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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BedBath&Beyond·BB&B)’ 매장에 들어서면 ‘가정용품의 천국’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탁 트인 공간에 냄비와 수건, 침구류 같은 갖가지 가정용품을 천장까지 쌓아놓고 판다. BB&B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파는 가게(CNN)’이자 ‘새집과 결혼 선물을 위한 필수 쇼핑 장소(블룸버그)’로 불렸다.
이렇다 할 경쟁 기업도 없이 미국 가정용품 소매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BB&B는 2017년까지 계속 매장을 늘려가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BB&B가 지난달 뉴저지주 법원에 파산 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17년 1000개를 웃돌았던 매장은 지난달 360개까지 급감했다. 다음 달까지 남은 모든 매장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다. 유통 업계에선 “한때 미국 최고의 소매점 중 하나였던 회사가 순식간에 망가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표 ‘카테고리 킬러(전문 판매점)’로 꼽히던 BB&B가 왜 빠른 몰락의 길을 걷게 됐을까.
20% 쿠폰 전략으로 승승장구
BB&B는 1971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워런 아이젠버그와 레너드 파인스타인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두 사람은 할인점 체인에서 함께 일하다 “전문점이 유통업의 다음 물결이 될 것”으로 보고 침구·욕실용품을 모아 파는 전문 매장을 차렸다. 이후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운동장 크기 초대형 매장을 열고 냄비와 프라이팬, 수납장, 옷걸이 같은 제품까지 추가했다. 1980년대에 20여 개였던 매장은 2000년 241개, 2010년 965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BB&B는 각 매장 관리자가 상품 구매의 70% 이상을 결정할 정도로 지역별 자율성을 부여했다. 예컨대 부자 동네에선 보통 집집마다 유리로 된 샤워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샤워 커튼이 잘 팔리지 않는데, 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지 관리자라고 본 것이다. 이런 동네별 맞춤 전략이 인기를 끌었다.
BB&B가 우편물에 넣어 돌린 20% 할인 쿠폰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케팅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유통 업체들이 일부 품목에 특정 기간에만 할인 행사를 연 것과 달리 BB&B는 표시된 기한이 끝난 쿠폰도 받아줬다. 할인받을 수 있는 품목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쿠폰도 있었고, 한 번에 여러장 들고가 품목별로 할인받는 것도 가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쿠폰으로 손님을 끌어들인 다음 정가로 다른 품목도 구매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했다. 쿠폰은 BB&B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공룡 아마존에 뒷북 대응
BB&B 위상은 온라인 쇼핑 시대가 개막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BB&B의 강점은 다양한 가정용품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물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손쉽게 최저가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저렴하게 판다’는 BB&B의 장점이 퇴색됐다.
‘아마존보다 비싼 곳’이 되자 성공의 밑천이었던 쿠폰 마케팅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손님들은 쿠폰 없이는 매장에 오지 않았고, 매장에 오더라도 쿠폰 적용 가능한 제품만 사고 다른 물건은 온라인에서 주문했다. 매출과 순이익이 줄기 시작했고 2018년 회사 수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쿠폰 마케팅이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회사는 뒤늦게 쿠폰 발행을 줄이고 사용도 까다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이미 수십년간 쿠폰에 익숙해져 이를 특별한 혜택이 아닌 기본으로 여기는 소비자가 많았고 반발이 심해졌다. 대안 없이 쿠폰 전략만 축소한 것이 패착이었던 셈이다.
온라인 상거래 시대가 열렸지만 BB&B는 변화에 맞춘 투자를 게을리했다. 여러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대응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예컨대 전자제품 전문 매장 베스트바이는 최저가 보장 전략을 내놓고 제품 관련 상담과 수리를 도와주는 전문가를 배치했다.
반면 BB&B는 마땅한 대응 전략을 세우지 못했고 온라인 배송 창고나 온라인몰 투자에 소홀했다. 창업자 아이젠버그는 올해 초 인터뷰에서 “만약 누군가 ‘당신 손자들은 인터넷으로 모든 옷을 사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사람들은 밖에 나가 쇼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라며 “전자상거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빨리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설익은 PB 전략 제 발등 찍어
2019년 교체된 경영진이 해결책으로 들고나온 자체 상표(PB) 전략도 패착이었다. PB 상품은 해당 유통 업체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 만큼 고객을 불러들이는 효과가 크고, 보통 일반 제조 업체 제품보다 저렴해 가격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메이시스백화점 등이 PB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BB&B 역시 이들을 벤치마킹해 일반 브랜드 제품을 매장에서 치우고 PB 제품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회사가 흔들리던 와중에 다수 PB 브랜드를 한꺼번에 추진하면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다른 업체들은 수년에 걸쳐 개발팀을 갖추고 광고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지만 BB&B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PB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각 매장에 일률적으로 보급하면서 회사 장점 중 하나였던 매장 자율성도 위축됐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발 공급망 차질로 제품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매대가 텅텅 비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기존 BB&B 매장을 좋아하던 고객들마저 떠나며 회사 몰락은 가속화됐다.
이 밖에도 방만한 자사주 매입 정책과 인수·합병한 소규모 소매점들과 시너지 부족 등도 BB&B의 실패 원인으로 거론된다. 미국 소매시장 전문가인 워런 슐버그는 “BB&B의 실패는 변화에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시대에 뒤처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유통 업체에 경고가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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