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칸소주 소도시 캠든에는 24시간 가동 중인 공장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을 궁지에 몰아넣은 하이마스(HIMARS)를 만드는 공장이다. 하이마스는 최고 시속 85km로 이동하며 사거리 80km짜리 정밀 유도 로켓을 발사하는 트럭형 고속 기동 로켓 발사 시스템이다. 탑재 로켓 1발 가격이 15만달러(약 2억원)에 이른다.

2010년 하이마스 실전 배치 이후 제작사 록히드마틴은 연 48대까지 만들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하이마스가 ‘게임 체인저’로 불리며 위력을 떨치자 연 60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비를 늘렸다. 그런데도 공급이 달리자 작년 10월 제임스 타이클릿 록히드마틴 최고경영자(CEO)는 연 96대까지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인근의 옛 기저귀 공장을 사들여 하이마스 생산 라인을 확대했고, 근무 인력도 1000명으로 최근 4년 사이 두 배로 늘렸다. 앞으로 20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그래도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다. 지난달 폴란드는 하이마스 18대 및 전용 로켓 1500여 발을 포함한 100억달러(약 13조원)짜리 무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와 네덜란드도 올 들어 각 20대의 하이마스를 도입하는 계약서에 사인했는데, 2025년에나 인도가 가능할 전망이다.

그래픽=김의균

하이마스 제조 공장은 세계 방위산업의 활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장기화되는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서방 진영과 러시아가 모두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투입하고 있다. 게다가 미·중 갈등이 고조돼 ‘신냉전’ 기류가 심상치 않자 미래를 대비해 추가 무장을 서두르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각국이 군비 확장 경쟁을 벌이면서 글로벌 방산 기업들은 그야말로 ‘골드 러시’ 시대를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컴퍼니는 올해 글로벌 방산업계 시장 규모가 5772억달러(약 752조원)로 작년보다 7.9%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 해 사이 무기 판매액이 424억달러(약 55조원) 늘어난다는 얘기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1년 넘게 진행된 러·우 전쟁에서 확실한 승자는 방산 기업들뿐”이라고 했다.

미국 아칸소주 캠든의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하이마스(HIMARS)를 제작하는 모습. /록히드마틴

◇본격 군비 경쟁 들어간 강대국

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년 세계 각국의 국방비 합계가 2조1133억달러(약 2750조원)로 처음 2조달러선을 돌파했다. 국방비 지출이 2조달러를 넘어선 직후 발발한 러·우 전쟁은 군비 지출 속도를 끌어올리는 도화선이 됐다.

특히 올해 러·우 전쟁 2년 차를 맞아 국방 예산 늘리기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올해 예산안에서 국방비 지출을 작년보다 7.2% 늘린 1조5537억위안(약 295조원)으로 책정했다. 전년도 증가율(7.1%)을 넘어서며 2년 연속 국방비를 7% 넘게 증액했다. 2020년과 2021년 각각 6.6%, 6.8% 늘렸던 것과 비교하면 보폭이 눈에 띄게 커졌다. 미국과 대만이 밀월 관계를 구축하자 대응 차원에서 군사력 증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와 장기전을 벌이는 러시아는 올해 국방 예산으로 4조9810억루블(약 86조원)을 책정했다. 2021년 말 러시아 정부 스스로 예상한 3조5000억루블보다 42% 증액된 금액이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교육·보건 예산을 대폭 삭감해 국방 예산으로 돌렸다”고 했다.

중국·러시아의 군사 팽창을 미국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미국은 2023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국방 예산으로 전년(7820억달러)보다 9.7% 급증한 8580억달러(약 1120조원)를 배정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요청한 규모에다 의회가 450억달러나 더 얹어줬다. 전년 대비 미사일 구매 자금을 55%나 늘렸다.

중국·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일본의 군비 증강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일본은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예산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는데, 그중 방위비가 전년보다 26% 급증한 6조8000억엔(약 65조원)에 이른다.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전투기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만 2500억엔에 달한다. 일본은 미·일 동맹에 의존해 방위비를 GDP의 1% 수준만 유지해왔지만 2027년까지 GDP의 2% 수준으로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김현국

글로벌 방산 전문 매체 에비에이션위크는 2021년 5500억달러로 추정되는 전 세계 무기 도입 예산이 천천히 늘어 2032년이면 6800억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러·우 전쟁을 계기로 무기 도입 예산이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2032년엔 75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을 수정했다. 수정 전망에 따르면, 2032년까지 누적 무기 도입 예산은 당초 전망보다 6000억달러 늘어나게 된다. 글로벌 방산 업체들이 10년 동안 추가로 벌어들이는 돈만 780조원대에 달한다는 의미다.

나토 전략가 출신인 영국 바스대의 패트릭 버리 교수는 “지난 25년간 탈냉전으로 국가 단위 전쟁 위협이 감소하자 각국이 예산 절감을 내세워 군수품 생산에 덜 적극적이었지만, 러·우 전쟁을 계기로 다시 무기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우 전쟁, 포탄만 하루 2만발 넘게 발사

세계 각국이 군비 확충에 다급해진 이유는 러·우 전쟁에서 드러난 현대전의 소모전 양상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발사하는 포탄이 하루 4000~7000발”이라며 “러시아는 그보다 많은 하루 2만발을 쏜다”고 밝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1년간 생산하는 분량의 포탄을 우크라이나가 한 달이면 소진하고 있다”고 했다. 미 정보 당국은 러시아 역시 포탄 생산량이 발사량에 한참 못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500억달러에 가깝다. 그중 미국 몫이 절반 이상이다. 지난 3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283억달러(약 37조원)의 군사적 지원을 했다며, 1년간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무기·장비 목록을 공개했다. 소형 탄약 1억발, 155mm 곡사포 160문 및 포탄 100만발, 125mm 탱크용 포탄 10만발, 고성능 다목적 차량 험비 1200대, M113 장갑차 300대 등이다.

이런 천문학적 규모의 물량을 투입하면서 서방 진영은 당장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무기·탄약조차 부족해 고심하고 있다. 또한 미래 대비용으로 우크라이나에 넘겨주고 바닥난 무기고를 채워 넣어야 하는 부담도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무기 주문이 폭주할 수밖에 없어 방산기업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을 들고 있다./로이터 뉴스1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1600발을 지원한 뒤, 제작사인 레이시온에 추가 주문을 했다. 그레고리 헤이스 레이시온 CEO는 “6년 동안 만든 스팅어를 (러·우 전쟁으로) 10개월 사이 소진했으며, 재고를 보충하는 데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이 공동으로 생산하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은 2100발이 연간 최대 생산량인데, 미국은 그 4배나 되는 물량을 우크라이나에 넘겨줬다. 결국 작년 9월 미 국방부는 3억1100만달러짜리 재블린 추가 도입 계약서를 썼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방산업체들은 생산 설비를 전례 없는 속도로 늘리고 있다. 덕 부시 미 육군 무기 획득 책임자는 지난달 미국의 155mm 포탄 생산량을 월 1만5000발에서 7만발로 5배 가까이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스크랜튼 탄약 공장의 설비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텍사스주 갈랜드에는 새로운 포탄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워낙 무기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사라질 뻔한 구식 무기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영국의 대표 방산업체 BAE시스템스는 2005년부터 실전 배치된 M777 곡사포 생산을 거의 중단했다. 하지만 러·우 전쟁에서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자 미 국방부 요청으로 BAE시스템스가 M777 생산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소진한 러시아는 생산 부담이 서방보다 더 크다. 네덜란드 군사 정보 사이트 오릭스(Oryx)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맞붙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1500대 이상의 탱크, 2500대의 장갑차 및 수송차, 2000대의 군용 트럭, 130대 이상의 항공기 및 헬리콥터를 잃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러시아군을 향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M777 곡사포를 쏘고 있다./AP 연합뉴스

◇돈방석 앉은 방산업계

미국·러시아뿐 아니라 서방 각국이 무기 확충에 열올리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국방 예산의 20% 이상을 무기 도입에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30회원국 가운데 국방 규모가 크지 않은 5국(캐나다·벨기에·체코·포르투갈·슬로베니아)만 빼고 모두 이 기준을 충족했다.

특히 전범국가로서 군사력 증강에 소극적이던 독일이 변신하고 있다. 독일은 GDP 대비 1.3% 안팎에 머물던 국방 예산을 나토 가이드라인대로 2%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며 무기 도입을 늘리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7월 록히드마틴과 F-35 스텔스 전투기 35대를 구매하는 내용의 84억달러(약 11조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영국을 비롯해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네덜란드 등도 F-35 구매에 나섰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리는 폴란드가 적극적이다. 폴란드는 지난해 한국에서 K2 전차 1000대, K9자주포 672문 등을 수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각국이 최신 무기 도입을 서두르면서 세계 5대 방산업체를 거느린 미국이 특히 떼돈을 벌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미국이 외국에 판 무기 금액이 2056억달러(약 268조원)로 전년보다 49% 늘었다고 밝혔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무기 수출도 날개를 달았다. 관영 타스통신은 지난달 러시아가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50개국이 넘는다며 해외 주문량이 매년 500억달러 이상이라고 밝혔다.

방산 기업들은 전례 없는 특수를 맞아 대거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유럽 1위 무기 수출국인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방산업체인 탈레스는 작년에 1만1500명을 새로 채용했고, 올해도 1만2000명을 신규 고용할 예정이다. 미국 레이시온도 전체 직원이 18만명이었는데, 작년 한해에만 2만7000명을 채용했다. 첨단 미사일 제작을 위해 전자공학 전공자들이 방산업체들의 러브콜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주식시장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산 기업 주가는 급등했다. 지난해 세계 1위 방산 기업 록히드마틴은 37%, 라팔 전투기를 생산하는 프랑스 다쏘항공은 66% 올랐다. 버티컬 리서치 파트너스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스탤러드는 “지난 40년 사이 방산주는 2022년이 최고의 해였다”고 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우 전쟁이 휴전하더라도 미래 대비 차원에서 4~5년은 방위산업이 큰 호황을 누릴 것”이라며 “길게 가면 방산 특수가 10년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망 대란이 무기 생산에 변수

국내 방산업계도 호황기를 맞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 방산 수출 수주액은 약 200억달러(약 26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수출액 72억5000만달러의 2배가 넘는 액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집계로 우리나라는 2018~2022년 사이 세계 무기 수출 시장 점유율이 2.4%로 9위였다. 2013~2017년에 1.3%로 12위였던 때와 비교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세계 주요 방산업체에 주문이 폭주하고 있지만 납품 날짜를 맞추기 쉽지 않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공급망 대란 탓에 무기 제작에 필요한 원료나 부품을 제때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록히드마틴 프랭크 세인트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수천 개의 부품이 필요한 일부 무기는 평균 생산 시간이 팬데믹 이전의 2~3배에 달한다”고 했다.

미국 방산업체들은 중국산 부품을 들여오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군사용 배터리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미국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 인력 부족, 원자재 및 부품 부족의 문제로 무기 생산·증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방위산업 투자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향후 호재가 선반영돼 있다는 평가가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가가 41% 급등한 세계 4위 방산업체 노스롭 그루먼의 경우 올 들어 17%가량 하락했다. 리서치회사 캐피털 알파 파트너스는 “미국 의회에서 국가 부채 상한선을 놓고 여야가 다투는 과정에서 국방비 지출을 제약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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