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일기’란 것이 있다. 평생을 초등학교에서 교사, 교장으로 일한 곽상영 선생이 쓴 일기다. 1937년부터 2000년까지 약 64년에 걸친 일기로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삼는다. 그런데 1937~8년 무렵 일기를 보면, 선생의 부친이 소를 팔고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1937년 4월 18일 일기에는 ‘소를 사 오셨습니다. 가격은 111원이라 하셨습니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4월 19일 일기에는 ‘소를 113원에 팔았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하루 만에 소를 팔았다. 4월 21일에는 107원 5전에 소를 또 샀고, 4월 24일에는 이 소를 105원 50전에 팔았다. 거래에서 손실을 보았다. 그리고 이날 다시 103원 50전짜리 소를 샀다가 4월 27일 106원에 팔았다.
즉 선생의 부친은 농사짓기 위해 소를 사고판 것이 아니다. 소시장에서 소를 사고팔고 하면서 그 차액을 챙겼다. 소를 대상으로 투기를 한 것이다. 이런 식의 기록이 몇 달간 계속된다.
선생의 부친은 전문적 소 거래상은 아니었다. 농부, 인부였다. 다른 일을 하다가 중간에 한두 달 소를 사고파는 일을 했다. 자기 돈으로 소를 사고판 것도 아니다. 전주는 따로 있었다. 선생 부친은 전주에게서 투자를 받아 소 거래를 했고, 여기서 나오는 이익을 전주와 나누었다. 장소가 충북 청주 근방에 한정되고, 거래 대상이 소라는 점만 제외하면 현대의 투자-투기 모델과 별 차이가 없다.
이 소 거래를 부정적 관점과 긍정적 관점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부정적 관점에서 보면 당시 한국의 농촌에서도 소에 대한 투기가 벌어졌다. 일하지 않고 소 시장에서 온종일 지내면서 소를 사고팔아 매매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땀 흘려 돈 버는 대신 불로소득으로 돈 벌면서 시장을 왜곡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점이 이때도 있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 관점도 있다. 우선 이런 차익 거래는 부당한 것이 아니다. 소를 팔려고 온 사람도 오래 소 시장에 머무르며 조사하면 자기 소를 얼마에 팔 수 있는지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있다. 소 거래상이 아니라 실수요자에게 팔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시간이 걸린다. 소 거래상은 그 시간을 절약해주는 대가로 이익을 챙긴다.
당시 한국, 특히 농촌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나 투자, 투기에 대한 이론 지식이 거의 없을 때였다. 곽상영 선생 부친도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소 매매 차익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 이익을 얻고자 하는 거래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매매 차익을 얻으려는 거래, 투기적 거래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단점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1930년대 농촌 사회에서 소 차익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보면, 이런 거래 방식은 인간 사회의 본래적 성질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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