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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 있는 캡슐 완구 전문점 ‘시프라.’ 내부에는 가차폰이라고 부르는 가차(がちゃ) 기계가 무려 1000대 넘게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가차를 뽑던 여고생 이와이 코시아이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한번 모으면 시리즈 전부를 다 모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며 “(가차폰에서 뽑은 상품을) 집에 진열해 놓고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차폰은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려서 상품을 얻는 뽑기 기계를 일본에서 부르는 말이다. 레버를 돌릴 때 나는 달그락 소리를 묘사한 ‘가차’와 상품이 나올 때 들리는 ‘퐁’ 소리를 더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뽑을 수 있는 상품은 갖가지 캐릭터로 만든 장난감이 주종을 이룬다.

요즘 일본에서는 이런 가차폰이 다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시프라는 올해 들어 5월까지 일본 전역에 매장을 15곳 새로 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시프라 하라주쿠 다케시타점엔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손님까지 찾아와 북적인다. 이 가게 점장 이시게 나오키씨는 “휴일에는 통로가 꽉 막힐 정도로 손님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가차폰 체인 반다이남코도 2020년 처음으로 매장을 낸 뒤 120곳까지 매장을 늘렸다. 일본 가차가차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가차폰 시장 규모는 2016년 277억엔(약 2513억원)에서 2021년 450억엔(약 4107억원)으로 60%가 늘었다. 2021년 기준 일본 전역의 가차폰은 70만대에 이른다.

가차폰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쿄의 한 매장.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차폰은 원래 미국에서 시작됐다. 1880년대 미국 기차역에서 사탕이나 껌을 넣어 판 게 시초다. 일본에는 1965년 처음 들어왔는데, 요즘이 역대 네 번째 가차 전성기로 꼽힌다. 1980년대 킹키맨, 건담 등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면서 첫 번째 전성기를 맞았고, 디즈니 관련 상품이 출시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확산한 1990년대에 2차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 소강 상태를 보이던 일본 가차 시장은 2010년대 들어 컵 가장자리에 놓는 여성 인형 ‘컵후지코’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인기를 끌면서 3차 전성기를 맞았다.

그래픽=김의균

이번 네 번째 가차폰 열풍은 2020년 시작됐다. 이해 출시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관련 상품이 등장한 데다, 코로나 때 대면형 매장 대신 가차폰 점포가 대거 들어선 것이 가차 열풍을 불러왔다는 게 도쿄신문의 분석이다. 장난감 전문지 ‘토이 저널’의 후지이 다이유 편집장은 “가차폰 매장은 저렴하고 부담 없이 놀러 갈 수 있는 장소”라며 “재판매하지 않는 것이 많아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차폰 상품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다. 전쟁을 겪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도네이션 가차’나, 환경 문제를 의식해 플라스틱 대신 종이 캡슐을 사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노오 가쓰히코 가차가차협회 회장은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복권 같은 요소라는 구조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면서 “앞으로는 캡슐에 전자 매체를 넣고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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