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무실 공유 회사 위워크 본사. 2021년 10월 스팩과 합병을 통해 증시에 상장했으나, 상장 초기 13달러를 넘었던 주가는 현재 1달러대로 떨어졌다. /로이터연합

코로나 팬데믹 기간 대호황을 누렸던 미국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이 ‘도미노 청산’에 접어들었다. 스팩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증시에 상장한 후 우량 기업을 일정 기간 안에 합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서류상 회사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59개에 불과하던 스팩은 2020년 248개, 2021년 613개로 급증하며 주류 투자 방식으로 부상했다. 온라인 부동산 업체 오픈도어, 사무실 공유 업체 위워크, 전기차 제조 업체 루시드모터스 등이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에 데뷔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하지만 증시 거품이 꺼지고 합병할 회사를 찾기 어려워지자 결국 줄줄이 청산 절차에 돌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70개 넘는 스팩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고 청산 절차를 밟았다. WSJ는 “12월 스팩 청산 건수가 지금까지의 전체 청산 건수를 앞섰다”며 “높은 금리와 주가 하락이 기업 상장 시장에도 영향을 주면서 스팩 경영진이 청산 기한(2년) 안에 합병할 회사를 찾는 게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청산으로 인해 스팩 업계는 지난달에만 6억달러(약 7600억원), 작년 한 해로 보면 11억달러(약 1조3900억원) 이상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스팩을 만들기 위해 투자은행과 로펌 등에 지급한 비용이 포함돼 있다. 스팩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합병 회사를 찾지 못한 스팩은 400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올해 상반기에 청산 기한이 돌아온다. 시장에선 이 중 절반만 청산 절차를 밟아도 손실액이 2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팩 거품이 꺼진 직접적 원인은 금리 인상과 주가 하락이다. 그동안 스팩을 통해 상장했던 기업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위워크와 오픈도어 주가는 상장 초 대비 거의 10분 1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딜로직데이터에 따르면 스팩과 합병에 나선 스타트업의 평균 기업 가치는 재작년 20억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4억달러로 급감했다.

올해부터 상장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때 1%의 세금을 내도록 법이 바뀐 것도 작년 말 대규모 청산에 영향을 미쳤다. 스팩 청산으로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면 자사주를 매입한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업체들이 빠르게 청산에 나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팩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자 스팩 거래를 주선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챙겨온 투자은행들도 손을 떼는 분위기다. 메튜셀라 어드바이저의 존 차샤스 총괄은 “스팩은 한때 부를 창출하는 환상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점점 독이 든 성배가 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스팩 인기가 시들해진 건 마찬가지다. 주식 시장이 가라앉은 데다 예·적금 금리가 높아지면서 2~4%대인 스팩 예치 이자율이 경쟁력을 잃은 탓이다. 지난달 초 일반 청약을 실시했던 스팩들에서 청약 미달 사태가 벌어진 이후 미래에셋비전스팩2호 등 일부 스팩은 철회 신고서를 내고 공모 절차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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