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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가즈오는 일본 가나자와시에서 ‘고마스 야스케’라는 스시집을 운영하는 요리사다.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스시 장인이다. 15세부터 스시 외길을 달리다 84세가 된 2015년 “이제는 쉬겠다”며 가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2년 만에 새로운 가게를 열어 현장에 복귀했다. 80대에 은퇴했다가 90세가 되기 전에 다시 일터로 돌아간 것이다. 올해 92세가 된 모리타씨는 오전 11시 반에 문을 열어 오후 3시 30분에 닫기까지 서서 쉼 없이 일한다. 그는 현지 언론에 “스마트폰으로 더 좋은 스시를 만들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고 했다. NHK는 “여전히 우아한 칼 솜씨와 정확한 스시 모양으로 손님을 매료시킨다”고 했다.
캐나다 퀘벡주의 민원기관에서 행정보조원으로 일하는 루이즈 라로셸(80)씨는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며 주부로 살다가 45세에 취업해 35년째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나흘 출근하고 있는 라로셸씨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면 너무 행복하고 나흘을 일하면 삶이 활기차게 채워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컨트롤 타워 수장이었던 앤서니 파우치(83)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은퇴를 모르는 사나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끌더니 올해부터는 조지타운대에서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일하는 80대가 늘어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는 현상과 맞물려 80대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일터를 지키는 장년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병석에 누워 하루를 보낼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후세대 직장 동료들에게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전수하고 있다.
은퇴를 모르는 80대 ‘불퇴족’은 각국에서 늘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80년 11만여 명이었던 80세 이상 근로자가 지난해에는 69만여 명으로 42년 사이 6배 넘게 늘었다. 일본도 75세 이상 인구의 작년 취업률이 11%로 2017년과 비교해 5년 사이 2%포인트나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80대 고용률이 1982년에는 2.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8.7%로 40년 사이 8배 넘게 뛰었다.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 기업 콘페리는 ‘80세 직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근로자들의 전성기가 점점 늦춰지면서, 기업들이 정년이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하는 ‘옥토제너리언(80대를 가리키는 표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명이며, 그중 80대는 2% 수준인 약 1억6000만명이다. 하지만 30년 후인 2053년에는 80대가 세계 인구의 5.1%를 차지하며, 5억명에 도달할 것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추산한다.
80세 이상 미국 근로자 69만명
내년에 펼쳐질 미국 대선에서 주목받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80′이다. 민주·공화 양당의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80세가 넘는 나이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1942년생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81살로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 됐고, 1946년생인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당선되면 임기 후반에 80대에 접어든다. 그뿐 아니다. 올해 1월 3일까지 미국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원도 83세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1942년생)는 81세가 된 올해 다시 한번 관객들 앞에 섰다. 43세(1985년)에 찍었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다섯 번째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는 영화에서 날고, 뛰고, 굴렀다. 포드는 “안전을 위해 감독이 일부 액션 장면을 직접 하지 말라고 제지할 때마다 화가 났다”며 웃었다. 학계에서는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이목을 끈다. 그는 평생을 침팬지 보호를 위해 힘썼는데, 89세인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세계를 누빈다. 지난 7일에는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업에서도 ‘옥토제너리언’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S&P500에 상장된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80세 이상은 비율로는 1.6%이긴 해도 숫자로는 약 80명에 이른다. 그중 80세가 넘는 최고경영자(CEO)도 둘 있다. 올해 93세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글로벌 방산업체 텔레다인 테크놀러지스의 로버트 머레이비언(82) 회장이다. 특히 머레이비언 회장은 2018년까지 CEO를 지내다가 후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2021년 다시 CEO로 복귀했다.
미 노동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일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75세 이상 미국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2년에는 5.1%였지만 작년에는 10.5%로 20년 사이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을 하는 75세 이상 인구는 46만4000명에서 144만5000명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미 노동통계국은 7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30년에는 11.7%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마사 디비 미국 스탠퍼드대 장수연구센터 부소장은 “고령인 근로자가 다시 직장에 복귀해 퇴사하지 않은 근로자와 합류하는 ‘위대한 복귀’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80대 근로자들은 ‘두뇌’를 쓰는 곳에서 주로 일한다. 미국 80대 근로자 가운데 전문직 종사자가 약 15만명이다. 경영·재정·재무 직군도 종사자도 비슷하게 15만명쯤이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반면, 젊은 층이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직과 영업직에서 일하는 80대 근로자는 7~8만여 명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에는 80대 신입사원도 등장
일본은 평균 수명(84.3세)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답게 80대 근로자 수도 많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일본인의 취업률은 2012년 8.4%였는데, 지난해에는 11%로 2.6%포인트 올랐다.
올해 88세인 와카미야 마사코씨는 ‘세계 최고령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불린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하다 60세에 은퇴했는데, 그때까지 사실상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은퇴 이후에 컴퓨터를 사서 IT 공부를 시작했다. 80세에 들어서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노인용 게임인 ‘히나단(Hinadan)’을 제작했다. 80대가 게임을 프로그래밍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부르자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와카미야씨를 만나기도 했다.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와카미야씨는 “80이라는 나이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80대 근로자 채용에 적극적이다.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 기업 노지마는 원래 80세가 넘으면 회사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80살 넘어서도 일하고 싶다는 직원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2021년 80세 나이 상한선을 없앴다. 한 술 더 떠서 80대 신입사원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장에서 하루 5시간씩 일주일에 나흘간 일하면 월급으로 12만엔(약 108만원)을 받는다.
세계 최대 지퍼 제조회사인 YKK그룹도 2021년에 65세 정년을 폐지했다.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 업체는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는 이점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자도 일할 수 있는 기업의 비율이 2017년 22%에서 지난해에는 38%로 올랐다. 정년을 완전히 폐지한 기업의 비율도 3%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80대 근로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1982년의 80대 고용률은 2.2%였지만, 10년마다 약 3%포인트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18.7%를 기록했다. 80대 중에서 5명에 한 명꼴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자리 기관에는 80대 근로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용인시니어클럽의 경우 65세가 넘는 고령자 약 127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231명(18%)이 80대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상옥(82)씨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일주일에 사흘간 하루 4시간씩 책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김씨는 “나와서 일하면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용돈도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에서도 80대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코스닥 상장 기업 가운데 나이가 80세가 넘는 등기임원의 수는 2014년에는 31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20명으로 늘었다. 다만, 국내에서 80대 근로 인구가 늘어난 데 대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노인용 일자리를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기만족 위한 ‘일하는 은퇴’
80대 근로자가 증가하는 건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게 배경이다. 미국의 경우 1900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47세였는데, 1950년생의 기대수명은 68세였고, 2019년생은 79세로 늘어났다.
그러나 단지 수명이 늘어난 것만으로 일하는 80대가 증가하는 것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고령에도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고,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일손을 놓지 않는다는 분석이 많다. 메리 존슨 미 노인연맹 정책분석가는 “80대 근로자는 정신적으로 스스로 자극을 주기 위기 위해 일종의 ‘일하는 은퇴’를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스티븐 그레이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의 경우 88세에도 여전히 학교에 나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동료애와 협업, 그리고 조직 내부에 속해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일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80세에 마이애미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스튜어트 골드스타인은 “은퇴 후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사람을 자주 봤다. 일하는 동안은 정신적으로 항상 깨어 있다”고 했다.
일부 기업은 80대 근로자가 업무에 더 열정적이라는 이유로 고령자를 적극 채용한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열심히 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데 65세 이상은 4분의 3이 동의했지만, 18~29세는 61%만 동의하는 데 그쳤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택배사를 운영하는 킵 콘포르티씨는 20년 동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인 직원을 썼는데, 이번에는 70대 남성 채용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자주 결근하고, 지각하고 스마트폰 보는 젊은 직원에게는 지쳤다”고 했다.
물론 금전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에 내몰리는 80대도 적지 않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노인 빈곤율(65세 이상 중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은 2020년 8.9%에서 2021년 10.3%로 높아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20년 기준 국내 노인 빈곤율은 39%로 2010년(47%)보다는 하락했는데, 이 기간 동안 85세 이상 빈곤율은 48%에서 54%로 오히려 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가가 급등해 생활고를 느끼자 일자리에 복귀한 고령자들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팬데믹 기간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저축에 의존하는 65세 이상 주민 5600만명에게 부담을 줬다”고 분석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2%가 은퇴 후에도 금전적인 이유로 일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직장 내 세대 갈등 막아야”
80대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노동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노동력 부족 현상을 다소 해소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이민 문호를 더 개방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령의 근로자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이민자를 덜 받아도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80대들이 일터에 많아지면서 고령의 일부 고위직과 젊은 직원 사이를 융화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생기고 있다.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는 “일부 80대 임원은 고액의 연봉을 받다 보니 회사에 인건비 부담을 줄 수 있고, 연봉이 낮은 젊은 직원들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며 “반대로 회사가 젊은 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는 아이스크림이나 피자 같은 음식 때문에 80대 근로자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자들에 대한 복지 차원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경선 행복한직장생활연구소장은 “적당한 일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데다, 홀로 사는 노인의 경우 고독사를 막을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임용빈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80대는 신체적으로 성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 중 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복지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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