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2023 IT·가전 박람회(CES)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경험’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전시 주제를 ‘맞춤형 경험으로 여는 초연결 시대(Bringing Calm to Our Connected World)’로 정하고, 전시관 공간도 관람객들이 단순히 제품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CES에서 메타버스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대거 선보인 기업들도 단순히 기술을 뽐내기보다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3’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하만 레디케어'를 체험하고 있다. 레디케어는 시각적, 인지적 부하를 측정해 운전자의 눈의 활동과 심리 상태를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뉴스1

경험이 현대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소비자들이 수량이나 가격 같은 숫자를 넘어 구매 전반에 걸쳐 심리적 만족을 중시하게 되면서 ‘가성비’ 대신 ‘가심비’란 용어가 유행한다. 기업들도 워라밸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갈수록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스타벅스가 진동벨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손님의 닉네임을 호출하는 것, 이케아가 쇼룸을 집처럼 꾸미고 매장에 몽당연필을 비치하는 것 모두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경험이 새로운 경제적 재화가 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해 온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 의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연간 수입이 7만5000달러(약 9500만원) 이상 되면 돈과 행복 간에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스털린의 법칙’을 인용하며 “행복은 부, 명예, 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고 했다. 행복한 사람은 관계와 경험을 중시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비교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라이도 “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 사람은 물질 구매보다 경험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한다”고 말한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의식주 기반의 상품 경제에서 경험에 가치를 두는 체험 경제로 바뀐다는 의미다.

UC버클리 심리학과 연구팀은 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한 쥐는 결핍된 환경에서 생활한 쥐보다 뇌 피질이 무겁고 빽빽해 고차원적 활동에 적합하고 복원력도 강했다. 이렇게 보면 이색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는 ‘펀(fun)슈머’ 트렌드가 강조되는 건 단순히 기업의 상술 때문만이 아니라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빠르게 변하는 고객 요구에 대응해 사용자 편의성을 개선하지 못하면 어느 기업도 신(新) 경험 경제 시대에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경험의 순서와 강도를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경험 설계 전략’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들이 절정과 결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전체 경험을 평가한다며 마지막에 가장 공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코스트코가 대표 상품인 핫도그를 쇼핑 동선 맨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속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8년간 같은 가격을 유지해 코스트코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은 1.5달러짜리 핫도그 세트. 코스트코는 쇼핑객들이 핫도그를 맛본 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핫도그 매대를 언제나 출구 근처에 배치한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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