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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영석

대사직’(The Great Resignation)’은 팬데믹 시기에 사표를 던지는 직장인이 넘쳐나던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이 표현을 세상에 처음 꺼낸 이는 영국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영대학원의 앤서니 클로츠 교수다. 그런데 클로츠 교수가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 산업에서 ‘대사직’이 끝났거나 끝나간다는 점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사직’이란 용어를 만든 이가 ‘대사직의 종말’을 이야기한 것이다.

클로츠 교수의 말처럼 요즘 미국을 중심으로 퇴사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이제는 ‘대사직’이라는 말이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왜 3년간 유지된 ‘대사직’의 시대가 저물고 있을까.

‘대사직’ 시대 가고 ‘대잔류’ 시대 온다

미국의 최근 고용 통계를 보면 팬데믹 이전의 고용시장으로 원상복구되는 흐름이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이전인 2019년 미국의 퇴사자 수는 월 350만명 내외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막대한 돈이 시중에 풀리는 것을 계기로 고용시장이 활황을 맞으면서 더 나은 근무 조건이나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직장을 옮기는 이들이 속출하는 ‘대사직’ 현상이 나타났다. 자산이 충분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조기에 은퇴해버리기도 했다. 고용시장은 공급이 부족해져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었다.

2021년 6월 퇴사자는 402만명을 기록해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400만명을 넘어섰다. 그해 11월엔 450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22년 내내 400만명대를 유지하던 퇴사자는 올해 1월 388만명으로 400만명 밑으로 내려왔다. 4월이 되자 379만명까지 줄었다. 퇴사자가 2019년 수준에 가깝게 감소한 것이다. 2021년 9월 3%까지 치솟았던 퇴사율도 2.4%까지 내려와 201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는 CNN에 “인력 공급이 부족해진 노동시장과 팬데믹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가 결합해 지난 3년간 일자리 재편을 촉진했지만, 이제는 그런 ‘대사직’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지 포천도 “‘대사직’ 시대가 가고 (쉽게 사표를 던지지 않는) ‘대잔류(Big Stay)’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빅테크 대량 해고 보고 사표 접는다

대사직 시대가 종점에 다다른 이유로는 우선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져 근로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작년 하반기 이후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다. 작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 사이 전 세계 테크 기업에서 해고된 임직원은 35만명에 이른다. 베드배스앤비욘드(BB&B), 타파웨어 같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이 파산한 것도 사직을 주저하고 현재 직장에 붙어 있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의 직장 문화 전문가 제시카 크리겔은 “큰 기업에서 일하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이들이 늘어나자 불안감이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 유동 자금이 줄어드는 것과 맞물려 임금 상승률이 낮아지는 현상도 영향을 미쳤다. 더 높은 월급을 제시하며 사람을 뽑는 경향이 잦아들고 있다는 얘기다. 인력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ADP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해 4월에 이직한 사람들의 전년 대비 평균 임금 상승률은 13.2%였다. 작년 6월 이직자의 연봉 인상률(16.4%)은 물론 올해 3월 이직자의 연봉 인상률(14.2%)보다 낮다. 넬라 리처드슨 AD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연방준비제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직자의 임금 상승률은 더 빠른 속도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직 후 후회하는 사례 속출

‘대사직’ 열풍을 타고 이직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학습 효과도 있다. 미국의 아웃소싱 전문 기업 페이첵스가 팬데믹 기간에 퇴사한 8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이직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특히 Z세대의 경우 후회하는 비율이 89%로 높았다. 새 직장을 찾는 데 7개월 이상 걸린 경우가 39%에 달했고, 새 일터의 연봉에 만족하는 경우는 11%에 그쳤다.

‘대사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클로츠 교수는 “퇴사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절대적으로 낮지 않은 이유는 유연 근무를 갈망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블룸버그가 금융 전문가 1320명과 투자자 265명 등 1585명을 대상으로 “고용주가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한다면 직장을 옮길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금융 전문가의 48.5%, 투자자의 51.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픽=김의균


‘조용한 사직’은 여전히 진행 중

‘대사직’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면 기업들은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올해 1분기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년 전 대비 0.8% 감소해 작년 1분기 이후 계속 하락했다. 5개 분기 연속 감소는 미국 정부가 노동생산성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48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노동 생산성은 일정 기간 투입된 노동량과 그 성과인 생산량 간 비율을 말한다. 구인·구직 플랫폼 집리크루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시넴 부버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높은 임금과 유연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직원들을 대체할 신입 사원을 교육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고 했다. 노동 생산성이 낮아진 이유가 업무에 익숙한 직원들이 한꺼번에 떠났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대잔류’ 시대가 오면 자연스레 노동생산성이 예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험 없는 근로자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반면 ‘대사직’ 시대가 저물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한다는 의미의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노동생산성 향상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WP에 “미국에서 상당수 노동자가 조용한 사직 상태로 일하고 있고, 결근을 자주 하고 있어 생산성이 낮은 상태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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