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1953년 12월 UN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미 대통령박물관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이던 1953년 4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기회’라는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한 달 전 스탈린이 사망한 소련을 향해 군비 경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자고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총과 전함, 로켓은 궁극적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며 “폭격기 한 대 값이면 튼튼한 현대식 학교 30곳을 짓거나 완벽한 설비를 갖춘 병원을 두 곳 만들 수 있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무기 대신 번영에 투자하자는 그의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젠하워 정부는 임기 내내 전체 예산의 50~60%를 국방비로 썼습니다.

‘총이냐, 버터냐’는 인류 역사 내내 통치자들을 고민에 빠뜨린 문제입니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총이 상징하는 안보와 버터가 상징하는 민생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경제와 사회 재건에 몰두하느라 국방 예산을 깎고 군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고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반대로 소련은 미국과 군비 경쟁을 하느라 자원 대부분을 국방비에 쏟아부었다가 체제 내부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했습니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총과 버터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듯 베트남전 확전과 ‘위대한 사회’ 어젠다를 함께 추진했다가 둘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무리한 통화 증발(增發)로 미국은 한동안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지난 30여 년간 비록 국지적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세계는 대체로 총보다 버터 만드는 일에 열중해 왔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에서 다룬 대로,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가 다시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올 30년이 지난 30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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