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동물 건강관리 스타트업 에이아이포펫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았다. 이 회사가 만든 티티케어 앱은 반려동물의 눈이나 피부 사진을 찍으면 인공지능(AI)이 해당 부위를 분석해 각막궤양, 안검부종 같은 질병 가능성을 알려준다. 동물병원과 유기견 보호소 등을 돌며 200만건 이상의 이미지 데이터를 모아 학습시킨 결과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3개월간 월 평균 서비스 이용 건수는 1만6000건 정도”라며 “앞으로 동영상 촬영 기반의 반려견 관절 건강 확인 같은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엔 미국 동물병원 2곳에 수의사용 서비스 제공도 시작했다.
반려동물과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이 반려동물 건강관리 시장을 쑥쑥 키우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반려동물 건강 시장 규모는 2020년 186억7000만달러(약 23조7000억원)에서 2028년 374억9000만달러(약 47조6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엔 펫테크(Pet Tech·반려동물을 위한 첨단 기술)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목걸이로 호흡 측정, 소변검사도 척척
SK텔레콤은 작년 9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반려동물 엑스레이 사진 분석을 도와주는 ‘엑스칼리버’ 서비스를 출시했다. 병원에서 반려견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해 클라우드에 올리면 AI가 30초 안에 슬개골 탈구 같은 질환 가능성을 수의사에게 알려준다. 수의사는 이를 참고해 질병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전문가와의 진단 일치율은 질병별로 84~97% 정도라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110곳 동물병원이 이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고 올해 안에 고양이 엑스레이 서비스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반려동물의 건강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도 많다. 국내 스타트업인 우주라컴퍼니는 동물행동학을 기반으로 반려동물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를 개발했다. 고양이나 개 목에 착용시키면 먹고 마시는 일부터 배변 활동, 수면 길이, 구토 같은 행동까지 센서가 인식하고 분석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프랑스 업체 인복시아가 상반기 출시할 예정인 ‘스마트 개 목걸이’의 경우 반려견의 심장 박동과 호흡을 측정해 심장 질환 가능성을 주인에게 알린다. 초기 웨어러블 기기는 주로 위치 추적용이 많았지만, 최근엔 이런 식으로 건강관리 기능을 갖춘 제품이 많아지고 있다.
식품 기업 네슬레의 자회사 네슬레 퓨리나 펫케어는 작년 9월 고양이 화장실 모니터링 기기를 출시했다. 반려묘의 체중과 화장실 사용 빈도·습관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회사 소속 수의사인 아비 샤프루트는 “이 화장실 자체가 특정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해주는 건 아니지만 당뇨병·요로감염증·신장병 같은 질환의 초기 징후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스타트업 핏펫은 2018년 반려동물용 사전 진단키트 어헤드를 출시해 현재까지 40만개 이상 판매했다. 키트에 소변이나 타액을 묻힌 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자동으로 결과를 분석해준다. 집에서도 간편하게 방광염이나 요로결석 같은 질환을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 의료 상담 시장도 커졌다. 미국 반려동물용품 업체 추이부터 폽·퍼지·에어벳·에스크벳 등 다양한 업체가 화상이나 채팅 등을 이용해 수의사와 상담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를 출시했다. 다만 반려동물 비대면 진료를 제한하는 미국 수의학협회 정책과 법규 때문에 대부분 상담과 조언만 제공하고 진단이나 치료, 처방은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에이아이포펫이 수의사와 훈련사, 영양사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티티케어 클리닉’ 서비스를 출시했다. 역시 따로 진단을 내리진 않고 병원에 가야 할지 등을 중심으로 상담해준다.
◇반려동물도 고령화... 의료 수요 증가세
반려동물 건강관리 시장을 키우는 건 급증하는 반려동물 수와 이에 동반한 인식 변화다. 미국 반려동물제품협회(APPA)에 따르면 미국 가구의 70%인 9050만가구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통계청 조사 기준 전체 가구의 15%가량인 313만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른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는 아직 적은 숫자지만, 비혼 인구가 늘고 저출산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와 달리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고 보살피는 ‘펫 휴머니제이션’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재작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명제에 반려동물 가구의 88.9%가 그렇다고 답해 3년 전(85.6%)보다 동의율이 올랐다.
반려동물 수명이 증가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펫케어’ 보고서에서 “10~20년전만 하더라도 반려동물이 15세면 장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희망 수명은 20세를 바라보고 있다”며 “이는 노령 반려동물 비율 증가로 이어져 의료 비용을 상승시키고 새로운 제품·서비스 시장을 만든다”고 분석했다. 일본 반려동물 전문보험사 애니콤에 따르면 8~12세 반려동물 의료비는 7세 미만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많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아프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만큼 행동이나 습관 변화 등을 통해 증상을 미리 발견하려는 수요도 강하다.
업계에선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며 관련 산업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젊은층일수록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겨 더 돈을 많이 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 비용은 20대에서 21만원으로 평균(15만원)보다 높게 나타났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작년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18~34세 반려동물 소유자의 46%가 ‘반려동물의 의료비를 위해 빚을 질 수 있다’는 문항에 강하게 동의했다. 전체 평균(40%)보다 더 높은 응답률이다. ‘반려동물을 내 아이처럼 돌본다(57%)’ ‘반려동물의 필요를 본인의 것보다 우선시한다(35%)’ 같은 문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건스탠리는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반려동물 사랑에 힘입어 미국에서 해마다 반려동물 한마리당 쓰는 돈이 2020년 980달러(약 124만원)에서 2030년 1897달러(약 240만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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