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29세 청년 대니 레이크스는 미국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주문 관리 자동화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P&G는 2018년부터 레이크스처럼 자폐성 장애를 안고 있는 청년들을 채용하고 있다. 입사 후 5주간 의사소통 전략, 동료들과의 관계 형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다. 레이크스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내가 자립할 수 있도록 P&G가 기회를 줬다”고 했다.

지난해 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인기를 얻었다. 특출난 기억력을 가진 전문직이지만 취업시장에서 고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해외에서도 ‘우영우’들의 취업은 어렵다. 하지만 별도의 맞춤형 채용 절차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자폐성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JP모건, 언스트앤드영(EY), 포드 등은 2017년 ‘신경다양성 고용주 원탁회의’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우영우’ 채용에 나서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기업이 2019년에는 15개에서 올해는 59개까지 늘었다. 이런 기업들은 자폐성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조현병이나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사람까지 포괄해서 ‘신경다양인(neurodivergent)’이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나 행동, 의사소통 방식이 조금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담긴 용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신경다양인을 뽑기 위해 모의 면접과 피드백 등을 실시하며 나흘간 채용 절차를 진행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지원자들이 실제 면접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도록 분위기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차원이다. 이런 방식으로 2013년부터 작년까지 200명 정도를 뽑았다. EY는 코딩 등 실무 능력만 평가해 신경다양인 직원들을 뽑고 있다. 면접 등 통상적인 채용 방식으로는 이들의 진짜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드라마 속 우영우처럼 신경다양인 직원의 특출한 능력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경우도 있다. IT 장비 제조사 휼렛패커드엔터프라이즈(HPE)에서 소프트웨어 테스트 업무를 하던 신경다양인 직원이 프로그램에서 오류가 반복되는 것을 찾아냈다. 다른 직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뛰어난 패턴 인식 능력을 가진 신경다양인 직원의 능력 덕분에 문제를 조기에 해결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어 이들을 취업 시장에서 배제하면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 증상을 가진 아이의 수는 2000년 1000명당 6.7명에서 2020년에는 27.6명까지 늘었다. 자폐성 장애에 난독증·운동장애 등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인구 중 넓은 범위의 신경다양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5~20% 수준이다. 영국 사우스웨일스대 어맨다 커비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인재 풀이 고갈되고 있다”며 “신경다양인을 취업 시장에서 제외하는 것은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고 커다란 인력 낭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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