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맥도널드 매장에선 요즘 감자튀김이 다회용기에 담겨 나온다. 모양은 기존 빨간색 용기와 똑같지만, 코팅 종이 대신 플라스틱·고무 같은 소재로 만들어 세척이 가능하도록 바꿨다. 음료나 치킨너깃을 담는 용기도 종이 대신 유리컵이나 플라스틱 접시 같은 다회용기로 교체했다. 프랑스 정부가 올해부터 20석 이상을 갖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일회용 식기류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서 나타난 풍경이다. 맥도날드·버거킹 등 주요 업체들은 최대 1만5000유로(약 210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피하기 위해 식기세척기 구입, 직원 교육 같은 다회용기 사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랑스는 이번 조치를 통해 전국 3만여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나오는 연간 15만t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인류가 방역에 몰두하는 사이 ‘쓰레기와의 전쟁’에 비상이 걸렸다. 네이처리뷰 지구환경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9년 약 4억t이던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2020년 최소 두 배로 늘었다. 마스크 착용이나 음식 포장, 온라인 배송 등의 증가로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한 탓이다. 지난 몇 년간 쓰레기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각국 정부는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하자 다시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규제의 칼날을 뽑아들고 있다. 기업들은 날로 강화되는 규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한편, 환경 변화에서 생겨날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본격화하는 일회용품 규제
일본 편의점 체인 로손은 작년 4월 점포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수저와 포크 디자인을 바꿨다. 전체 길이를 1㎝가량 짧게 만들고 손잡이 부분에는 구멍을 뚫어 플라스틱 사용량을 10~14%가량 줄였다. 플라스틱 수저 대신 나무 숟가락도 비치해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연간 5t 이상 플라스틱 제품을 제공하는 업체에 사용량 감축을 요구하는 법이 시행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또다른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는 식물성 원료를 배합한 제품이나 생분해성 제품을 도입했고, 호텔 체인 수퍼호텔은 객실 내 일회용 비품 비치를 중단했다. 일본은 2020년에야 비닐봉투 유료화 제도가 도입됐을 만큼 쓰레기 감축 노력에 뒤처져 있었지만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에 제한을 두는 국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 감염 확산 우려로 잠시 미뤄뒀던 규제가 다시 강화되는 분위기다. 캐나다는 작년 말 일회용 플라스틱 비닐봉지·식기·포장용기·빨대 등의 제조·수입을 금지했고, 올 연말부터는 판매도 금지하기로 했다. 당초 재작년 시행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여파로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2020년 2월 코로나 확산과 함께 잠시 중단됐던 카페·식당에서의 일회용컵 금지 제도가 작년 4월 재개됐고, 11월에는 규제 물품이 확대됐다. 인도는 작년 7월 컵과 빨대, 아이스크림 막대 등 19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생산·수입·판매를 막았고, 대만은 올해 7월부터 호텔에서 일회용 세면 도구를 기본 제공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회용기 사용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규제에 나선 나라도 있다. 독일은 올해부터 소규모 점포를 제외한 식당·카페에서 손님이 포장 음식을 주문할 때 다회용기 선택지를 주도록 의무화했다. 손님이 원하면 보증금을 일부 받고 매장에 마련된 다회용기에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KFC 같은 일부 업체는 다회용기 관련 스타트업인 바이탈과 계약을 맺고 다른 매장이나 전용 수거함에 반납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손님은 바이탈 앱을 내려받아 음식을 주문하고 이후 이 서비스에 가입한 매장 어디에서나 식기를 반납할 수 있다.
강화되는 규제에 맞춰 기업들도 쓰레기를 줄일 묘안을 짜내느라 분주하다. 미국에선 최근 6팩짜리 음료 제품을 묶는 데 쓰던 플라스틱 고리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미국 맥주 브랜드 쿠어스라이트는 작년부터 플라스틱 대신 판지로 만든 고리를 사용하고 있고, 또 다른 맥주 브랜드인 코로나는 보릿짚을 활용한 포장재를 선보였다.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는 면도기를 감싸는 내부 포장 소재를 플라스틱에서 골판지로 바꿨다. 덴마크 완구 업체 레고 역시 블록을 담는 속 비닐봉지를 종이 봉투로 전환하며 “앞으로 3년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 코카콜라는 작년 8월 북미 지역에서 출시되는 ‘스프라이트’의 페트병 색깔을 녹색에서 투명색으로 바꿨다. 출시 당시부터 60년 넘게 녹색병을 유지해왔는데,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페트병 색깔을 전면 교체한 것이다.
최근 폐기물 급증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포장재 다이어트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은 머신러닝과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제품 포장에 적합한 상자를 찾아낸다. 제품 리뷰 등을 분석해 어떤 포장을 했을 때 파손됐는지, 또 어떤 경우에 제대로 배송됐는지를 분석해 더 적합한 크기와 재질의 포장 상자를 알려주는 것이다. 아마존 측은 “재작년에만 배송당 평균 플라스틱 포장량을 7% 이상 줄였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쿠팡 같은 업체가 패키징 기술을 연구하는 팀을 만들어 포장재를 줄이고 있다. 제품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두께가 얼마인지 등을 실험하고 계산해 사용량을 줄이는 식이다. 장보기 서비스 B마트의 물류 운영사인 우아한청년들의 경우 지난해 7월 보랭팩 두께를 4㎜에서 3㎜로 줄였고 드라이아이스 취급 주의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도 없앴다.
◇AI가 재활용품도 분류
다른 한편에선 쓰레기에서 황금을 찾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첨단 기술을 접목해 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이는 산업이다. OECD에 따르면 전 세계 폐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9%에 불과하고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오염 물질이 묻어 애초에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가정에서 제대로 분리 배출하지 않거나, 재활용 선별장에서 인력이나 비용 등의 문제로 제대로 골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쓰레기를 수거하고, 운반하고, 분류하는 과정 전반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 재활용 스타트업 에이트테크는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트론’을 상용화했다. 재활용 선별장에 로봇을 설치하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폐기물 더미를 올리면 기기 천장에서 내려온 로봇 팔이 재활용품 종류만 쏙쏙 골라 밖으로 끄집어낸다. 로봇에 ‘투명 페트병과 유색 페트병을 같이 집어달라’ ‘투명 페트병은 왼쪽에, 알루미늄캔은 오른쪽에 놓아달라’ 같은 식으로 조건을 바꿔 명령할 수도 있다. 이 회사 류재호 이사는 “160만장 이상의 국내 재활용품 사진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2.4배 빠른 속도로 15가지 재활용품을 분류한다”며 “재활용 선별장의 속도와 정확성을 끌어올려 비용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재활용률도 올리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기술을 인정받아 작년 11월 31억원 규모의 프리A 투자를 받았고, 작년 인천의 한 재활용품 선별장 납품을 시작으로 현재 6개 지자체·회사와 추가 계약을 논의 중이다.
쓰레기 수거 과정을 파고든 업체도 있다. 폴란드 스타트업 ‘빈-e’는 인공지능 기반의 스마트 쓰레기통을 만든다. 쓰레기를 넣으면 자동으로 유리, 플라스틱, 금속, 종이 등으로 분류하고 필요하면 압축도 한다. 쓰레기통이 다 차면 스마트폰 앱으로 알람이 오고, 수거한 폐기물에 대한 통계도 만들어 제공한다. 국내 업체 수퍼빈은 일반 시민이 길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을 만들었다. 자판기처럼 생긴 기기로, 쓰레기를 집어넣으면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인지 AI 프로그램이 확인한 후 적립금을 준다. 현재 전국에 776대가 설치돼 있다. 작년 말엔 경기도 화성에 이렇게 모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생 플라스틱 플레이크(페트병을 잘게 파쇄한 것)로 만드는 공장을 짓고 운영을 시작했다.
‘쓰레기 업계의 우버’로 불리는 미국 폐기물·재활용 소프트웨어 기업 루비콘은 폐기물 배출자와 수거·운반 업체를 연결해주는 사업 모델을 내놨다. AI·IoT 기술을 활용해 수거·운반 업체에 언제 폐기물을 수거하면 좋을지, 최적 이동 경로는 무엇인지 등도 알려준다. 국내에서는 스타트업 리코가 2020년 폐기물 관리 플랫폼 업박스를 출시했다. 업박스를 이용하는 기업과 사업주들은 자신들이 배출한 폐기물량과 탄소저감량, 재활용 결과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폐기물 수거·운반에 GPS가 장착된 전용 차량을 이용해 폐기물 이동 경로도 알 수 있다.
◇해조류 포장재부터 ‘썩는 플라스틱’까지
재활용을 넘어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한 소재 개발도 한창이다. CJ제일제당은 작년 5월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고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인 ‘PHA’ 생산을 시작했다. PHA는 미생물이 식물 유래 성분을 먹고 세포 안에 쌓아놓은 물질로, 바닷속을 기준으로 짧으면 6개월, 길어도 수년 안에 분해된다. 현재 CJ제일제당을 포함해 미국 대니머사이언티픽과 일본 가네카 등 소수 업체에서만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기존 플라스틱 대비 3배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글로벌 호텔 체인 아코르 등 여러 업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공장은 본 생산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미 유럽 등에서 초기 양산 물량을 뛰어넘는 5000t 이상의 물량을 선주문받았다”고 말했다.
홍콩 재벌 리카싱이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 스타트업 ‘낫플라(Notpla)’는 해조류로 포장재를 만든다. 현재 음식 포장용 상자와 액체 용기 등을 해초를 이용해 생산하고 있다. 해조류는 비교적 빠르게 자라 활용성이 좋은 데다, 자라는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순기능도 있다. 국내에서도 마린이노베이션이 해조류 부산물을 이용해 계란판, 비닐봉지, 종이컵 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차완영 대표는 “아직 규제가 강하지 않은 국내보다는 유럽이나 미국 업체들에서 구매 문의가 많이 온다”며 “땅에 묻었을 때 기준 56일 정도면 생분해되는데 물이 새는 것을 막는 기능은 일반 플라스틱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천연 재료가 포장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추세다. 미국 기업 에코바티브는 버섯 균사체로 만들어 완전히 퇴비화가 가능한 포장 제품을 만든다. 또다른 미국 회사 크루즈폼은 갑각류 껍데기에서 추출한 성분을 기반으로 스티로폼을 대체할 수 있는 완충재를 개발해 올해 납품을 시작할 계획이다.
◇무엇이 친환경인가 논란도
각 분야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해법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엇이 친환경인가’를 놓고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예컨대 다회용기를 독려하는 유럽의 움직임을 두고 유럽제지포장재연합(EPPA)은 일회용 종이 제품이 다회용기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협회 연구에 따르면 다회용 식기류를 세척하고 건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생산 원료, 재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다회용기가 종이 기반 일회용 제품보다 2.8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벌목이 필요하고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데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경우도 많은 만큼 종이백이 비닐봉지보다 친환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가운데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PLA(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물질) 역시 논란이 많다. 일반적인 환경에선 잘 분해되지 않아 따로 퇴비화 시설을 갖춰야 한다. 대부분 나라에서 분리 배출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그대로 소각 처리되고, 재활용품으로 버리면 다른 쓰레기와 섞여 오히려 일반 플라스틱 재활용을 방해하는 문제도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대만 정부는 오는 8월부터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식기류를 금지하겠다고 밝혔고, 유럽연합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생분해 조건과 분해에 걸리는 기간 등을 포장지에 표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논란이 불거져 작년 12월 환경부가 친환경 인증 조건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꿨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인류가 현실적으로 플라스틱을 포기하기는 어렵고, 대체재를 쓴다 해도 여전히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난다”며 “생산부터 소비, 재활용까지 모두 인간이 책임진다는 각오로 비용을 분담하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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