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약세장에 고개를 떨궜던 투자자들이 올해 들어서는 미국 금리와 중국 리오프닝이라는 금융시장 양대(兩大)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조만간 이뤄질지,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제가 리오프닝(방역 완화 및 해제) 이후 다시 비상(飛上)할 수 있을지에 따라 올해 투자 성패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지만, 두 변수 모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요동치는 美금리 전망
최근 미국 금리 전망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형국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 우려와 인플레이션 둔화로 연준이 3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베이비 스텝(한 번에 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었다. 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7일 미 의회에 출석해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2월 비농업 취업자 수(31만1000명)가 10개월 연속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것으로 발표되면서 ‘빅 스텝(한 번에 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다시 크게 높아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3월 빅 스텝 가능성은 지난달 10일 9.2%에 불과했다가 지난 10일에는 40.2%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초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 대형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VB)의 파산 사태다. 이 사태가 대형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면서 연준이 섣불리 빅 스텝을 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게 됐다. 지난 16일 기준 빅 스텝 확률은 ‘제로(0)’가 됐고, 베이비 스텝 확률은 64.2%로 상승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재 4.50~4.75%인 미 금리가 최종적으로 5.75~6.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으나, SVB 사태에 이어 미국 중소은행인 시그니처뱅크의 파산, 세계 9위 IB(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자금 유출 위기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이런 전망은 자취를 감췄다. 물가, 고용 불확실성에 금융권 위기까지 겹치면서 연준 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와 매파(통화 긴축 선호) 간 기싸움은 앞으로 더욱 팽팽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VB사태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싸우던 연준이 금융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또 다른 책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中리오프닝, 낙관만 하기엔 일러
미 금리 향방이 안갯속이라면, 중국 경제는 긍정적인 신호가 좀 더 뚜렷한 편이다. 지난달 이후 확연한 내수 경기 개선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간 49에 머물다 지난달 51.6을 기록했다. PMI는 기업에서 자재 구매를 담당하는 직원이 경기를 어떻게 보는지 가늠하는 지표로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서비스업 PMI도 지난 1월 52.9에서 2월에는 55.0으로 크게 상승했다. 중국 경기와 상관관계가 높은 발틱운임지수(BDI)도 2월 중순 530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6일 1258까지 올랐다. 3주 만에 2.4배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발틱운임지수는 벌크선(곡물·석탄·철광석 등을 나르는 선박)의 운임(運賃)을 보여주는 지수로, 원자재 최대 수입국인 중국 경기가 활기를 띨수록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 중국 경제가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올해 전체로 보면 리스크 요인이 적지 않다. 먼저 소비 심리가 지지부진한 점이 걸림돌이다. 시장조사 업체 윈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도시 거주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 저축을 선호하는 가구 비율은 사상 최고치인 61.8%를 기록하며 전기 대비 3.7%포인트 증가했다. 올해 1월 가계의 차입 규모도 전년 대비 70%나 감소한 상태다. 가계가 소비나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려 하지 않고, 저축을 늘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사상 최고 수준인 20%에 육박한 것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다. 재정 여건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3%에 그친 성장률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달 초 열린 양회(兩會)에서 중국은 성장보다 안정에 방점을 둔 국정 운영 방안을 채택했다. 중국 정부의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목표치는 3%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양회 정부업무보고 자료의 메인 페이지에서도 재정 투자 항목은 찾을 수 없다. 대신 부동산 관련 신규 부채 부담을 억제하고 대출 잔액을 축소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잡음에 일희일비 말고, 큰 흐름 봐야”
전문가들은 단기 투자자가 아니라면 미국 금리와 중국 리오프닝 이슈와 관련한 잡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큰 흐름을 보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미국 금리의 경우 3월 FOMC의 금리 변동 폭을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장에 반영된 최종 금리(terminal rate) 범위가 5% 안팎에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이달 초만 해도 최종 금리 범위가 5.50~5.75%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SVB, 크레디트스위스 사태 이후 금리 인상 전망은 크게 둔화한 상태다. 3월 FOMC에서 금리 인상이 이뤄진다 해도 경기 하강 압력이 높아진 점,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월보다 0.4%포인트 낮은 6.0%를 기록하며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흐름이 지속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최종 금리가 5%대 중반을 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국 역시 3~4월에는 리오프닝과 기저효과 등으로 경제지표가 개선되더라도 하반기에는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 3기 지도부가 성장보다 사회 안정과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만큼 대대적 부양책이 나오거나 중국 소비층이 마음껏 지갑을 열기는 어려운 구조다.
신동준 KB증권 WM투자전략본부장은 “물가 하락세와 겨울철 따뜻한 날씨 영향으로 최근 미국 경제 지표가 일시적 호조를 보였다고 해도 미국 금리가 예측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중국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인프라 관련 수혜주들을 중심으로 비율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 좋은 접근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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