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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뜻하는 ‘휴머노이드’의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야심작인 테슬라의 ‘테슬라봇’은 키가 172㎝이며, 대당 2만달러의 가격이 책정돼 있다. 머스크는 이르면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테슬라

2015년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로봇공학 챌린지(DRC)’를 개최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로봇 강국의 로봇들이 모두 참여한 이 대회에서 KAIST의 휴보(HUBO)가 우승하면서 상금 200만달러를 거머쥐었습니다.

DRC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탄생했습니다. 방사능으로 가득 찬 사고 원전에 누군가 들어가서 수습할 수만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치를 갖추더라도 사람이 피폭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DARPA가 로봇을 주목한 이유입니다.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대학과 연구소가 전부 모였지만 관중석에서는 끊임없이 실소(失笑)가 터져 나왔습니다. 비틀거리다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거꾸로 걷거나 전원을 켰는데 일어서지도 못하는 로봇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8년이 지난 현재 휴머노이드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일부 로봇 스타트업 창업자는 “휴머노이드 시대가 도래했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타트업 앱트로닉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아스트로(위쪽)’와 독일계 로봇 기업 쿠카가 만든 산업용 스테인리스 로봇인 ‘퀀텍 나노 파운드리 로봇’. /앱트로닉·쿠카

인간의 신체 구조에 최적화

전 세계 공장에서는 ABB, 쿠카 로보틱스의 한 팔 로봇이 조립과 용접을 맡고 있고 식당에서는 서빙 로봇이 돌아다닙니다. 물류 창고에는 운반과 정리를 하는 로봇도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수많은 기업과 과학자는 휴머노이드에 집착하는 걸까요.

바로 세상이 사람의 눈높이와 신체 구조에 최적화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물건을 집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일, 도로의 구조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차량을 운전하거나 유독가스 밸브를 잠그는 동작, 소화전을 열어 소방 호스로 화재를 진압하는 것 역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손가락으로 캔 뚜껑을 따거나 머그컵 손잡이를 잡고 물을 마시는 동작을 떠올려 봅시다. 사람의 손가락과 팔이 아니라면 같은 동작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사람을 모방할 수 있다면 로봇이 우리와 모든 일을 같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로봇을 위해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말이죠.

DARPA가 주최한 DRC는 휴머노이드 발전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당시 우승한 KAIST의 휴보 팀은 스타트업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창업해 내년 중 상용 로봇 제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2위를 차지한 플로리다 인간·기계 인지연구소팀을 이끈 제리 프랫은 피겨AI를 공동 창업해 지난달 7000만달러를 투자 유치했습니다. 창고 작업용 휴머노이드가 이 회사의 대표 제품입니다. 프랫은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2015년 DRC 코스를 로봇이 완주하는 데 50분이 걸렸다면 지금은 15분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이 훨씬 쉽게 주변을 탐색하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피겨AI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네오’의 모습. /피겨AI

아바타 역할 가능한 로봇도

1X, 앱트로닉 같은 스타트업도 휴머노이드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투자한 1X의 네오(NEO)는 안정적으로 걸어 다니면서 문을 열거나 엘리베이터에 탑니다.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거나 진열하고 얼굴의 LED 화면을 이용해 표정으로 다양한 의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특히 기존 휴머노이드와 달리 부드러운 천으로 외부를 감싸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원격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클라우드(가상 서버)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특히 가상현실(VR) 안경을 착용하고 네오의 시선으로 보면서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아바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는 물류와 제조, 건설 현장이 주 무대입니다. 사람 움직임을 모방해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내리거나 생산 라인에 각종 부품을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앱트로닉은 “노동력 부족과 높은 이직률, 근로자들의 위험 수당 같은 부분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대체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래픽=김의균
독일 뮌헨공대 로봇연구소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가미(GARMI)’. 고령층 돌봄에 특화된 로봇이다. /AFP 연합뉴스

이르면 내년 테슬라봇 출시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로봇은 두 다리로 걷지만, 실제 움직임은 타조와 비슷합니다. 사람 팔다리를 완벽하게 따라 하는 대신 물리학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어질리티는 지난 3월 2023 시카고 국제물류박람회(Promat 2023)에서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와 트럭을 전시하고 휴머노이드가 트럭에서 물건을 내려 움직이는 벨트로 옮기는 과정을 시연했습니다. 어질리티의 최고기술책임자 멀로니 와이즈는 “바퀴를 사용하는 로봇이 이미 상용화됐지만, 공장 전체를 이에 맞춰 자동화하는 것보다 두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휴머노이드는 계단, 경사로, 불안정한 지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테슬라입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DRC 현장을 방문해 대회를 관람한 뒤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머스크는 2021년 “휴머노이드 테슬라봇으로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놓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5월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습니다. 키 172cm에 무게 73kg인 테슬라봇은 시속 8km로 이동하며 20kg 상당의 짐을 옳길 수 있습니다.

머스크는 이르면 내년 이 로봇을 대당 2만달러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웬만한 사람 근로자 임금 절반 이하에 아프지도 않고 24시간 일하면서 불만도 없는 로봇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머스크의 능력이 휴머노이드 시장에서도 재현될까요. 공장 밖으로 나올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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