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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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3일 출근을 지키고 있는지 추적하겠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인사 고과에 반영할 것입니다.”

피오나 치코니 구글 최고인사책임자(CPO)는 최근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작년 4월부터 구글은 주 3일 출근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직원이 이를 지키지 않자 사 측이 회초리를 꺼낸 것이다.

구글 직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 직원은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학교 칠판 앞에 서 있는 치코니 CPO의 사진과 함께 “오늘 사무실에 출근할 수 없다면 부모님이 결석 신청서를 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회사가 직원들을 학생 취급한다며 비꼰 것이다. 또 다른 직원은 “내 출근 여부를 확인할 게 아니라 내가 한 일을 확인해라”고 적기도 했다.

사무실에 나와 일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기업들과 이에 저항해 재택근무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직원들 간의 대결 구도가 부쩍 첨예화되고 있다. 구글을 비롯해 아마존·디즈니·스타벅스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점점 재택근무를 줄이고 있지만, 팬데믹 시절 원격 근무의 편리함을 맛본 직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과연 재택근무는 엔데믹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픽=김의균

MIT “재택근무 생산성 18% 낮다”

올 들어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줄이는 추세로 돌아선 건 숫자로 확인된다. 미국의 구인·구직 플랫폼 집리쿠르터에 따르면, 기업 구인 공고에서 완전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들어간 비율은 2019년 4.2%였다가 지난해 13.7%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엔 10.8%로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직원들을 회사에 출근시켜 일을 시키려고 애쓰는 건 사무실 근무가 효율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 짐 링크 CPO는 BBC에 “리더들은 조직이 한 차원 높은 성과를 내려면 직원들이 주중 근무 시간에 함께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택근무의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최신 연구 결과들이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500대 기업의 콜센터 직원 1965명의 성과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시작될 때 원격 근무로 전환한 직원들의 생산성이 4%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연은 연구진은 “원격 근무하는 콜센터 직원들의 통화량이 줄어들고 질도 하락했을 뿐 아니라 동료와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인도에서 데이터를 입력하는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재택 근무자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자보다 1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택 근무자의 효율성 저하 원인에 대해 미국의 근무 여건 연구단체 워크프롬홈(WFH)의 호세 마리아 바레로 연구원은 “원격 소통의 어려움, 동기 부여 부족이 원격 근무자의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는 주요 문제”라면서 “출근하는 직원보다 원격 근무자에 대한 감독, 교육, 회사 문화 구축 등이 훨씬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의균

일각에서는 효율의 문제를 넘어 재택 근무가 직업인으로서 윤리적 해이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지난 5월 CNBC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는) 단순한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서 “서비스를 받을 때 담당 직원이 직접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테크 기업 직원들이 집에서 일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재택근무를 고수하는 근로자들을 거친 어조로 비판했다.

“월급 깎여도 집에서 일할래”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사무실에 나가기를 꺼린다. 구직 포털 링크드인에 따르면, 올해 5월 전체 구직자의 47%가 원격 근무가 가능한 직업에 몰렸다고 한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가 줄어들자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셈이다.

근로자들이 재택근무를 고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원격 근로자의 48%가 원격 근로를 선호하는 이유로 “출퇴근에 드는 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아이 양육이 수월해서’(14%),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13%) 등 답변이 나왔다. 또 원격 근무 근로자의 55%는 “원격 근무를 유지하기 위해 월급 삭감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향해 가자 불만을 느낀 직원들은 저항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 앞에선 100여 명의 직원들이 모여 회사의 사무실 복귀 방침에 대해 시위를 벌였다. 앞서 지난 2월 디즈니 직원 2300여 명이 CEO 밥 아이거의 “주 4일은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는 지시에 맞서 “회사에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하는 청원에 서명하기도 했고, 지난해 8월엔 애플 직원들도 회사 정책에 반발해 서명 운동을 벌였다.

‘하이브리드’ 근무 대안 될까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사수하기 위한 결사 항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미국의 고용시장이 여전히 탄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올해 1월 실업률은 54년 만에 최저치인 3.4%로 떨어지는 등 올해 내내 3%대에 머물고 있다. IT 업계나 금융권을 중심으로 여전히 구인 수요가 넘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사 측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재택 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근무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무 형태를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애사심도 키우고 유능한 인재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용 플랫폼 파워투플라이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밀레나 베리는 “직원을 잃지 않기 위해 기업은 직원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유연성과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십 전문가인 데버라 그레이슨 리겔은 “일주일에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수를 정한다면 어느 요일에 출근할지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며 “직원들이 선택권이 있다고 느낀다면 사무실로 복귀시키는 계획은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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