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인근 항구도시에 있는 ‘피레아스 타워’는 오는 9월 완공을 목표로 대규모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다. 1970년대 만들어진 이 고층 빌딩을 ‘그리스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로 바꾸는 사업이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건물 외벽에는 1576개의 수직 핀을 추가해 태양열을 최대한 차단하고, 건물 낮은 층에는 녹지를 조성한다. 지하엔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건축자재로는 재활용 유리와 지속 가능한 목재(벌목 후 나무를 다시 심는 등 환경을 고려해 생산하는 목재)를 사용한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현지 부동산 개발 업체 디만드 측은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부터 건물 운영에서 나오는 탄소까지 모두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개발 업체는 리모델링이 끝나면 그동안 텅 비어 있던 이 건물이 새 입주자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건물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데다, 임차인인 기업들이 탈(脫)탄소 목표 달성을 위해 친환경 건물을 앞다퉈 찾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건물의 수요가 치솟으면서 일반 건물보다 매매가와 임대료가 높게 형성되는 ‘녹색 프리미엄’도 뚜렷해지고 있다.
◇커지는 ‘녹색 프리미엄’
영국 부동산 회사 GPE는 2025년 완공 예정인 오피스 빌딩 중 3만㎡(약 9000평) 규모의 사무실 임차인을 이미 확보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클리퍼드 찬스’라는 다국적 법률 회사다. 재활용 바닥재, 에너지 절감 디자인 등을 통해 ‘탄소 제로(0)’ 건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듣고 이 법률 회사는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에 임차계약서에 사인했다. 토비 코톨드 GPE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계약에서 임차인이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지속 가능성이었고 임대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 업체 JLL이 작년 기업 의사 결정자 109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4%가 ‘친환경 공간을 위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했거나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CBRE가 작년 2만개의 미국 사무실을 연식·위치 같은 변수를 모두 통제해 조사한 결과 친환경 인증 건물의 임대료가 비(非)인증 건물보다 4%가량 높았다. 세빌스 조사에서도 친환경 사무실이 방콕·싱가포르에선 18%, 서울·홍콩에선 10%, 상하이와·타이베이에선 6% 정도 더 높은 가격에 임대계약을 맺었다. 세빌스는 “친환경 인증 건물이 갈수록 증가하고 표준이 되어 가면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건물 선호도가 떨어지는 ‘브라운 디스카운트’를 우려하는 투자자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높은 임대료와 임대 수요는 매매가로 연결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셜에 따르면 리드(LEED)·브리암(BREEAM) 같은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은 사무실 건물이 작년 프랑스 파리에선 35%, 영국 런던에선 25% 더 비싸게 팔렸다. 재작년 글로벌 부동산 업체 나이트 프랭크가 분석한 결과에서도 런던의 친환경 인증 건물에 10%가량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성현 CBRE코리아 전무는 “국내에서도 해외투자자가 매물을 찾을 때 회사 내부 ESG 규정에 맞지 않거나 개보수를 통해 규정을 만족시킬 여지가 없으면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저탄소 콘크리트부터 에너지 저감까지
전 세계에서 건축물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라 녹색 건물 프리미엄은 앞으로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영국에선 오는 4월부터 에너지성능인증(A~G등급)에서 E등급 이상을 받은 사무실만 임대가 가능해진다. 이 기준은 2027년에는 C등급, 2030년에는 B등급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미국 뉴욕시는 내년부터 2300㎡ 넘는 건물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고, 기준 배출량을 넘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총 5만여 건물이 규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연면적 1000㎡ 이상 신축 공공 건축물에 대한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지난 2020년 의무화됐고, 2025년 동일 면적 민간 건축물에 대한 인증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작년 10월 유럽연합(EU) 이사회는 신축 건물은 2030년부터, 기존 건물은 2050년부터 무공해 건물로 바꾸는 내용의 지침 개정안에 합의했다.
친환경 건물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면서 건설 업계는 조금이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친환경 건축 관련 보고서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부터 빌딩정보모델링(BIM) 기술을 활용한 건설 폐기물 최소화까지 건축을 탈탄소화하는 많은 수단이 도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령, 아마존의 클라우드 부문인 아마존웹서비스는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에 저탄소 콘크리트 제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제품을 공급하는 스위스 회사 홀심 설명에 따르면 시멘트 보충제 등을 활용해 탄소 배출량을 30% 이상 줄였다고 한다. 캐나다 스타트업 카본큐어는 콘크리트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콘크리트 압축 강도를 높여 시멘트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게 특징이다. 국내 건설사인 포스코건설은 친환경 시멘트인 포스멘트 사용량을 재작년 20만톤에서 올해 45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원료를 굽는 과정이 필요 없는 고로슬래그(제철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를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
건물 운영·관리에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감 기술이 총동원된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국 최대 ‘넷 제로(net zero·온실가스 순배출 0)’ 상업용 건물인 유니스피어는 건물 외부를 덮고 있는 3000개의 태양광 패널에서 전력을 생산해 사용하고, 남는 전기는 판매도 한다. 사무실 유리창에는 계절·채광 등에 따라 색을 바꾸는 전기 변색 유리 기술이 사용됐고, 특정 온도에서 자연 환기가 이뤄지는 시스템도 갖췄다.
애플 본사인 애플파크의 경우 자체 태양광 설비와 바이오가스 연료 전지 등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로 건물 전력 사용량의 100%를 충당하고 있고, 구글은 작년 문을 연 오피스 건물 베이뷰에 지열 이용 시스템을 적용해 난방 등에 사용하고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10여년 전 대대적인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미국에서 에너지 효율성이 가장 뛰어난 건물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빛의 양에 따라 건물 조명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 등을 도입해 탄소 배출량을 50% 이상 줄이고 전기요금을 연간 440만달러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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