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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랑스 파리 동남쪽 근교에서는 케이블카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일드프랑스(파리 및 근교를 합친 수도권을 뜻하는 행정구역)’ 최초의 케이블카를 만드는 공사로서 작년 9월 착공했다. ‘C1′이라는 명칭의 이 케이블카는 파리의 교외 도시 크레테이에서 빌뇌브-생-조르주 사이 4.5㎞ 노선을 다니게 된다.
일드프랑스의 교통행정기구인 IDFM이 C1을 설치하는 목적은 관광용이 아니다. 주민들이 파리 시내로 편리하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C1을 이용하면 지하철·버스로 편리하게 환승할 수 있다. 정거장이 모두 5곳에 설치된다.
통근자를 케이블카로 실어 나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건 이 지역의 교통 여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출퇴근에 이용할 교통 수단을 늘려 달라는 민원이 많았지만, 지상 트램을 추가로 설치하기는 어려웠다. 언덕이 많은 데다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고속철도 TGV 선로까지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연장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케이블카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높은 기둥만 설치하면 고속도로와 TGV 선로 위로 새로운 교통수단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C1은 시간당 1600명을 수송할 수 있고, 설치 비용도 1억3200만유로(약 1900억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했다. 2025년 개통되면 새로운 출퇴근 교통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키장이나 산악 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 들어오고 있다. 케이블카는 비교적 저렴한 설치·운영 비용으로 많은 인원을 실어 나를 수 있다. 특히, 언덕으로 된 지형에서 교통 수단으로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친환경 교통 수단이라는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교통 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편리하다는 점이 부각돼 도심에 대중교통 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움직임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앞세워 도심 속 관광객을 늘리는 효자 역할도 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도심 케이블카를 가리켜 “기존 대중교통을 보완하는 혁신적이고 경제적인 해결책”이라며 “공중에서의 혁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케이블카가 직장인을 실어 나른다
도심형 케이블카는 유럽에서 먼저 각광받고 있다. 프랑스에는 이미 도심 대중교통용 케이블카가 여럿 운행 중이다. 2016년 서부 도시 브레스트에서 프랑스 최초의 도심형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펭펠강에 다리를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도 시민들이 편하게 건너다닐 수 있게 됐다. 60인용 대형 캐빈 2개가 시간당 최대 1200명을 실어 나른다.
작년엔 프랑스 남부 거점도시 툴루즈에서 ‘텔레오(Téléo)’라는 도심형 케이블카가 개통했다. 텔레오는 대학, 병원, 연구단지 등을 연결한다. 유모차나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주중에 하루 6000명이 이용해 주말 이용객(하루 4500명)보다 많다. 공영방송 프랑스앵포는 “자전거로 (멀리 돌아) 이동하는 것과 비교해 텔레오를 타면 30분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선 뉴욕 맨해튼의 ‘루스벨트 아일랜드 트램웨이’가 유명하다. 1976년 개통한 북미 최초의 통근용 케이블카로서 두 대의 캐빈으로 구성돼 있다. 대중교통 카드인 메트로 카드와 연계돼 있어 지하철 환승도 가능하다.
이스라엘 북부 도시 하이파에서도 작년 도시형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다. 4.4㎞ 길이 노선으로 150대의 캐빈이 역에서 15초마다 출발한다. 하이파베이 중앙 버스정류장과 기차역, 두 개의 대학을 연결한다.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영국 런던에선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가 개통했다. 주로 관광객을 겨냥했지만 통근용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출퇴근족을 위해 10회 할인권(1회당 1.7파운드)을 판다. 작년에 150만명 넘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BBC는 “한동안 줄어들던 케이블카 이용객이 최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려는 이들 때문에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일본·독일·미국, 도심 케이블카 추진
도심 케이블카가 통근용으로 효율성이 높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요즘 주요 선진국에서는 시내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의 이시카리시가 대표적이다. 이시카리엔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많은데, 두 지역을 잇는 대중교통은 버스뿐이다. 철도나 모노레일 도입을 검토했지만 막대한 건설비 때문에 포기했다. 홋카이도방송(HBC)는 “케이블카 건설비는 철도·모노레일의 7분의 1 수준이고 정체도 없기 때문에 지역 교통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은 시내 IJ강 상공을 오가는 ‘IJ반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다. 시민 주도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이달 시의회에서 승인받았고 민간 사업자를 찾기 시작했다. 당초 교량 건설을 계획했지만 공사가 지연되자 케이블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IJ반 케이블카’는 1.5㎞ 선로를 건너는 데 5분이 채 안 걸리고, 캐빈당 35명을 태운다.
미국에서도 플로리다주에선 시내와 해변을 오가는 케이블카, 캘리포니아주에선 LA의 다저스타디움과 유니언역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아이디어가 나왔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윈저 지역을 잇는 국경 케이블카 설치도 거론되고 있다.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케이블카 도입에 적극적이다. 지난 2020년부터 지방교통금융법 대상에 케이블카를 포함해 개발 비용의 최대 75%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선 초기 아이디어 단계를 포함해 100개 이상의 케이블카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본에서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케이블카가 대표적이다. 라인강 양쪽의 주거지를 연결한 후 본대학 병원까지 이어지는 4.3㎞, 5개 역 노선이다. 도로 진입로가 좁은 데다 주차 공간도 부족해 주민 불편이 커지자 케이블카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건설비 적고 친환경이라 매력적
여러 나라에서 도심 대중교통 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적극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땅 위 장애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도심 케이블카는 언덕과 강, 철로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기존 대중교통 노선을 확장해 새로운 주거·산업 지역을 연결할 수 있다”고 했다.
교통 체증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하철처럼 정시에 오가는 것도 장점이다. 총 선로 길이가 5㎞ 이하일 때는 시간당 수송 능력도 트램(노면전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은 편이다. 독일 교통부 분석에 따르면 5㎞ 순환식 케이블카 기준 시간당 최대 7000명가량을 수송해 트램(5000명), 버스(2000명)보다 효율적이었다.
건설·운용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 독일 지사가 작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블카 투자 비용은 ㎞당 1000만~2000만유로(약 140억~290억원) 정도다. 지하철 건설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 공사 기간이 12~18개월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이고, 공사 기간 중 지상 교통 흐름에 영향을 적게 미친다는 것도 장점이다.
독일 PwC의 모빌리티 분야 전문가 막시밀리안 로스는 “케이블카는 자동화 수준이 높아 인건비와 에너지 비용도 다른 교통 시스템보다 저렴하다”고 했다. 케이블카는 승객 1명이 100㎞를 이동할 때 기준 5.8킬로와트시(kWh)를 소비하는 반면, 지하철은 11.6kWh , 트램은 12.5kWh를 쓴다.
비교적 적은 에너지로 시간당 수천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는 데다 건설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도 적다 보니 친환경적인 교통 수단으로도 여겨진다. 케이블카 전문 잡지 ‘SI 매거진’에 따르면 케이블카로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전기 생산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도 고려)는 44g으로, 자동차(144g), 버스(75g), 지하철(72g) 등과 비교해 낮았다.
안전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다. PwC 분석에 따르면, 트램은 22만5000㎞, 버스는 61만6000㎞를 운행할 때마다 사고가 발생하지만 케이블카는 통계적으로 1700만㎞를 운행한 후에야 사고가 일어난다. 걷지 않고도 높은 지대를 편리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만큼 장애인 친화적인 운송 수단이기도 하다. 대부분 케이블카가 휠체어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다.
물론 케이블카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장거리용으론 적합하지 않다. 지하철보다 수송 능력도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케이블카를 독립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라기보다는 파리 인근의 C1처럼 기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으로 주민들을 데려다 주는 보완·연계 수단으로 여기고 도입을 추진하는 곳이 많다.
도심 케이블카는 주민 거주지를 오가는 만큼 집안 내부가 노출될 수 있다는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다.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일부 주민들의 저항 때문에 케이블카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일부 케이블카는 사생활 침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캐빈이 주택가 가까이 지날 때 객실 창문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을 적용한다.
빈곤에서 해방시킨 남미의 케이블카
남미에선 도심 케이블카가 빈곤을 개선하는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콜롬비아 제2도시 메데인에서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메데인은 수십년 동안 폭력 범죄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빈곤층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동네에 거주하고 있는데,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 어려웠다. 버스 차선용 도로를 넓히기엔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메데인시 당국은 고심 끝에 2004년 ‘메트로케이블’이라는 케이블카 시스템을 만들어 빈곤층 동네를 도심의 부유한 지역과 연결했다.
이 케이블카는 산동네와 시내 사이를 오가는 시간을 2시간에서 30분으로 대폭 단축했다. 주민들의 삶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케이블카 덕분에 축구 경기장 근처에서 음식을 파는 여성은 한 번에 더 많은 음식을 운반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20대 청년은 시내 대학 진학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메데인에서 살인 범죄 발생률은 2002년 인구 10만명당 183명에서 2018년 25명으로 7분의1 이하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도시 전체 빈곤율도 37%에서 14%까지 떨어졌다.
메데인의 성공 이후 케이블카는 중남미 곳곳으로 확산했다.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에서 도시형 케이블카가 등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중교통용 케이블카도 남미에 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2014년 첫 노선을 개통한 ‘미 텔레페리코’다. 현재는 10개 노선, 36개 역을 갖추고 있다. 총 노선 길이가 31㎞에 달하며 하루 평균 16만명의 승객을 수송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총 길이가 35㎞ 정도인 점과 비교하면 사실상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공중 지하철 노선’인 셈이다.
도시를 먹여 살리는 관광 케이블카
도심 케이블카가 지역 주민들만 실어나르는 것은 아니다. 편리한 이동성과 뛰어난 전망 덕분에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좋다. 남미의 여러 케이블카,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케이블카, 알제리 수도 알제의 케이블카, 미국 뉴욕의 루스벨트 아일랜드 트램웨이 등은 현지인들의 교통수단인 동시에 방문객의 관광 코스로도 쓰이고 있다.
처음부터 관광용에 중점을 두고 설계된 케이블카도 여럿 있다. 이 경우 대중교통으로 주로 쓰이는 케이블카보다는 요금이 높은 편이다. 2017년 개통한 튀르키예 알라냐의 케이블카는 해안가 공원에서 출발해 인기 관광 명소인 알라냐성 근처까지 이어진다. 10분 동안 해안과 도시, 산을 어우르는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2018년 85만1800명이던 승객이 이듬해 103만5800명까지 증가했다.
독일 소도시 코블렌츠의 케이블카는 도시를 먹여 살리는 효자다. 시내와 라인강 건너 언덕 정상의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요새를 연결한다. 2010년 개통한 이후 약 1000만명의 승객을 태웠다. 케이블카 설치 이전 연간 25만명 수준이던 코블렌츠 투숙객은 작년 39만명까지 증가했다.
아시아에서도 관광용으로 쓰이는 도심 케이블카가 여럿 있다. 일본에선 재작년 4월 요코하마에서 최초의 도시형 케이블카 ‘요코하마 에어 캐빈’이 운행을 시작했다. 싱가포르 본섬과 센토사섬을 오가는 케이블카는 중심업무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주요 관광명소다.
중국에선 부동산 개발업체 홍콩랜드 등이 상하이 황푸강 양쪽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차오리창 쉬후이구 당서기는 “3년 안에 완공돼 상하이 현지인과 전 세계 관광객 모두에게 새로운 수준의 흥분을 안겨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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