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하면 늘 사이비가 판칩니다. 가장 최근 경제학계에서 유행한 사이비 이론으로 ‘현대 통화 이론(MMT)’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정부가 무한정 돈을 찍어내도 인플레이션이나 채무 불이행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재정과 통화정책을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눠 맡는 현대 경제 시스템을 무시하는 주장이라 1990년대 탄생한 이후 주류 학계에서 철저히 외면받았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초저금리에도 저물가가 이어지자 이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버니 샌더스 같은 정치인까지 가세하자 MMT는 마치 저성장과 일자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 대접을 받기에 이릅니다.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덮친 후에야 MMT가 허튼소리라는 게 여실히 드러났지만, 이 사이비 경제 이론이 사람들에게 미친 피해는 적지 않습니다. 일찍이 “돈을 마구 찍어내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기업과 개인”이라고 경고했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바이든 정부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재정 적자가 누적돼도 인플레이션과 금리 급등은 없다는 MMT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비록 MMT는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이비 경제 이론이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남미에서 유행한 종속 이론이나 B8면에 실은 ‘1조달러 동전’ 같은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것이므로 국가 채무를 얼마든지 늘려도 된다”거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피해는 부자만 본다” 같은 해괴한 주장이 종종 나옵니다. 소득 주도 성장은 지난 정부 경제정책으로 채택돼 실행되기까지 했습니다.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이비 경제 이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할 것처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죠.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MMT의 허무한 종말을 보면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을 새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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