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워라밸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1주일에 나흘만 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일본 히타치 등 외국 기업뿐 아니라 여기어때, 에듀윌 등 국내 기업들이 주4일제를 도입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주4일제를 도입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다. 벨기에는 지난해부터 주4일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했다.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38시간인데, 근로자가 원할 경우 하루 최대 9시간 30분씩 나흘 동안 일하면서 근로시간을 채울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주 4.5일제를 지난해 도입했다.
그런데 주4일제 근무를 미리 경험해본 근로자들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주4일 근무는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의외로 스트레스가 더 늘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쉬는 날이 많아지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근무일 줄어도 일은 안 줄더라
미국의 온라인 서식 제작 업체 폼스택(Formstack)은 2021년 10월부터 석 달 동안 일하는 날을 나흘로 줄이는 실험을 했다. 물론 급여는 그대로 지급했다. 이후 결과를 봤더니 직원들의 생산성(13%)과 행복도(14%)가 증가했다. 그런데 동시에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2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 인사책임자인 토미 폴은 포브스에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양의 작업을 완료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이 걱정했다”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영국 연구기관 ‘오토노미’ 등 주관으로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영국의 61개 기업이 참여한 주4일제 실험도 결과가 비슷하다. 금융, 보건, 제조, 건설, 광고·홍보 등 다양한 업종 근로자 2900여 명이 참여한 이 실험에서 근로자들은 한 주에 나흘, 하루 평균 8시간 30분을 일했다. 그 결과 71%는 육체적·정신적 무력감(번아웃)이 줄었다고 응답했고, 실험 기간 퇴사하는 직원 수도 57% 감소했다. 그런데 주4일 근무 전보다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사람은 39%밖에 되지 않았다. 48%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고, 13%는 오히려 늘었다고 했다.
주4일제가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까닭은 업무량 및 업무 강도와 관계가 깊다. 일하는 날이 닷새에서 나흘로 줄어도 총 근로 시간과 업무량이 줄지 않으니 업무 강도가 더 세진 것이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회사 방침에 따라 하루 8시간, 한 주에 나흘간 일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업무 마감 시간을 맞추려면 근무일에는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며 “(주4일제는) 5일간 해야 할 일을 4일에 구겨 넣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특히 관리자들의 불만이 많다. 주32시간제를 도입한 국내 중견기업의 팀장급 A씨는 부하들이 남겨 놓은 일을 매일 집으로 가져간다. 이 회사는 주중 하루는 오후에 출근하고, 나머지 나흘은 하루 7시간씩 일하는 식으로 변형된 형태의 주4일제를 실시 중이다. A씨는 평균 하루 다섯 가지 일을 팀원들에게 할당하는데, 일부 팀원들은 업무 시간이 다 됐다고 세 가지 정도만 하고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팀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업무량이 많다 보니 주 32시간 내에 다 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면 스스로 조금 더 일을 해서라도 일을 마쳐야 하는데, 일부 직원은 딱 32시간만 일하고 퇴근하기 때문에 계속 일이 밀린다”고 했다. 남은 일은 A씨가 직접 하거나 평소 묵묵하게 일하는 다른 팀원에게 넘긴다. 그는 “일을 떠맡는 직원이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틀림없이 속으로는 불만이 많을 것”이라며 “이래저래 팀 분위기도 흐트러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주4일제가 근로자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HR 기업 피플훔 조사에 따르면 주4일제로 일하는 근로자가 초기에는 주5일제 근로자보다 만족감이 높았지만, 25개월 후에는 만족감이 거의 사라졌다. 마이런 포틀러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명예교수는 “주4일제를 경험한 근로자 중 여섯 달 후에도 주4일제를 이어가겠다고 답한 직원은 56% 정도였다”며 “주4일제로 인한 단점들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준비 없이 주4일제 했다간
기업 반응은 어떨까. 영국에서 주4일제 실험에 참여한 기업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체 기업의 평균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8.5점으로 조사됐다. 회사 실적에도 당장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실험에 참여한 기업 23곳을 대상으로 실험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 매출을 비교했더니 평균 1.4%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토노미는 보고서에서 “근무 시간이 줄었음에도 영업에 따른 성과와 생산성이 그대로 유지되다 보니 기업들이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내 한 중견 기업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주4일제를 도입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업무 공백이 생길 것을 예상해 직원도 더 뽑았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았고, 회사도 “주4일제를 했더니 성과가 더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많이 늘린 인력도 부담이 됐다. 결국 매출을 끌어올리려면 직원들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영업 현장을 더 뛰어야 한다는 판단에 4년간 이어온 주4일제에서 벗어나 주5일제(일부 부서 제외)로 돌아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있지만, 회사 사정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주4일제가 인력 구조조정의 빌미로 작용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대기업 상무는 “20년 이상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복리 증진을 위해 주4일제를 시행하겠다’ 같은 소리를 들으면 사실상 구조조정 사전 작업으로 들린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은 주4일제를 일부 도입한 뒤 회사 조직을 진단하고 부서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해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결국 주4일제를 제대로 정착시키려면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주4일제 글로벌(4 Day Week Global)’ 조 오코너 대표는 “경영자가 아무리 치밀해도 각 직원의 복잡한 일상 업무를 알지 못하므로 모든 위치에 있는 근로자의 생각을 잘 들어야 한다”며 “얼마나 오랜 기간 계획을 했느냐가 주4일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