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런던에서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와 자동차 판매상 찰스 롤스가 만나 탄생한 롤스로이스. 승용차에서 시작해 항공기·선박용 엔진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에서 모두 동력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명성을 떨쳤다. 자동차 부문은 1973년 분리해 현재는 BMW그룹으로 넘어갔지만, 이후에도 미래 동력원을 개발하는 기술 개척자로서 위용을 지키고 있다. 현재 세계를 누비는 민항기 1만3000대, 군용기 1만6000대가 롤스로이스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핵 잠수함 추진 기술도 갖고 있다.
근년에 롤스로이스는 새로운 분야로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소형 원자로를 달로 쏘아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가 하면, 수소 연료 항공기와 핵 추진 우주선 엔진 개발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래형 이동 수단인 이른바 ‘에어택시’ 시장에서도 롤스로이스는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29년까지 달에 원자로 보낸다
이달 중순 영국 항공우주국은 달에 설치할 소형 원자로를 제작하는 롤스로이스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90만파운드(약 46억원)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인간이 달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데 필요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원자로가 필요하다며 롤스로이스가 개발에 착수하자 정부 차원에서 지원에 나선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크기만 한 소형 원자로를 만들어 2029년까지 달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달을 비롯한 우주 공간에서의 탐사 활동은 전기 에너지 확보가 관건이다. 생명 보조 장치와 통신 수단을 비롯한 갖가지 장비를 작동시키려면 안정적으로 대량의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롤스로이스는 우주 공간에 원자력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달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하면 전기 공급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달은 느린 자전 속도 때문에 낮과 밤이 각 2주씩 길게 유지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태양광으로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어렵다는 판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영국 국립우주센터의 다라 파텔 연구원은 CNBC에 나와 “달 표면에 공기와 액체가 거의 없어 태양광은 물론이고 다른 신재생에너지도 안정적으로 이용하기 어렵다”며 “달의 물리적인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한 전기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가 원전”이라고 했다.
◇소형 원자로 시장의 다크호스
이미 롤스로이스는 지상에서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설치한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인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2030년이 되면 세계 SMR 시장은 2020년 대비 4.4배 가량 커진 188억달러(약 24조6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SMR은 세계 주요국이 서로 빨리 상용화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롤스로이스가 대표 선수로 뛰고 있다. 2029년까지 1호기를 상용화하고 2035년까지 10기, 2050년까지 16기의 SMR을 영국 내에 건설해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약 600명의 직원이 SMR 개발에 달라붙었다.
롤스로이스가 개발 중인 SMR은 차지하는 부지가 기존 대형 원전의 10분의 1 넓이다. 원자로를 비롯해 주요 설비를 하나의 커다란 용기에 담은 일체형이다. 수명은 60년이며 하나당 470메가와트(MWe)의 전력을 생산해 45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16기의 SMR 건설이 완료되면 520억파운드(약 84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폴 스테인 롤스로이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BBC에 나와 “SMR 사업으로 4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영국의 원전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에너지 공급난으로 큰 타격을 입은 영국 정부는 롤스로이스의 SMR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원래 영국은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를 만든 나라다. 하지만 원전 비중을 낮추고 풍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영국 내 전력 수요 가운데 20%를 원전이 맡고 있는데, 전체 7기의 원전 중 6기가 노후화를 이유로 2030년까지 폐쇄될 예정이다. 그 빈자리를 SMR로 메운다는 게 영국 정부의 계획이다. 롤스로이스의 SMR 개발은 1단계로 5억파운드(약 8000억원)를 투입해 진행 중인데, 그중 2억1000만파운드를 영국 정부가 지원했다.
◇에어택시로 교통 혁명 노린다
롤스로이스는 올해로 자동차 생산에서 손을 뗀 지 50년이 됐다. 하지만 AAM(미래형 항공 모빌리티)을 개발해 다시 이동 수단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AAM은 전기 에너지로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니며 수직이착륙하는 비행체를 말한다. 쉽게 표현해 ‘에어 택시’라고 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2026년 AAM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AAM은 도심 내에서 다니는 UAM(도심형 항공 모빌리티)은 물론이고 도시와 도시 간의 장거리용을 뜻하는 RAM(지역 간 항공 모빌리티)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롤스로이스는 작년 7월 AAM에 탑재할 연료 전지와 추진 시스템 개발을 위해 현대자동차와 기술 협력을 하기로 손을 잡아 눈길을 끌었다. 롤스로이스는 현대차와 협력해 AAM 비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추진 장치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별도로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수소 항공기 엔진의 지상 시험에 성공했다. 기존 항공기용 터보 엔진을 개량한 다음 수소 연료를 주입해 시동을 걸어 저속으로 가동시킨 것이다. 수소 연료는 기존 항공유와 달리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어 상용화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미래의 우주선에 장착할 핵 추진 엔진도 개발하고 있으며, 지난달 초기 디자인을 공개했다.
롤스로이스 주가는 코로나 사태 당시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올 들어서는 47% 급등했다. 리오프닝에 따라 항공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고, 작년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돈 덕분이었다. 2021년과 비교해 지난해 매출은 15.9%, 영업이익은 57.5%가 각각 늘었다. 지난 1월 취임한 투펀 어진빌직 최고경영자(CEO)는 “근년에 실적이 저조했던 걸 코로나 탓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살아남기 위해 변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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