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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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작전을 수행할 요원을 찾는다. 일당은 최대 2000달러(약 270만원). 추가로 보너스도 준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민간 군사·보안 업계 채용 사이트인 ‘사일런트 프로페셔널스(Silent Professionals)’에 이런 용병 구인 공고가 올라왔다. 유럽에서 5년 이상 군사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소형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실전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등의 자격 요건이 붙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용병 업체 ‘바그너그룹’ 소속 전사 1000여 명이 전쟁에 투입됐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모두 1만6000건 이상의 지원서를 받았다”고 했다. 러시아 측에 투입된 용병은 꾸준히 늘어 지금까지 5만명이 넘는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이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치렀다.

군대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무력 사용이 가능한 군인으로 구성된 조직을 일컫는다. 군대를 보유하는 건 국가만 독점적으로 가지는 권한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전통적인 군대의 개념이 점점 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무력 분쟁에 민간 군사 업체에 고용된 ‘회사원 전사’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세계 다양한 민간 군사 업체와 계약을 맺고 전투는 물론이고 급식·수송·의료 등 후방 지원 서비스를 맡긴다. 러시아는 핵심 전투 요원으로 용병을 고용해 전방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 외에도 용병 업체들은 병력을 훈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작전을 짤 때 자문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처럼 민간 군사 기업들에 일감이 몰리면서 ‘용병 비즈니스’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마케팅여론조사협회(ESOMAR)에 따르면, 전 세계 민간 군사·보안 서비스 시장은 지난해 2581억달러(약 345조원)에 달하며, 매년 성장을 거듭해 2030년이면 시장 규모가 4468억달러(약 59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이하 러·우) 전쟁이 용병 산업이 팽창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냉전 종식 후 용병 산업 급성장

2018년 6월 싱가포르에는 빨간 베레모와 남색 군복을 입은 군인 1800여 명이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이들은 싱가포르 경찰 부대가 고용한 네팔 구르카족 용병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의 경호를 용병들이 맡은 것이다. 최고 수준의 경호 인력이 필요한 현장에 구르카 용병이 투입된 건 이유가 있다. 200년 이상 용병 조직이 유지되면서 쌓은 명성과 노하우를 싱가포르 정부가 높게 샀다. 1816년 영국군은 네팔을 침공했지만, 단검 하나로 저항한 구르카족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후 영국은 구르카족 전사들을 높게 평가해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용병의 사전적 의미는 보수를 받고 복무하는 군인이다. 매춘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용병, 로마제국 말기의 게르만 용병, 중국 송나라 시절 용병 등이 유명하다. 현대에 접어든 이후 용병 산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다. 냉전 종식으로 미국과 소련이 군비 축소에 나서자 군인 출신 실업자들이 대거 양산됐다. 각종 재래식 무기가 남아돌았다. 자연스레 용병 업체로 사람과 무기가 밀려들었다. 군사 전문가인 이세환 샤를의 군사연구소 대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대장 국가가 사라지자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소규모 전쟁이 더 많이 벌어졌다”며 “민간 군사 기업들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냉전을 계기로 일감을 늘린 용병 산업은 2000년대 들어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국 군인의 희생을 줄이려 용병을 대거 고용했다. 2011년 공개된 미군 보고서에는 이라크전에 투입된 용병과 미군의 비율이 1.25대1로 용병이 더 많았다. 이후 그 비율은 3:1까지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에서 사세를 키운 대표적인 업체가 미국의 ‘블랙워터’다. 이 회사는 1997년 해군특전단(네이비실) 출신들이 설립했는데,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경호하는 사업으로 시작해 덩치를 키웠다. 블랙워터가 이라크에 보낸 소속 용병은 한때 2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원 전사’ 170개사 30만명으로 추정

러·우 전쟁은 용병이 주역으로 활동한 첫 전쟁이라는 기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 전쟁에 5만명을 투입한 러시아 용병 업체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 드미트리 우트킨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14년 세웠다. 이 회사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 작전을 수행했고, 시리아 내전에도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도우려 참전하는 등 러·우 전쟁 전부터 ‘분쟁을 이용한 장사’를 벌였다.

바그너그룹은 용병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를 맞으면 전직 스페츠나츠 대원이나 러시아 공수부대 예비역들을 고용한다. 최근 러·우 전쟁에서 병력이 부족해지자 러시아 죄수들을 용병으로 받아들였고, 이 가운데 5000여 명이 참전 계약 만료 후 사면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가 개입해 바그너그룹 병력을 늘려준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을 거듭하는 정규군 대신 바그너그룹에 더 의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 세계 민간 군사 기업의 규모나 숫자에 대한 전체적인 통계는 없다. 대테러국제용병협회(IMACT)가 전 세계에는 용병 업체(영세 업체 제외)가 약 170개 있고, 약 30만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다.

용병 업체들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나쁜 이미지가 박히면, 문을 닫았다가 몇 년 후 이름을 바꿔 다시 문을 여는 경향이 있다. 블랙워터의 경우 2007년 이라크에서 민간인 14명을 살해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들끓자 회사 이름을 ‘지(Xe) 서비스’로 바꿨고, 2011년에는 ‘아카데미’로 다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용병’까지 등장했다. 사이버 용병은 특정 인물이나 국가의 컴퓨터·휴대전화를 해킹해 민감한 정보를 의뢰한 국가나 업체에 제공하는 요원을 뜻한다. 2021년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페이스북 계정 약 1500개를 폐쇄하면서, “이스라엘과 중국 등에 있는 사이버 용병들이 이 계정들을 전 세계 100여 국 5만명 이상을 감시하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최고 6억원대 연봉 받기도

일부 용병 업체는 정식 군대를 방불케 하는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민간 군사 기업 ‘톱 에이스’의 경우 고성능 전투기인 F-16 29대를 비롯해 모두 98대의 전투기를 거느리고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쟁이 갈수록 전문화되다 보니 각 업체가 저마다 특화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첨단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병은 목숨을 걸고 일하는 ‘회사원’이기 때문에 많은 연봉을 받는다. 특히 미국과 영국 업체 소속 용병들이 다른 나라보다 평균 1.5배 정도 몸값이 비싸다. 특수부대 출신이 많고, 전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터키의 ‘TRT 월드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용병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 연봉의 중간값은 약 8만3000달러(약 1억1000만원)다. 많게는 연간 46만2000달러(약 6억2000만원)에 이르는 급여를 받는 용병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미 육군에서 복무하는 이등병 연봉(기본급 기준)이 약 2만5000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블랙워터의 경우 지난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보수가 공개됐는데, 하루 평균 1200달러,연간 30만~4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미군 육군 대장의 연봉이 18만달러여서 군인이 상대적으로 박봉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러시아 바그너그룹은 러·우 전쟁에 참전하는 용병에게 매달 24만루블(약 400만원)을 주겠다고 홍보했다. 이는 러시아 근로자 평균 임금(6만5000루블)의 약 4배 수준이다.

국내 민간 군사 기업 ‘블렛케이’의 경우 육상 경호와 관련된 요원은 연봉이 1억2000만~3억원, 해상 경호 요원은 다소 낮은 8000만~2억원을 받는다. 외국 군대나 경찰을 대상으로 각종 군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관의 경우 3억~5억원 수준이다. 최무길 블렛케이 경호작전실장은 “교관 요원이 가장 전문성이 높다 보니 연봉이 높다”며 “1년을 계약하면 착수금 명목으로 전체의 30%를 받고, 나머지는 6개월 간격으로 두 번 나눠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은 국적이나 영주권을 내걸고 ‘사실상의 용병’을 모집한다. 외국인을 모병해 정규군의 일원으로 배치한 뒤 월급을 주고 고난도 작전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19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 외인부대가 대표적인데, 한국인을 포함해 156개 국적에 9000명의 병력이 소속돼 있다. 입대 후 3년이 지나면 프랑스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을 준다. 외국인을 정규군으로 뽑는 국가는 프랑스 외에도 영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 20여 국에 이른다.

유엔마저 용병 투입한다

용병을 고용하려면 막대한 인건비와 군수물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을 벌이던 2015년 한 해 동안 용병을 이용하려고 2740억달러(약 366조원)를 썼다.

그럼에도 각국이 용병을 고용하는 이유는 갈수록 정규군 동원을 꺼리기 때문이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는 “전투 중에 군인이 희생되면 정부가 비난을 받는데 용병 업체를 이용하면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을 자주 투입하는 이면에는 서방의 추적을 피하고, 국내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

김진용 대테러국제용병협회 회장은 “군인이 전쟁 중 사망할 때 정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일부 중동·아프리카 국가는 용병 업체에 맡기는 게 비용이 저렴하다고 판단한다”며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정규군의 쿠데타 가능성을 우려해 용병 업체 위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유엔도 용병을 활용한다. 오랫동안 회원국들에서 정규군을 파병받아 분쟁 지역에 평화 유지군을 주둔시켜 온 유엔은 각국이 점점 파병을 꺼리자 민간 군사 기업을 통해 병력을 충당하고 있다. 유엔은 두 차례 민간 군사 계약 규모를 공개했는데, 2012년~2013년 자료를 보면 아프리카·중동 지역에 용병 약 5000명을 파견했고, 이를 위해 총 3093만달러(약 410억원)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가 넘치다 보니 용병 업체들은 두둑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영국 용병 업체 ‘컨트롤리스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 회사는 2021년 기준으로 직원 2800여명에 대한 인건비를 중심으로 1억3200만파운드(약 2210억원)의 비용을 지출하고도 1130만파운드(약 19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국내 용병 업체 ‘블렛케이’도 올해 연간 80억원가량을 받는 조건으로 리비아에 경비 요원 30여 명을 파견했고, 2028년까지 각종 계약이 체결돼 있는 상태다.

돈 벌려고 전쟁 질질 끌어

용병 산업이 확대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유엔은 각국에서 활동하는 용병이 저지르는 인권유린 실태가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내놓은 보고서에는 용병이 민가 주변에 표시나 경고 없이 지뢰를 매설해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원을 수탈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용병이 저지른 범죄를 누가, 어떻게 처벌할지를 놓고 다툼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용병 업체 블랙워터는 2007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국 외교 차량을 경호하며 이동하던 중 흰색 차량이 빠르게 다가오자 자살 폭탄 테러로 판단해 무력 대응을 했다. 이로 인해 이라크 민간인 14명이 숨졌다. 이 사건의 주범 4명은 이라크가 아닌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2021년 사면되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병이 사실상 무법 지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지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용병 업체가 돈을 벌려고 전쟁을 질질 끈다는 비판도 있다. 민간 군사 기업에서 활약한 전직 미국 공수부대원 숀 맥파티는 BBC 인터뷰에서 “용병은 역사적으로 이익을 위해 갈등을 연장했다. 용병이 혼돈과 대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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