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 일터로 돌아온다/일러스트=김영석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제나 키셀씨는 뉴욕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마흔 살 여성이다. 그는 두 아이를 돌보려고 8년 전 직장을 떠나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올해 초 공공 도서관에 나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팬데믹 동안 자녀들이 집에서 화상 수업 듣는 것을 돌봤는데, 이제 아이들이 등교하자 여유가 생겼다. 제나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내 월급으로 주택 담보 대출금과 학자금 대출을 갚고, 의료비에 쓸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코로나 장벽이 사라지자 여성들이 하나둘 일터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월 기준으로 미국 여성(25~54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6.9%로 2019년 12월과 같았다. 코로나 사태 당시 고용 절벽에서 회복됐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 1월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88.5%로, 2019년 12월(89.1%)보다 낮다. 팬데믹 동안 여성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인력 시장에서 여성들이 약진하는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고학력 미국 여성, 대거 일터 복귀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대거 직장을 그만뒀다. 팬데믹 동안 전체 미국 남성 중 14%인 1190만명이 직장을 잃은 것과 달리 여성은 전체의 18%인 1360만명이나 일터를 떠나야 했다. 육아 부담이 큰 여성들은 경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팬데믹으로 여성이 많이 포진한 업종인 레저, 외식, 교육, 보건 분야가 타격이 유독 컸던 영향도 있었다. 반면,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편이었다. 자택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집을 고치는 데 미국인들은 많은 돈을 썼다. 남성 근로자가 많은 건설 분야 인력 수요가 커졌다. 온라인 배송이 활발해져 배달원이 대거 필요해진 것도 남성들이 인력 시장에서 타격을 덜 받은 요인이었다.

그랬다가 작년을 지나며 집에 갇혀 있던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일터로 돌아오는 흐름이 생겨났다. 특히, 자녀가 있는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다시 얻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는 작년 12월 기준으로 아이를 가진 미국 여성 가운데 직장을 가진 사람은 전년보다 99만명 증가했다고 추산하며, “상대적으로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이 일자리 복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린이집을 비롯한 사회적 보육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덕분에 여성들이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고학력 여성들의 일터 복귀 흐름도 뚜렷하다. 미 노동부 통계를 보면 학사 학위 이상 학력을 가진 여성 가운데 일하는 이는 2020년 2901만여 명이었는데, 올해는 2월 기준으로 3134만여 명이었다. 3년 사이에 ‘일하는 대졸 여성’이 230만여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 반해 고졸 이하 여성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2020년 1545만여 명에서 올해 2월 1689만여 명으로 증가 폭(144만여 명)이 상대적으로 작다.

재택근무·인플레이션이 경단녀 줄여

자녀가 있거나 학력 수준이 높은 여성이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건 ‘재택근무(원격 근무)’가 보편화된 덕분이다. IT·금융 등 고학력자들이 종사하는 직장에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자 잘 배운 여성이 일자리를 회복하는 데 길을 터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택근무는 팬데믹 한창 때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다. 그래도 미국 갤럽에 따르면, 작년 2분기 기준으로 완전한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 직장인 비율이 29%에 달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적절히 섞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자리 잡는 것도 고학력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갤럽 집계로 하이브리드 형태로 일하는 미국 직장인은 작년 2분기에 49%까지 늘었다. 이에 반해 저학력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요식업이나 레저업종에서는 대면 서비스직이 많아 재택근무를 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고졸 이하 여성의 일터 복귀가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여성들이 일자리 복귀를 서두르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살림이 빠듯해지다 보니 다시 돈을 벌려고 일자리로 복귀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구인난을 겪는 기업들이 임금을 가파르게 올린 것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임금 상승률은 팬데믹 이전만 해도 3%대였는데, 지난해 들어서는 6%를 넘어섰다. 클라우디아 올리베티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간당 임금이 10달러라면 매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15~16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여성들이 일자리를 가지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여성들이 일터로 돌아오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에서 여성 고용률은 2019년 52.2%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51.8%로 떨어졌는데, 지난해에는 53%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도 여성 고용률이 2019년 12월 72.5%에서 2020년 12월에는 71.4%로 떨어졌다가, 작년 12월에는 72.3%로 거의 원상 복구됐다.

국내 여성 일자리는 미혼 20대가 주도

우리나라의 여성 취업자 수도 코로나 사태 이후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에서 외형상 미국과 비슷하다. 2019년 말 1054만명이었던 여성 취업자(15~64세)는 2020년 말에는 1015만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2021년 말에는 1049만명으로 반등했고, 지난해 12월에는 1077만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많아졌다. 지난해 12월 남성 취업자(1396만명)가 여전히 2019년 12월(1412만명)보다 낮은 것과는 대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취업자 수 증가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내용상 다르다. 20대의 취업자 수는 2019년 2월 189만8000명이었는데, 2020년 이후 해마다 늘어 지난해 12월에는 195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20대 여성들이 갈수록 결혼을 멀리하는 대신, 취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점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20대 여성 취업자가 증가한 것과 달리 30대 여성 취업자는 2019년 12월 219만명에서 지난해 말 216만800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40대 여성 취업자도 266만3000명에서 255만7000명으로 감소해 여전히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미국 여성들은 보육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면서 일자리 복귀에 적극적이지만, 우리나라 30~40대 여성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양육 부담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일자리로 돌아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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