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순환론 중에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란 것이 있다. 경제는 45~6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는 이론이다. 1922년 당시 소련의 촉망받는 젊은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가 발표했다. 그런데 그는 이 이론을 발표한 후 사상범으로 몰려 투옥된다.
공산주의 이론에서는 자본주의는 자체적으로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망할 것으로 보았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경제 현상이 바로 경제 위기와 불황이다. 경제 위기와 불황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된 경제 모델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1929년 대공황은 이런 공산주의 이론을 더할 나위 없이 확실히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콘드라티예프의 경기 순환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경제 위기와 불황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호황→불황→호황→불황을 거치며 발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에서 볼 때 콘드라티예프의 이론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 서구 경제가 대공황을 딛고 회복하면서 그의 이론이 맞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사상범으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콘드라티예프는 마치 화풀이당하듯 1938년 총살형에 처해진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콘드라티예프 파동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에 보다 자세히 연구된다. 1970년대 미 MIT의 포레스터 교수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과잉 투자, 빚을 내서 하는 투기 등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콘드라티예프 불황이 닥친다고 보았다. 과잉 투자가 모두 정리되고 파산하면서 문제 요소들이 다 사라진다. 그러면 새롭고 건전한 투자가 다시 시작되면서 신(新)산업이 나타나고 경제는 다시 호황에 진입한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불황과 경제 위기는 과잉 투자와 빚 투자 등의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보다 건전해지고,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는 토양이 만들어진다.
현대 경제에서도 주기적으로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 21세기 이후만 따져도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과 2008년 금융 위기가 있었다. 이번에도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미증유의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제 위기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일까? 반(反)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그렇게 본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정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어느 쪽이 맞을까? 오늘날 콘드라티예프는 사상범이 아니라 경제 순환 주기를 발견한 위대한 경제학자로 추앙받는다. 그것이 경제 위기와 불황이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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