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칼라가 초거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디자인 생성 서비스. '파스텔 색상' '오픈 칼라가 있는' 같은 단어를 입력하면 이를 반영한 6개의 디자인을 보여준다. /칼라

디자인부터 제품 생산까지 패션 디자이너를 위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스타트업 칼라(Cala)는 작년 10월 자사 플랫폼에 인공지능(AI) 기반의 디자인 생성 기능을 추가했다. 이용자가 스웨터나 블라우스, 티셔츠 등 기본 스타일을 선택한 후 ‘파스텔 색상의’ ‘단추가 있는’ 같은 단어를 적으면 이를 반영한 6개의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해 수정 단계로 넘어가면 되는 식이다. 이 서비스에는 미국 기술 기업 오픈AI가 만든 이미지 생성 AI ‘달리2’가 활용됐다. 달리의 데이터와 구동 방식을 빌려와 칼라가 자사 앱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픈AI·네이버 같은 개발사에서 만든 초거대 AI(인간처럼 종합적인 추론이 가능한 초고성능 AI)가 빠르게 실용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여행앱에 탑재된 AI는 여행 일정을 짜주고, 교육앱과 결합한 AI는 선생님처럼 문제를 내주고, 채용앱에 활용된 AI는 면접 답변을 조언해준다. 방대한 학습 데이터와 매개변수(사람 뇌의 시냅스와 같은 역할)로 만들어진 AI를 일반 기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빌려와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앞으로 AI를 활용한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도 초거대 AI의 진정한 위력을 체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상품 추천에 면접 조언까지

16일 캐나다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가 운영하는 쇼핑앱 ‘숍(Shop)’에서 ‘봄 재킷을 추천해달라’고 입력하자 챗봇이 성별·예산 같은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던지고는 곧 8개 제품을 화면에 보여줬다. ‘좀 더 밝은 옷을 추천해줘’ 같은 추가 명령도 가능했다.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누르면 바로 제품 상세 페이지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쇼핑 도우미 서비스는 오픈AI가 챗봇 ‘챗GPT’에도 적용한 거대 언어 모델 GPT-3.5 터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정 비용을 내고 AI 기능을 빌려 쓰는 셈인데, 가격은 대략 영어 단어 750개당 0.002달러(약 3원) 정도다.

쇼피파이뿐만 아니라 장보기앱 인스타카트, 소셜미디어 스냅챗, 학습앱 퀴즐렛 등이 오픈AI의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거나 곧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예컨대 스냅챗은 지난달 말 유료 구독자를 대상으로 ‘My AI’라는 챗봇 서비스를 시작했다. 친구 생일 선물 추천부터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국내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AI 여행플래너 서비스를 선보였다. 챗봇의 일종으로 ‘제주도 1박2일 일정 추천해줘’ 같은 질문을 입력하면 시간대별로 자세한 여행 일정을 짜준다. 일정에 적힌 장소나 숙소를 클릭하면 회사가 파는 여행 상품 페이지로 바로 연결된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AI가 여행 일정을 짜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마이리얼트립

이미지 기반 서비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디지털 초대장·엽서·그래픽 등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앱 ‘디자이너’에, 이스라엘 스타트업 믹스타일은 인테리어 디자인 플랫폼 ‘데이드림’에 이미지 생성 AI를 접목했다. 믹스타일 측은 “달리와 믹스타일 기술을 연결해 플랫폼 안에서 1분 만에 맞춤형으로 벽에 부착할 수 있는 액자를 만들고 구매까지 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인테리어 플랫폼 믹스타일은 AI로 맞춤형 그림 액자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믹스타일

국내에선 네이버가 작년부터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를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이를 활용해 광고·제품·회사 소개 문구 등을 자동 생성해주는 AI 서비스를 만들었고, 우주문방구는 작가가 입력한 문장을 바탕으로 작품에 어울릴 만한 다양한 표현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네이버는 기업 활용성을 더 높인 ‘하이퍼클로바X’를 7월 공개할 예정이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지난달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누구나 저마다의 목적에 최적화된 AI 상품을 만들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서비스 따라 맞춤형으로 활용

이런 기업들이 초거대 AI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아니다. 보통 서비스 내용과 형식에 적합하도록 해당 AI를 맞춤형으로 재설계한다.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AI를 만들지, 주식 시장 동향을 분석해주는 AI를 만들지에 따라 해당 분야 답변을 더 잘 하도록 조정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사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국내 채용 플랫폼 원티드가 만든 ‘AI 면접코칭’ 서비스는 채용 공고에 따라 예상 면접 질문을 만들어주고, 답변을 입력하면 ‘구체적인 예시를 넣어라’ 같은 조언도 제공해준다. 원티드 운영사 원티드랩은 이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오픈AI의 인공지능 GPT-3를 활용하는 동시에 자사가 그동안 축적해온 채용 공고와 이력서 데이터 250만 건가량을 추가로 학습시켰다. 원티드랩 관계자는 “원래 채용 공고와 구직자 이력서를 비교해 서류 합격률을 예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쌓아온 데이터를 GPT와 연동해 더 적절한 질문·조언을 생성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커지는 생성 AI 시장

같은 원리로 기업 내부 업무에도 초거대 AI를 맞춤형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AI 카피라이터 ‘루이스’를 개발해 지난 2일부터 마케팅 문구 초안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하이퍼클로바를 기본 엔진으로, 여기에 현대백화점이 3년간 사용해온 광고 카피와 판촉 행사 문구 등에서 고객 호응을 얻었던 데이터 1만여 건을 집중적으로 학습시켰다. 마케팅 타깃 연령대까지 고려해 문구 어투를 조절하기도 한다. 예컨대 타깃을 20대로 설정하면 ‘인싸가 되고 싶다면 현백으로 모여라’ 같은 식으로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이전에 외부 전문 카피라이터와 소통하며 1차 광고 문구를 만들기까지 2주 정도 걸렸지만, 루이스를 활용하면서 3~4시간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큰 비용과 시간이 들이지 않고도 AI 학습 데이터와 기능을 빌려와 맞춤형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AI 기능을 탑재한 기발한 앱과 서비스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AI 여행플래너를 내놓은 마이리얼트립은 해당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지 이틀 만에 실제 서비스 구현까지 완료했다고 한다.

미 IT 전문지 와이어드는 “많은 비지니스 영역에서 AI 경제학이 변하고 새로운 혁신이 촉발될 것”이라며 “이는 새로운 AI 골드러시의 시작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앞으로 사용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일부 업체 초거대 AI 모델에 대한 종속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데이터 보안 위험에 대한 비판도 꾸준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최근 오픈AI는 “고객이 동의하지 않으면 고객사를 통해 얻는 데이터를 AI 모델을 교육하거나 개선하는 데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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