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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물류 스타트업 판디온은 최근 메타(페이스북)에서 해고된 직원 3명을 고용했다. 작년에도 판디온이 채용한 65명 가운데 15%가 메타·테슬라·아마존·구글 같은 빅테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실리콘밸리에 감원 바람이 불자 인력 충원 기회로 여기고 거대 IT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을 적극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해부터 실리콘밸리발 감원 태풍이 불며 고용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감원 현황을 집계하는 사이트 ‘레이오프’에 따르면, 지난해 1219개 테크 기업에서 16만4591명을 감원했다. 재작년 1만5823명에서 10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올해는 감원 태풍이 더 강력해져 1분기에만 18만6328명이 쫓겨나 작년 해고자 수를 넘어섰다. 최근 다섯 분기 사이 세계 테크 기업에서 약 35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팬데믹발 저금리가 몰고온 짧은 호황이 끝나고 고금리에 허덕이자 기업들이 앞다퉈 ‘조직 다이어트’에 들어간 여파다. 정리해고 파도에 휩쓸린 그 많은 기술 인력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제조업계, IT 해고자들 영입 경쟁

우선 제조업체들이 새 일자리를 찾는 테크 인력들의 주요 행선지가 되고 있다. 디지털화·자동화 바람이 불면서 제조업에서도 많은 IT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디어가 개발한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 /존 디어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사인 미국 존디어는 최근 구글·우버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98명을 채용했고, 앞으로도 2년 이내에 300명의 IT 인력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자율 주행 트랙터를 개발하는 데 IT 두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카고에서 270㎞쯤 떨어진 소도시 몰린에 본사를 둔 존디어는 작년 10월 시카고 도심에 구글처럼 ‘기술 허브’ 형태의 사무실을 열었다. 테크 기업에서 밀려난 IT 전문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근무지 당근’을 내민 것이다.

다국적 농기계 제조업체 CNH인더스트리얼도 작년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해고자를 비롯해 350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새로 채용했다. 역시 첨단 농업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IT 인력을 늘린 것이다. 스콧 와인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통신에 “그동안 높은 연봉과 복지를 보장하는 실리콘밸리 기업과 채용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테크 업계가 내보낸 IT 인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차량용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를 이끄는 더크 힐겐베르크 CEO는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를 찾았다. 직원 6600명을 둔 카리아드는 올해 1700명을 추가 채용할 예정인데, 구직자들을 탐색하는 장소로 CES를 택한 것이다.

스텔란티스는 지난 1월 커넥티드카(인터넷에 상시 연결된 차)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을 할 새로운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만들었고, 제너럴모터스(GM)도 차량용 소프트웨어 ‘얼티파이’를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자동차 제조사들은 모두 IT 분야 경력자들을 충원할 예정이다.

/그래픽=김의균

금융권·스타트업도 해고자들 환영

테크 업계 감원 태풍에 밀려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다른 큰손은 금융회사들이다. 미국 컴퓨팅기술산업협회(CompTIA)에 따르면 지난 4월 금융·보험 업계 기술직 채용 공고가 3만2820건에 달했다. 비대면 금융이 확산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클라우드·데이터 같은 분야에서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웰스파고은행은 작년 기술직 1000명을 채용한데 이어 올해 머신러닝과 시스템 설계 전문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을 1500명 추가할 계획이다. 웰스파고의 테크 인력은 이미 4만명이 넘지만 계속 인재를 모으고 있다. 보험사 올스테이트도 AI를 활용한 보험 견적 시스템 개발 등을 추진하기 위해 IT 부문 채용을 늘릴 예정이다.

빅테크 해고자들이 스타트업으로 옮겨가는 흐름도 나타난다. 인사 분석 업체 리벨리오랩스에 따르면 지난 1월 소기업의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92% 늘어난 반면 대기업은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인 ‘안주나 시큐리티’는 올해 빅테크 회사에서 해고된 지원자로 두 개의 공석을 채웠다. 아얄 요게브 CEO는 “빅테크 정리해고 여파로 일자리 시장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고 채용이 좀 더 쉬워졌다”고 했다.

메타(페이스북)는 작년 11월 1만1000명을 해고한데 이어 올 3월 1만명 추가 감원 계획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는 큰 회사에서 일해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여겼지만, 빅테크들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자 이런 고정관념이 희석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개월 동안 해고된 후 새 일자리를 찾은 테크 근로자의 40% 정도는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술 업체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정부·NGO로 갈아타기도

민간을 떠나 공공·비영리 분야로 들어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던 오스틴 스미스씨는 작년 6월 갑자기 퇴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학습 지원 플랫폼을 개발하는 비영리단체(NGO) ‘뉴 클래스룸’의 기술 프로젝트 매니저로 변신했다.

미국 정부 조직 중에서는 제대군인부(국가보훈부)가 구인 시장의 키플레이어다. 커트 델베네 제대군인부 최고정보책임자(CIO)는 CNBC에 “메타·구글·트위터 같은 테크 기업에서 해고된 인력을 중심으로 올해 IT 전문가 1000명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델베네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30년간 근무하다 작년 초 제대군인부로 옮겨왔다. 제대군인부는 IT 전문가를 위한 특별 급여 체계도 만들고 있다. 공무원 급여가 민간 기업이 비해 낮다는 점을 고려해 별도의 연봉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MBA로 몸값 역전 노린다

실직을 계기로 아예 경영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려는 이들도 있다. 몸값 상승도 노리고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얻어 후일 정리해고에도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일부 실직자들이 하루 8시간씩 공부해가며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처럼 명망 있는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대학원들도 빅테크에서 밀려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샌타클래라대 리비경영대학원은 기술 기업에서 해고된 지원자에게 최소 3000달러의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테크 전문가의 경우엔 대학원 자격 시험(GMAT)도 면제하겠다고 했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도 올해 입학요강을 내면서 “당분간 테크 산업 해고자는 시험 점수 없이도 이력서·신청서만 내면 MBA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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