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혁신과 창조 시대다. 혁신적 아이디어, 혁신적 제품, 혁신적 제도 등 사회 모든 면에서 혁신과 창조를 강조한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이 코딩을 배우고 발명가가 된다면 세상에 혁신이 넘쳐날까?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사람들이 혁신적 제품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보았다. 혁신에는 창조적 혁신자 외에 다른 요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혁신자, 창조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새로운 제품이든 서비스든 예술 작품이든, 그동안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런 창조자들은 자기가 새로 만들어내는 제품, 서비스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다른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어느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이런 사람이 기크(geek)이다.

하지만 기크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세상은 바로 열광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 대부분은 새로운 발명이 이루어졌는지 알지도 못한다. 혁신적 제품이 생기면 그것을 알아보고 대중에게 소개하고 알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2010년 신제품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창업 초기인 1976년 찍은 자신(오른쪽)과 스티브 워즈니악의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경영과 디자인에 밝은 잡스와 프로그래머인 워즈니악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가며 애플 컴퓨터를 세상에 내놨다. /AP연합

기크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도 같이 하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기크는 사람보다는 제품과 기술에 더 익숙하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떤 식으로 알리고 판매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일에는 시장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대중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슈링크(shrink)다. 기크가 만들어낸 혁신적 상품은 슈링크를 만났을 때 비로소 세상에 소개되고 알려질 수 있다.

화가는 기크다.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큐레이터는 슈링크다. 발명가, 엔지니어, 영화감독, 작가는 기크다. 새 발명품을 사업화하는 경영자, 마케팅 전문가, 영화 제작자, 출판사는 슈링크다. 해리포터 소설은 조앤 롤링이 창작했다고 해서 히트한 게 아니다. 열두 출판사가 거절한 원고를 블룸즈버리 출판사가 출판하겠다고 결정함으로써 해리포터 신화가 시작됐다.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소설가 롤링과 출판사 블룸즈버리 모두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이 있었지만 직접 컴퓨터를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짤 기술력은 없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천재 프로그래머였지만 잡스 같은 스타성이나 유창한 언변은 없었다. 잡스와 워즈니악 두 사람이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애플이라는 위대한 기업은 아마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창조적인 기크만 있다고 해서 혁신적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기크가 창조한 것을 상업화하고 전파할 슈링크들이 있어야 한다. 정말 혁신 사회를 만들려면 기크를 강조하는 만큼 슈링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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