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코스피와 미국의 S&P 500는 연초 보다 각각 25%, 19% 떨어졌다. 그런데 아세안에 속하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주가지수는 각각 5.1%, 4.1% 이상 올랐다. 태국과 필리핀은 연초와 비교하면 거의 변동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주가지수는 다소 떨어졌지만, 신흥시장 벤치마크인 MSCI 이머징마켓 인덱스(-22.97%)를 크게 웃도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아세안 경제가 상대적으로 튼실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2022년 견조한 성장을 기록한 아세안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최근 발표한 동남아시아의 지난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5.5%다. 한국과 선진국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과는 달리 작년 동남아는 팬데믹에서 벗어나며 강하게 반등했다. 특히 3분기 성장이 두드러졌다. 작년 9월 예측치는 0.4%포인트 상향조정됐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3분기 성장률이 무려 14.2%에 달했고, 베트남은 8.8%, 필리핀도 7.6%를 기록했다. 동남아 전역에서 내수소비가 살아났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리오프닝 이후 관광업도 점차 회복됐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국가는 베트남(7.5%)이고, 필리핀(7.4%), 말레이시아(7.3%) 그리고 인도네시아(5.4%)순으로 성장율이 높았다. 경제 회복은 주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만 베트남 주식시장은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주가조작과 회사채 발행 사기 사건 등이 터지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돼 30%가 넘는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새해 아세안 경제, 신흥시장에서 강한 상승세를 보일 것
새해 전 세계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했다. 선진국은 1.107%,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의 경우 3.734%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이 내놓은 전망은 더 암울하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1.6%이며, 선진국은 0.8%, 신흥국가의 성장률도 2.9%로 예측했다. 중국의 성장률은 기관마다 전망의 차이가 다소 크다. JP모건은 4%를, 모건 스탠리는 5.4%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아세안의 경제는 어떨까.
아시아개발은행은 올해 동남아 경제성장률이 5%에서 4.7%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세안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한 중국이 예전과 같은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수출 대상인 선진국 시장이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세계 평균보다 높고, 신흥국 평균 성장률전망치(IMF 추정 3.7%) 보다 높다. 동남아 개발도상국가와 유사하거나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국가는 인도가 유일하다.
이처럼 아세안 주요국가들의 경제가 힘을 얻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먼저 제조업에서 탈중국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생산라인을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아이팟의 허브가 될 예정이다. 애플의 주요 공급자인 대만 폭스콘 역시 베트남에서 맥북을 생산한다는 계획하에 2억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미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R&D센터를 건립하며 글로벌 전략거점으로 투자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역시 중국의존도를 줄이고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로 생산라인을 옮겨가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회로기판(PCB) 생산하는 심텍은 지난해 말레이시아 페낭에 신규설립한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대만 업체들도 중국을 떠나 말레이시아와 태국, 베트남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제조업체들이 중국을 떠나는 이유는 임금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도 있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중국이나 미국 모두의 러브콜을 받는 지역으로 갈등에서 비켜갈 수 있다. 금융분야에 있어서도 탈중국이 진행되고 있으며 싱가포르가 이미 홍콩을 대체하는 허브로 부상했다.
두번째는 RCEP과 CPTPP 등 다자간 무역협정을 통한 지역통합과 소비시장의 성장이다. 2015년에 출범한 아세안경제공동체로 인해 역내 관세 장벽은 사라졌다. 또 아세안 국가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구매력은 상승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가동한 이유도 구매력 증가에 따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중산층의 증가도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젊은층 인구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젊은 층은 노동 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에 적극적이다. 이처럼 노동가능연령에 유입되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향후에도 소비시장은 커지게 된다. 당장 지금은 선진국이 매력적일 수 있어도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은 아세안과 인도 시장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는 자체 데이터를 이용한 GDP 추정치에 기반해 국가 경제규모 순위를 발표했는데 2050년이 되면 중국이 1위, 미국이 2위,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각각 3위와 4위로 올라선다. 2075년에는 인도와 미국의 순위가 뒤바뀌고, 인도네시아는 4위 자리를 유지한다. 나이지리아가 5위, 파키스탄이 6위로 등극하고, 필리핀이 14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 한 바 있다. 여기에는 인구효과와 높은 경제성장률이 전제돼 있다.
세번째는 그린경제, 순환경제로의 전환이다. 베인앤컴퍼니와 테마섹의 조사에 따르면 2030년까지 동남아의 녹색 경제 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딜로이트 보고서는 강력한 기후 행동이 2070년까지 동남아에 12.5조 달러 규모의 새로운 경제 엔진으로 작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와 그린 인프라 투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화석연료가 아니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그린경제에 에너지 전환에 일본과 유럽, 중국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유럽은 아세안의 그린전환에 2027년까지 13조8천억원 투자를 약속했고, 일본은 아세안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에 100억달러를 포함해 10조원 지원을 추진 중이다.
2023 아세안 전략은
아세안은 대외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2위의 교역 대상이다. 또 글로벌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미중갈등으로 한국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손잡을 수 있는 파트너가 아세안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기업들은 이미 아세안에 많이 진출해 있지만 앞으로 협력 범위를 더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협력과 식량 및 천연자원과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경제안보, 디지털과 보건협력 등 한국과 아세안이 서로 필요로 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포괄적 인도태평양 전략 아래서 대 아세안 전략을 하위로 편입 시켰다. 경제안보를 강조하면서 편 가르기에 편승할수록 우리의 입지는 줄어든다. 아세안을 바라보는 시야를 보다 넓혀 지역 가치 사슬을 구축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때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나중에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신남방정책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기업의 아세안 진출을 지원할 정부의 새로운 ‘파트너쉽 전략 브랜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