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분기 세계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10~11월에는 중간선거 기대감과 물가 상승세 둔화에 힘입어 잠시 기세를 올렸다가 연말 들어 증시가 다시 주저앉았다. 코로나 재확산과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진 가운데 연방준비제도가 통화긴축 의지를 거듭 표현하자 투자자들이 움츠러든 탓이다.
‘큰손’들의 전망도 엇갈렸다. 낙관론자인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11월 “해가 바뀌면 S&P 500이 최대 20% 뛸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월가 족집게’로 불리는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S&P 500이 최고 24% 하락할 것”이라며 정반대 의견을 냈다. 일관된 나침반이 없던 시기에 월가 큰손들은 어떤 투자 행보를 보였을까. WEEKLY BIZ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4분기 투자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조지 소로스, 테슬라 베팅 성공
‘헤지펀드의 전설’ 조지 소로스는 지난해 4분기 테슬라 주식 24만2399주를 사들였다. 이 중 20만주는 주가 상승 시 이득을 볼 수 있는 콜옵션이 설정돼 있다. 소로스는 테슬라 주가가 급등하던 2021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주가가 하락세로 접어든 작년 2분기부터 테슬라를 담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성적표로 보면 소로스의 공격적인 베팅은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 54% 폭락했던 테슬라 주가는 올 들어 두달이 지나기도 전에 60% 가량 급등했다. 테슬라 외에 소로스펀드는 요즘 전기차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제너럴모터스(50만주)와 차량 공유 업체 우버(74만3700주)에 투자하며 자동차 관련 주에 집중했다.
국내에서 ‘돈나무 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캐시 우드의 아크인베스트먼트도 소로스와 비슷한 투자를 했다. 아크인베스트먼트는 테슬라 54만4555주, 제너럴모터스 10만6576주를 사들였다. 래리 핑크 회장이 이끄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역시 테슬라 저가 매수 행렬에 동참했다. 블랙록은 4분기에 테슬라 주식을 무려 587만959주 쓸어 담았다.
블랙록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 주식도 704만7491주 사들였다. 블랙록은 2021년 2분기까지 쿠팡을 3820만주 넘게 들고 있다가 대거 내다 팔아 작년 1분기에는 보유량을 167만9600주까지 줄인 바 있다. 블랙록이 쿠팡 재매수에 나선 건 쿠팡이 오랜 적자 행진을 끝내고 작년 3분기 첫 흑자를 기록한 영향으로 보인다.
◇워런 버핏, TSMC 이례적 단타
장기 투자를 강조해온 워런 버핏은 이례적인 단기 투자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4분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 주식 5176만여 주를 매도했다. 작년 3분기에 TSMC에 처음 투자했다가 한 분기 만에 전체 보유량의 86%를 팔아치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를 몇 년 또는 수십 년 단위로 해온 버핏의 변화가 이례적”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황이 악화된 것을 우려했거나, 중국과 대만 간 갈등이 고조될 위험에 대비했다는 해석이 월가에서 나온다.
TSMC 주가는 작년 3분기에 11.3% 하락하고 4분기에 6.3% 오른 뒤, 올해 들어서는 15%가량 뛰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버핏이 TSMC를 사들인 타이밍은 적절했지만 너무 빨리 팔아 큰 수익은 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버핏은 홍콩에 상장된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도 이달 초에만 423만5000주 추가 매도했다. 버핏은 2008년부터 매집한 BYD 주식을 14년간 들고 있다가 작년 8월부터 대량 매도 중이다. 대신 버핏은 지난 4분기에 애플 주식 33만3856주를 추가로 사들여 포트폴리오에서 애플 비중을 38.9%로 끌어올렸다.
버핏이 중국 관련 주식을 내다판 것과 대조적으로 영화 ‘빅쇼트’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는 중국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자산운용은 작년 4분기 알리바바(5만주)와 징둥닷컴(7만5000주)을 처음 매수했다. 중국의 리오프닝을 앞두고 낙폭이 컸던 종목들에 대해 저가 매수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왔다. 알리바바의 최근 주가는 최고점이었던 304.7달러(2020년 10월) 대비 3분의1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레이 달리오 마지막 손길, 금융주 매입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의 마지막 투자 행보도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0월 달리오는 설립 47년 만에 브리지워터 경영에서 손을 뗐고, 닐 바 데아와 마크 베르톨리니가 공동 최고경영자로 배턴을 이어받았다.
4분기 브리지워터 투자 보고서가 달리오의 입김이 닿은 마지막 포트폴리오인 셈인데, 소비재 종목이 대거 축소되고 금융주가 크게 늘었다는 특징이 있다. 브리지워터는 포트폴리오 비중 2~7위 사이에 있는 P&G(-24%), 존슨앤드존슨(-24%), 펩시코(-25%), 맥도널드(-25%) 등을 대거 매각해 보유 주식수를 줄였다. 월마트(-16%)와 코스트코(-22%)도 팔아 유통주 비중도 낮췄다.
대신 브리지워터는 금융주를 사서 채워 넣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193만여 주 매입해 보유량을 320만여 주로 늘렸고, JP모건 주식을 처음으로 69만여 주 사들여 포트폴리오의 0.5%를 채웠다. 브리지워터 포트폴리오에서 금융주 비율은 3분기에는 21.49%였지만 4분기에는 26.65%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야후파이낸스는 “금리 상승에 의해 은행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한 것 같다”고 했다.
버핏이 ‘가치 투자의 대가’로 치켜세웠던 오크트리캐피털의 하워드 막스는 원자재주를 주로 사고팔았다. 한때 셰일가스 혁명을 주도한 기업 체사피크에너지 주식 보유량을 12% 줄인 대신, 광물 채굴 면허를 갖고 있는 회사 시티오로열티스를 1293만여 주 사들여 전체 포트폴리오의 3.9%를 채웠다.
올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3년 차인 만큼 주가가 많이 오를 것으로 예고한 켄 피셔는 지난 4분기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207만여 주 팔았다. 코인 열풍 등에 힘입어 2021년까지 급등했던 엔비디아 주가가 바닥 모르고 하락하던 시점이다. 피셔의 대량 매도 후 엔비디아는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에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공급한다는 점 때문에 주가가 연초 이후 40%가량 급등했다. 이 투자의 대가도 챗GPT가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줄은 미처 몰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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