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영상 통화를 통해 가족들과 첫만남을 갖고 있다. 당시 산모는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출산했다. /AFP

2020년 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 출산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2020년 3월 뉴욕타임스는 “금융 위기 이후 젊은 층이 겪어온 경제난과 코로나19 사태가 뒤섞여 임신·출산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해 12월 한국은행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구구조 변화 여건 점검’ 보고서에서 “코로나19가 혼인·출산 관련 주요 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3년이 지난 현재, 각국이 받아든 출산율 성적표를 보면 이런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가운데 2021년 합계 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숫자)이 2020년보다 상승한 나라가 27개나 된다. 미국은 7년 만에 출산율이 올랐고, 독일은 코로나19 전보다 더 높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반면 전망이 들어맞은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출산율이 떨어져 작년에는 출산율이 0.78명으로 곤두박질 쳤다. 일본과 중국·대만도 출산율 반등은 없었다. 왜 출산을 둘러싼 ‘코로나 버프(Buff·일시적 상승)’는 나라마다 엇갈리게 나타난 것일까.

◇위기에 출산율 오른 서구 선진국

OECD 등에 따르면 2019년 OECD 38개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1.61명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에는 1.59명으로 더 떨어졌다. 그런데 2021년 출산율은 1.67명으로 반등했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나라가 많지만, UN은 지난해에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져 1.6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신생아 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줄곧 내림세였다. 2014년 399만명을 기록한 이후 2019년까지 연평균 1~2%씩 감소했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에도 전년보다 13만명 줄어 4% 급감했다. 그런데 2021년 들어 상황이 변했다. 신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2020년(361만명)보다 5만명가량 증가했고, 출산율도 1.66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증가 폭은 0.02명에 불과하지만, 2014년 이후 7년 동안 떨어지다 반등하자 세계가 놀랐다. UN 등 기관들은 2022년 미국 합계출산율이 1.7~1.8명으로 2021년보다 더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 주요 국가도 비슷한 추세다. 영국은 2016년(1.79명)부터 매년 떨어져 2020년 1.56명까지 내려왔다가 2021년에는 1.61명으로 소폭 상승했다. 독일도 2020년 1.53명에서 2021년 1.58명으로 반등했고, 지난해에는 1.6명까지 올라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도 각각 2020년 1.58명, 1.61명에서 2021년에는 1.70, 1.64명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반등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행 초기 건강과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미뤘던 여성들이 2020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적응했고, 출산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재택근무가 자리를 잡으면서, 일 때문에 출산을 미뤘던 여성들이 출산에 나선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 자료를 보면, 미국의 30~34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는 2020년 94.9명에서 2021년 97.3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5~39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도 51.8명에서 54.2명으로 늘었다. 한스 슈반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집에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30대 여성들이 갑자기 아이를 가질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안정도 출산율 증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 유행 직후에는 경기가 침체했지만,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4조달러(약 52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풀면서 실업률이 3%대로 내려앉았다. 또 주식과 가상 화폐가 급등하면서 자산 가치 상승을 경험한 사람도 출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독일 매체는 “독일 노동 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월급이 좋고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는 부부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출산율 반등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버프 못 누린 韓·中·日

우리나라도 2020년 약 50만명이던 재택근무자 수가 2021년 114만명으로 늘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등 출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됐다. 하지만 서구와 달리 출산율은 코로나 버프를 받지 못하고 줄곧 하락했다.

외신들은 여러 이유 가운데 한국의 높은 양육비를 주목했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금융그룹(JEF) 등의 분석에 따르면 신생아 때부터 18세까지 자녀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로 가장 높고, 중국(6.9배)이 그다음이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최영 교수는 “양육비 등 돈 드는 곳은 많은데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아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 낳는 것 자체에 대해 걱정이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출산율도 2020년 1.33명에서 2021년 1.3명, 작년에는 1.27명으로 계속 떨어졌다. 이에 대해 아시아타임스는 “25~29세 결혼하지 않은 여성 인구가 1975년에는 전체의 21%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 66%로 늘어나는 등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많은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도 2020년 1.7명에서 2021년 1.15명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펭시저 중국 푸단대 인구개발정책연구센터 소장은 “남성이 여성보다 3000만명이 더 많은 성비 불균형(2019년 기준) 탓에 중국의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가족들이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 아이를 낳지 않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 책임을 돌리는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 탓에 서구와는 달리 출산율 반등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만의 타이베이타임스는 “양육비나 경제적 불확실성 외에 유교적 가치에 기초한 문화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 여성이 결혼을 꺼리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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