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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Billy) 책장’은 이케아의 대표 상품이다. 세계 각지에서 5초에 하나씩 팔린다. 1979년 첫 출시 이후 1억4000만개 넘게 팔렸다. 이케아는 40년 넘게 빌리 책장을 통나무를 얇게 자른 나무판(베니어 합판)으로 제작했는데, 지난해부터 종이 포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구는 튼튼함이 생명인데도 왜 책장을 종이 포일로 만들게 됐을까.
이런 가구의 소재 변경은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을 이겨내기 위한 이케아만의 독특한 위기 관리 전략이다. 품질은 유지하면서도 소매 가격을 크게 올리지 않거나 오히려 낮추기 위한 혁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원가 절감에만 치중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인플레이션 파도를 넘는 이케아만의 방식을 WEEKLY BIZ가 들여다 봤다.
목재값 급등하자 저렴한 소재로 바꿔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져 공급망이 마비됐다.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가구 제작용 목재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름을 부었다. 목재 생산량 세계 5위국인 러시아에서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는 목재가 줄었다. 러시아산 제재목의 경우 가격은 2020년 12월 39만원(1㎥ 기준)에서 작년 3월에는 90만원까지 치솟았다. 가구 업계는 값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케아도 일부 품목의 가격을 인상했다.
이케아는 그러나 목재 가격 상승에 비례해 일률적으로 모든 상품의 가격을 올리기는 부담스러웠다. 이케아가 내세우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낮은 가격’인데, 소매 가격을 대폭 올리면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품질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가격을 올리지 않거나 더 낮추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했다. 결국 가구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보다 값싼 것으로 바꿔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고물가 시대에 가격 낮춰 눈길
보다 저렴한 부품을 적용한 대표적인 예가 빌리 책장이다. 빌리 책장의 주된 소재가 된 종이 포일은 기존에 쓰던 베니어 합판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다. 종이 포일이 얇긴 해도 수백•수천장 이상 겹쳐 놓으면 기존에 사용했던 베니어 원목과 맞먹을 만큼 단단하다는 게 이케아의 설명이다.
이뿐 아니라 이케아는 빌리 책장의 몸통과 뒷면 패널을 잇는 쇠못도 플라스틱 결합장치로 바꿨다. 쇠못의 원재료가 되는 철광석 가격은 2020년 초 톤당 80달러대에서 2021년에는 200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값이 올랐다.
저렴한 소재를 사용해 비용을 낮추게 되자, 이케아는 가격을 내렸다. 국내에서 팔리는 빌리 책장(80x28x202㎝ 기준) 값은 11만9000원에서 지난해 10만9000원으로 떨어졌고, 중국에서도 699위안(12만8000원)이던 가격이 499위안(9만2000원)으로 내렸다.
이케아는 ‘세보빅 침대’를 만들 때 기존에는 얇은 나무를 여러 겹으로 붙여 만든 샌드위치 보드를 주된 소재로 썼다. 그러다 ‘배향성 스트랜드보드(OSB)’라는 소재로 바꿨다. 한국임업진흥원 관계자는 “OSB는 나무 파편들을 접착해서 만들다 보니 샌드위치 보드보다 값이 싸다”고 말했다.
또한 욕실 등에 쓰이는 고리(후크) 제품의 재료는 아연에서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교체했다. 아연은 2020년 초만 해도 톤당 가격이 1800달러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최대 44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이 밖에도 이케아는 캐비닛의 문이나 서랍도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해 비용을 줄였다.
디자인 바꿔 물류비도 절약
이케아는 비용 절감을 목표로 일부 제품의 디자인도 바꿨다. ‘플린탄’이란 이름의 사무용 회전의자는 기존 제품보다 팔걸이 크기를 줄였다. 또 의자 뒷면에 있던 강철과 플라스틱 양도 일부 축소했다. 부품 수와 제품의 크기가 줄어들다 보니 제품을 담은 박스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이런 변화로 배송용 컨테이너 한 개에 들어가는 플린탄 의자의 제품 숫자가 2750개에서 6900개로 크게 늘면서, 물류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이케아 관계자는 “원자재 값이 뛰어도 미국에서 플린탄 가격을 119달러로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정원 의자는 원래 등받이 부분 재료로 곡선형 목재가 쓰였는데, 이를 직선형으로 교체했다. 이 역시 운송용 상자 하나에 더 많은 구성품을 촘촘하게 담아 배송비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품질 저하 논란 시달려
빌리 책장의 소재를 바꾼 다음 이케아는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대해 품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원가 절감에 치중한 뒤 겉으로는 혁신이라고 포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미국 건축 잡지 ‘커브드’의 수석 디자인 작가 다이애나 버드는 “(욕실 후크를) 아연보다 부드러운 금속인 알루미늄으로 바꾸면 제품의 내구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합판보드협회 관계자는 “(빌리 책장에 사용한) 종이 포일은 강도가 나무합판보다 약하며 물이 닿거나 스며들면 변형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며 “나무 파편들을 붙여 만드는 배향성 스트랜드보드도 (예전에 사용하던) 샌드위치 보드보다 강도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케아코리아 관계자는 “종이 포일을 사용한 책장은 기존과 같은 내구성을 유지하고, 흠집도 쉽게 나지 않는다”며 “이케아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엄격하게 위험성을 평가하고 각종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해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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