물었다”고 했다. 보통 만기가 긴 채권의 금리가 만기가 짧은 채권의 금리보다 높지만, 경기가 악화한다는 우려가 확산하면 단기 채권보다 장기 채권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현재 미국 국채 시장에선 하반기 이후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마크 레빈슨 전 이코노미스트지 금융·경제 에디터(’더 박스’ 저자)는 “인플레이션을 줄이면 실업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유럽 등에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세계화는 국내 물가를 낮추면서 상대적으로 고통 없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중앙은행들의 노력을 도왔다”며 “하지만 내년엔 국제 무역이 취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란 하 유로모니터 이코노미 프랙티스 글로벌 총괄은 “내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술적 침체(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가 일어날 수 있다”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분명 둔화하고 있지만 내년에 얼마나 더,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하락할지는 여전히 ‘빅 퀘스천(big question)’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유럽 역시 지속하는 에너지 위기 탓에 인플레이션 정점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신흥국의 경우 내년 성장률 3.7%로 올해(3.4%)보다 나아질 것으로 봤다.

애덤 포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역시 “미국과 유럽은 실질 GDP(국내총생산)가 전년 대비 1%가량 줄어드는 완만한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과 일본, 인도, 브라질 등은 긍정적인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G20 국가 경제에서 금융 취약성이 나타나지 않았고, 내년 상반기 말쯤 금리가 정점에 달할 것임을 감안하면 2024년에는 성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마크 잰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좀 더 낙관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추가적인 경제적 충격이 없다면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쟁과 전염병의 여파가 줄어들고, 고용시장이 완화되고, 임대료가 정점을 찍고 내려가면서 주거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유가를 최대 변수로 꼽았다. 그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감안할 때 유가가 다시 급등할 위험이 적지 않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과 미국의 전략 비축유 고갈도 이런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만약 유가가 어떤 이유로든 다시 뛴다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고 경제는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가 내년에도 둔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경기 침체가 ‘상당한 기간 동안의 약한 경제성장’을 의미한다면 그 가능성은 30% 정도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임금 상승이 아닌 기업들의 이윤 확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소비가 예상외로 견고하자 기업이 가격 인상이란 방식으로 더 많은 비용을 고객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소비자들은 저축과 신용을 이용해 지출을 계속 해왔지만 이런 흐름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며 “수요가 둔화되면서 기업 이윤에 압박을 가할 것이고,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인 상황보다 더 빠르게 둔화할 수 있다”고 했다.

◇최대 변수는 푸틴

내년 세계경제를 좌우할 변수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이 내년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파타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와, 전쟁이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파악하기 힘든 변수”라고 했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도 “시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이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주요 관심사였다. 3년 가까이 ‘제로(0) 코로나’ 봉쇄 정책을 유지해온 중국은 이달 들어 조금씩 규제를 풀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란 하 총괄은 “코로나 봉쇄 해제와 함께 대규모 감염이 예상되는 데다 부동산 시장과 수출 침체도 이어지고 있다”며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내년 중국의 성장 여부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마우로 기옌 케임브리지대 저지 경영대학원장은 무역을 변수로 꼽았다. 그는 “무역 분쟁이 계속될지, 아니면 각국 정부 간 협력이 더 많아지는 추세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며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무역의 증가를 원하며, 실제 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무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지난 10월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 글로벌 무역 성장률을 직전 전망치(3.4%)에서 크게 감소한 1.0%로 예측하며 “글로벌 공급망 위축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젠 소장은 경제 외적 변수에 주목했다. 그는 “중국의 대만 침공, 미·중 갈등 고조, 파키스탄·북한·러시아로부터의 불안정한 상황 확산 등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한다면 내년 경제를 예측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도너번 이코노미스트는 정확성이 낮아진 경제 데이터를 변수로 지적했다. 예컨대 빈 일자리를 보고하는 기업 수가 줄고, 채용 방식이 온라인 공고로 바뀌면서 허수(虛數) 공고가 늘었는데 현재의 일자리 통계가 이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책 오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 강력한 한 해 vs 가장 큰 손실

S&P500 지수가 20% 하락하는 등 올해 전 세계 주식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내년에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주가는 2021년 너무 높았고, 2022년 하락했지만 부분적인 조정에 불과했다”며 “내년 추가적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왕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 이코노미 헤드 역시 “유럽 경기 침체, 산업 모멘텀(동력) 위축, 금리 인상 등으로 내년 초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며 “금리 인하로 시장이 안도하려면 2024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몰드 투자책임자는 “시장에선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2023년을 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2000~2001년과 2007~2008년 연준의 금리 인하가 주식시장의 붕괴를 즉시 막지는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좀 더 부정적이었다. 그는 “랠리 후 내년이 끝나기 전에 큰 하락이 올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수년간 본 것 가운데 가장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내년 주식시장은 매우 강력한 한 해를 보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피셔 회장은 내년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임기 3년 차인 점에 주목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주가가 대통령 재임 3년 차와 4년 차에 상승할 확률은 각각 92%, 83%로, 재임 기간 가장 높은 수익률 중간값도 이때 나왔다. 중간선거가 끝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입법 리스크도 줄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부정적인 일은 없었고, 특히 올해처럼 부정적인 해 다음 해에는 더 강세를 보였다”고 했다.

내년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로는 여행을 포함한 여가 활동 관련 산업, 재생에너지, 식음료, 제약(헬스케어) 등이 주로 거론됐다. 테크 분야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기옌 원장은 “지금까지만 보면 테크 기업은 직원을 해고하고 메타버스와 같은 부적절한 투자를 취소하면서 과거의 과잉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한 반면, 란 하 총괄은 “디지털화와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테크 산업이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별개로 파타스 교수는 “지금 세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추진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테크 산업이 과장되지 않고 유행에 편승하지 않는,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기술을 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만큼 부동산 시장의 부진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선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중이다. 데이비드 왕은 “내년 미국과 영국의 집값이 약 10% 하락할 것으로 본다”며 “세계적인 주택 침체가 선진국들의 GDP 성장을 짓누를 것”이라고 했다. 잰디 이코노미스트 역시 “주택 시장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은 가장 금리에 민감한 분야”라며 “부동산 산업이 내년 가장 고전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저소득층 지원하고 재정 여력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 전망의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며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변동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필요할 때 즉시 재정 정책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여력을 확보해놔야 한다”고 했다. 로저스 회장은 “2009년 이후 모든 곳의 부채가 급등했고 내년 전 세계적으로 부채가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모든 부채에 대해 극도로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당부한 전문가도 다수였다. 파타스 교수와 잰디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구에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도너번 이코노미스트는 “수많은 경제·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때 정부는 과거 상황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단 그 변화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며 근로자에 대한 재교육 등을 언급했다.

프랑켈 교수는 각국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당부했다. 그는 “정부의 실패로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게 됐고, 중국은 헛된 코로나 제로 캠페인에 매달렸고, 미국은 자유 무역에 등을 돌렸다”며 “브라질과 인도, 멕시코, 남아프리카, 터키의 최근 정책 결정의 질 또한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나라 대부분은 시민들이 더 나은 지도자를 선택할 힘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들”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부채 관리와 현금 확보를 통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잰디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투자를 철회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침체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포젠 소장은 “조만간 금리가 하락할 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미리 직원과 혁신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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