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12월 유럽의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는 더블린발 런던행 항공권(편도 기준)을 9.99 유로(약 1만4000원)에 내놨다. 정상 가격이 42유로였던 점을 고려하면 ‘초저가 땡처리’ 항공권이었다. 그 무렵 더블린발 프랑크푸르트행 항공권은 12.99유로에 팔았다. 라이언에어는 당시 유럽 내 항공권 상당수를 20유로 이하로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저가항공사들은 앞다퉈 가격을 낮췄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원화 기준 1만원대 국제선 항공권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저가 항공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코로나 사태 충격이 서서히 사그라지자, 항공사들이 초저가 항공권을 잘 내놓지 않고 있다. 유럽 저가항공사 위즈에어는 2019년 11월 런던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나 루마니아로 가는 항공권을 편도 9.99유로에 팔았다. 하지만 현재 위즈에어를 이용해 런던에서 리투아니아로 가는 항공권은 왕복 기준 351유로나 된다. 최저가 이벤트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라이언에어를 이용해 더블린에서 런던으로 가려면 지금은 최소 29.99유로를 내야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9년 한 국내 항공사는 인천에서 뉴욕까지 왕복으로 88만5800원짜리 특가 항공권을 팔았다. 그런데 현재 같은 항공사를 통해 오는 6월 초에 뉴욕으로 가장 싸게 다녀오려면 260만원이 든다.
초저가 항공권이 사라지는 것은 승객이 증가했지만, 항공편이 여전히 부족한 점이 영향을 끼쳤다. 전 세계 여객기 운항은 코로나 유행 전인 2019년 3890만편이었는데, 2020년에는 1690만편으로 절반 밑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2010만편으로 반등했지만, 여전히 2019년의 52% 수준이다. 항공편은 늘어나지 않은 가운데 여행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값이 내려가지 않는다.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동남아처럼 가까운 곳은 한 달 전, 미주·유럽 노선은 두 달여 전부터 가격을 크게 낮춰 팔았는데, 지금은 공급(항공편)이 달리기 때문에 정가로 팔아도 잘 팔린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도 영향을 줬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유 가격은 2021년보다 약 120% 급등했다. 마이클 오리어리 라이언에어 최고경영자(CEO)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서 100달러 이상으로 치달은 만큼 더이상 초저가 항공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의 경우 항공사에 각종 환경부담금이 부과될 예정이어서, 초저가 항공권 판매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유럽 내 항공사들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도 일정량까지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2026년부터는 항공 업계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만큼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부담금 때문에 향후 유럽에서 출발하는 항공권 가격은 승객 한 사람당 10유로 정도 오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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