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경기도 판교 일대가 술렁였다. 대표적 IT 기업 카카오가 사실상 재택근무를 완전히 접는다는 소식 때문이다. 카카오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업무상 필요하면 사무실에 출근토록 해왔다. 그런데 올해 3월 1일부터는 사무실 출근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재택근무를 하도록 원칙을 180도 바꿨다. 카카오 관계자는 “재택근무로 직원 간 소통도 어렵고 효율성도 떨어졌다”며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마련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제 파티가 끝났다” “우리가 다른 회사보다 더 좋은 게 뭐냐”는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새로운 근무 형태로 정착하는 듯했던 재택근무가 올해 존폐 기로에 놓일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인력난과 호실적 속에 재택근무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기업들이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직원들을 속속 사무실로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재택근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러스트=김영석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기업들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21일 사내 공지를 통해 “6개월간 검토한 결과 대면으로 출퇴근하는 게 현 상황에 더 필요하다”며 재택근무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가 터지자 방역 단계에 맞춰 완전 재택근무와 일부 재택근무 등을 도입하다 작년 6월 거리 두기 전면 해제를 계기로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키고 있다. 그러다 새해를 앞두고 아예 재택근무 폐지를 못 박은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작 게임을 준비해보니 효율성이나 속도 모든 면에서 사무실 근무가 나았다”며 “아쉬워하는 직원들이 있지만 근무 환경 개선 등 사내 복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신작이 사실상 없었고, ‘쓰론앤리버티(TL)’ 같은 신작도 원래 작년에 출시할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미뤄졌다. 회사는 그 원인을 재택근무에서 찾는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게임을 유지하려면 재택근무를 해도 큰 어려움이 없지만, 신작 게임을 제대로 빨리 개발하려면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도 지난달 이정헌 대표 등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제작 과정에서 더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재택근무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직원들이 반발하자 이 대표는 임직원에게 재차 입장문을 보내 “아쉬움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현재 상황에서는 대면 근무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롭다고 여겼다”고 했다.

IT 기업에 앞서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재택근무를 축소·폐지 중이다. 지난해 4월 포스코가 전면 사무실 복귀를 했고,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4월 재택근무 비율을 기존 50%에서 30%로 축소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으로 국내 매출 100대 기업에 속하는 66개 기업 가운데 72.7%가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1년 3월 조사(91.5%)보다 약 19% 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미국도 비슷한 흐름이다. 구글은 작년 4월부터 주당 사흘 출근을 시행 중이고, 테슬라는 작년 6월부터 원격근무를 중단했다. 애플도 9월 사무실 복귀를 선언했고, 트위터도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뒤 주 40시간 사무실 근무로 전환했다. 미국의 보안 시스템 제공 업체 캐슬 시스템스에 따르면 지난해 초만 해도 직원들로 채워진 사무실 비율은 23%를 약간 웃돌았는데, 그 비율이 차츰 올라가 12월에는 49%까지 치솟았다.

◇실적 악화에 재택 여유 사라져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을 서두르는 것은 경기 둔화와 실적 악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11% 감소했고, 지난해 주가도 연초 11만원에서 연말 5만3000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엔씨소프트도 주가가 60만원에서 작년 한때 31만원까지 떨어졌다. 조니 테일러 미국인사관리협회 CEO는 “한때 노동자가 우위에 있었지만 이제 기업들은 경기 침체에 직면했다”며 “경쟁에 내몰린 기업들이 직원들을 사무실로 복귀시키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비상 경영의 일환으로 재택근무부터 손보고 나선 데는 경영진의 부정적 인식도 작용한다. 미국 아울랩스 조사에서 재택근무로 일하는 정규직 2050명 중 90%가 “재택근무로 인해 생산적으로 변했다”고 했지만, 경영진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국내 대기업의 한 상무급 임원은 “온라인으로 보고를 받다 직접 대면으로 지시하고 보고서를 받아보니 결과물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효율과 성과를 위해 사무실 근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CEO는 작년 6월 테슬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테슬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제품들을 만드는데, 이 작업은 전화 통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싫으면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재택근무 도입의 계기가 된 코로나19가 엔데믹화 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 콘페리의 이종해 전무는 “일부 직원도 재택근무만 고집하면 자신이 고용이 불안해진다고 느끼고, 회사도 재택근무를 꺼리는 상황이라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면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출근 반, 재택 반’으로 타협?

하지만 근로자들 사이에 재택근무 선호가 워낙 높아 일부 근로자 우위 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민간 고용 업체 오토매틱데이터 프로세싱이 전 세계 3만2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4%는 완전히 사무실에 복귀해야 하는 경우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적절히 섞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에서 절충안을 찾으려는 기업도 많다. 국내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요즘 신입 사원 지원자들은 ‘이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며 “재택근무가 일종의 사내 복지처럼 된 이상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미국 CNBC는 “원격근무를 없애는 것은 ‘알라딘과 요술램프’에 등장하는 ‘지니’를 병에 다시 집어넣는 것과 비슷하다”며 “원격근무라는 혁명이 미국 고용시장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일하는 사람이 2019년 32%에서 지난해 7월 49%까지 늘어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근로자 중에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서도 어느 정도는 회사에 나와서 대면으로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며 “회사도 완전히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나라도 결국 반반씩 근무하는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