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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회사 후지쯔에 다니는 하타가키 유카(30)씨는 다섯 살짜리 반려견 노엘과 함께 도쿄 인근 가와사키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회사에 들어서면 반려견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그(dog) 오피스’로 가서 노엘을 바로 곁에 두고 일한다. 벽에는 반려견들의 사진과 이름·나이·견종·성별이 인쇄된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원래 유카는 팬데믹 때 재택근무만 하다가 작년 7월 ‘도그 오피스’가 만들어진 이후로는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노엘과 늘 함께할 수 있고 반려견을 키우는 다른 직원들과 어울릴 수도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새로운 사내 복지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허용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건강 관리도 정기 검진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심리 상담을 통해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재테크 상담을 강화해 직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새로운 복지 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사내 복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건 신세대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특히, Z세대(1997~2012년생)의 경우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일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들이 회사에 애정을 갖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복지 제도를 마련하는 게 기업들의 과제가 되고 있다.
동물 병원 갈 때 휴가 주는 회사 등장
캐나다 기업들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오는 직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온타리오주의 식품 회사 마스캐나다 본사에는 반려견이 뛰어놀 수 있는 전용 운동장이 마련돼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1년에 8시간까지 반려동물 돌봄 휴가도 쓸 수 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할 일이 생기면 휴가로 처리해준다는 것이다. 로저스보험의 캘거리 본사에는 ‘치와와 코너’라는 방이 있다. 직원 중에 치와와를 키우는 이들이 많아서 만들어준 공간이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사무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근무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홍보한다. 아마존은 미국·호주 등에서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사무실을 약 100곳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사무실에 출입 등록이 된 반려견은 모두 1만 마리를 웃돈다. 아마존은 회사 홈페이지에서 “반려견과 함께 일하면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긴장감을 낮추고,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소개하고 있다.
반려묘 친화 기업도 있다. 일본 IT 기업 퍼레이는 직원들이 고양이와 함께 출근하는 것을 장려한다. 사측은 ‘고양이와 함께 일하면 업무 스트레스도 줄어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반려동물 용품을 만드는 미국 기업 펫코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새나 물고기도 기를 수 있다.
반려동물을 겨냥한 복지 제도를 만드는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직원들이 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일랜드 반려견 복지 재단인 ‘도그 트러스트’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가 ‘반려견과 같이 출근할 수 있다면 더 자주 회사로 출근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가족에게까지 심리 상담 서비스
오랫동안 건강 유지와 관련한 사내 복지는 건강 검진 지원, 사내 체육 시설 운영 등이 주종을 이뤘다. 최근에는 정신 건강과 관련한 복지 제도가 새로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델타항공은 심리 상담 제공 횟수를 연간 7번에서 12번으로 늘렸다. 직원 본인 외에 배우자나 자녀까지 합쳐서 연간 12차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의 정신 건강 상담료가 시간당 400달러 수준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값진’ 복지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바이오 기업 진테크는 1만4000명의 직원들에게 ‘헤드스페이스’라는 명상 앱 이용료를 전액 지원해준다. 이 앱의 1인당 연간 이용료는 70달러 수준이다. 직원들의 명상 앱 사용에만 회사가 연 13억원쯤 투자하는 셈이다.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인 독일의 SAP은 ‘마음 챙김(mindfulness)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명상을 하듯 긴장을 풀고 잠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방법을 ‘건강 대사(health ambassador)’라는 직책을 가진 직원들이 가르쳐준다.
정신 건강 관련 사내 복지 역시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미국 금융 그룹인 시큐리언파이낸셜이 지난해 근로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M세대 직원 74%, Z세대의 73%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붐 세대(49%)나 X세대(58%)에 비해 이용률이 높았다.
재테크 상담도 사내 복지
요즘 젊은 직원들이 자산 불리기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재테크 상담이나 금융 교육을 새로운 복지 제도로 정착시키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블랙바우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메릴린치 같은 대형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 연금 계좌나 절세 혜택 계좌로 세금을 덜 내는 법부터 시작해 노후 대비 요령까지 직원들에게 교육을 실시한다. 모든 직원이 금융회사 전문가와 1대1로 상담할 수 있게 해준다.
처방약 가격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굿알엑스 역시 직원 대상 투자·금융 상담 서비스를 실시한다. 심지어 델타항공은 사내 금융 교육을 이수한 직원에게 1000달러를 준다. 비상금 계좌에 넣어두고 급할 때 쓰라는 취지다.
지난해 BoA가 경영자 8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4%가 금융 교육을 제공하면 직원들의 이직을 막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로나 사비아 BoA 은퇴·자산관리 부문 임원은 “금융 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실제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자산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사내 복지 프로그램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른바 B2E(business to employee·직원 대상 사업) 시장이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사내 복지 제도를 계속 확대하고 전통적인 복지 혜택도 범위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485억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사내 복지 산업의 규모는 2025년에는 584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