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52층짜리 ‘가스 컴퍼니 타워’에는 컨설팅사 딜로이트, 로펌 시들리 오스틴 같은 우량 임차인이 모여 있다. 건물 소유주는 전 세계에서 8000억달러 넘는 자산을 굴리는 자산운용사 브룩필드. 얼핏 망할 일 없어 보이는 이 건물은 지난 2월 위기에 빠졌다. 브룩필드가 이 건물과 인근 건물 두 곳을 담보로 빌린 7억5000만달러(약 1조원) 상당의 대출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결정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부동산 투자회사 ‘컬럼비아부동산신탁’도 뉴욕 등에 있는 오피스 건물 7개를 담보로 잡히고 빌린 17억달러(약 2조2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 회사 측은 “돈을 빌려준 기관들과 대출 구조조정 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실률 증가 등으로 건물 가치가 떨어지면서 이들 회사가 만기 연장이나 리파이낸싱(조달한 자금을 갚기 위해 다시 자금을 빌리는 것)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당분간 이런 채무불이행 사례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상업용 부동산은 통상 건물을 살 때 5~7년 만기로 대출을 받고 이후 건물을 매각하거나 만기 연장 또는 리파이낸싱을 통해 대출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사무실 공실률이 늘고 최근엔 금리까지 빠르게 오르며 건물 가치가 떨어졌다. 담보 가치 하락으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지면서 리파이낸싱 역시 어려워졌다. 채무를 갚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LA 지역 언론들은 “채권 은행들이 건물을 압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실제 부동산 가격은 갈수록 내려가는 중이다. 부동산 분석 업체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1년 전보다 15% 하락했다. 이 가운데 엔데믹 효과를 보고 있는 쇼핑몰이나 호텔 같은 다른 자산에 비해 오피스 부문 하락 폭이 25%로 가장 가팔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호텔이나 아파트는 객실료·임대료 상승의 혜택을 부분적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사무실은 근무 공간을 줄이려는 임차인과 씨름하며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했다.
시장에선 2~3년 전만 해도 코로나가 끝나고 사무실 복귀가 시작되면 오피스 시장이 조금씩 회복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가면서 사무실 위기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데이터 분석 업체 플레이서에이아이가 지난 2월 800개 오피스 빌딩을 분석한 결과 건물 유동 인구는 코로나 초기였던 3년 전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이 업체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섞인) ‘하이브리드 노멀’ 고착을 알리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는 사무실 복귀 움직임이 뚜렷해진 아시아·유럽과 정반대 현상이다. 아시아 일부 국가의 경우 코로나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근로자가 출근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근로자 우위 노동 시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데다, 미국 주택이 상대적으로 넓어 집에서 근무하기 좋은 환경인 점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 경기가 가라앉으며 회사 입장에서도 큰 사무실을 유지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다수 기업이 더 작은 사무실로 이전하거나 일부 공간을 재임대하는 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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