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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메이저리그에서 ‘이도류’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연습 때 ‘펄스 스로’라는 검은색 밴드를 오른쪽 팔꿈치에 착용한다. 펄스 스로를 차고 공을 던지면 투구 시 팔이 움직이는 속도와 공을 놓는 각도를 비롯한 갖가지 투구 관련 수치를 즉시 얻을 수 있고, 이런 데이터를 통해 팔꿈치에 걸리는 부하까지 측정할 수 있다.

이처럼 운동 과학의 힘을 빌려 오타니는 팔꿈치에 무리를 주지 않는 연습 투구 횟수를 파악한다. 2018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인 일명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오타니는 펄스 스로 덕분에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을 지키며 연습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었다. 오타니는 2021년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시즌 내내 피곤하거나 지친 적이 없었다”면서 “매일 좋은 리듬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 프로풋볼(NFL)에서 사용하는 공에 들어 있는 센서는 공의 회전 속도를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윌슨

스포츠에 접목되는 첨단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오타니처럼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선수가 부활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하면, 인간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내 신기록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감(感)과 경험에 의존하며 승부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경기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시대에 진입했다. 팬들의 경기 몰입도를 높이는 데도 IT 기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첨단 기술이 스포츠 분야를 움직이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포츠 테크 스타트업에 막대한 투자금이 몰리고, 관련 산업 규모도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US는 지난해 159억달러 규모였던 세계 스포츠 테크 시장이 연평균 18%씩 성장해 2032년에는 792억달러(1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픽=백형선

◇스마트폰으로 선수 잠재력 측정한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에서 노르웨이 간판 선수 야코프 잉게브리그스텐은 2마일(약 2.2㎞) 달리기의 종전 기록을 4초 이상 앞당기면서 26년 만에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신기록 경신의 1등 공신은 ‘웨이브라이트’라는 장비였다. 육상 트랙을 따라 1m 간격으로 설치된 전자식 조명 장치인데, 기존 세계 기록의 페이스가 초록색 빛으로 표시된다. 초록 불빛보다 앞서 달리면 세계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즉각적인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초록 불빛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뛸 수 있다. 한마디로 ‘전자식 페이스메이커’다.

이 대회에서는 여자 5000m와 남자 3000m 장애물에서도 세계 신기록이 나왔는데, 역시 웨이브라이트의 도움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인간 페이스메이커’는 특정 지점에서 지쳐 멈추지만, 웨이브라이트는 결승점까지 선수와 함께할 수 있어서 신기록 작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성적이 돈으로 직결되는 프로 스포츠에선 스포츠 테크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023′에는 스마트폰으로 유망주들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상위 순번 지명이 유력한 유망주들이 재능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이들의 생체 역학 데이터를 확보해 스카우트들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었다.

스타트업 ‘업리프트 랩스’의 모션 캡처 기술은 단 두 대의 아이폰으로 각도를 달리해 선수의 움직임을 촬영하면, AI 분석으로 투구와 타격에서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하는지는 물론이고, 보폭이나 공을 치는 타이밍 등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선수의 잠재력을 숫자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리프트 랩스의 수케마사 카바야마 최고경영자(CEO)는 “모션 캡처 기술로 선수의 부상 위험이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도 따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의균

축구도 전자성능추적시스템(EPTS)을 도입해 선수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EPTS는 선수의 유니폼 안에 입는 조끼에 붙어 있다. 선수의 활동량과 자세 변화, 스프린트 속도, 피로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고 유니폼을 벗는 세리머니를 펼친 황희찬(울버햄프턴)이 입고 있던 검은색 조끼에 EPTS가 달려 있었다.

축구에서 스포츠 테크가 널리 확산된 계기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이 빅데이터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독일은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SAP가 개발한 ‘매치 인사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선수의 위치와 속도 등 초당 수천개씩 쏟아지는 데이터를 확보해 경기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SAP는 독일을 대표하는 IT 기업이다. 당시 WSJ는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12번째 선수는 빅데이터”라고 했다.

미 프로풋볼(NFL) 선수들은 어깨에 RFID(무선 주파수 식별장치) 태그를 부착하고 뛰는데, RFID가 경기 중 선수 위치·속도·이동거리 등 260여 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AI가 이를 분석한다. 메이저리그 30개 경기장에도 12대의 고해상도 카메라가 모든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1초에 30번씩 추적하는 ‘호크아이(hawk eye)’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공의 속도, 공이 꺾이는 각도 등 60개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수집한다.

그래픽=백형선

◇경기 데이터 모아 팬들에게 건네는 NBA

스포츠 테크는 팬들을 모으고 즐겁게 해주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라 리가’가 도입한 인텔의 ‘트루뷰’라는 기술은 경기장 둘레에 38대의 고성능 카메라를 설치해 30초 길이의 3차원 영상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이 영상들은 모바일 기기로 중계를 보는 사람이 시점을 바꿔가며 여러 방향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득점 장면이나 중요한 상황을 다양한 시점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TV로 경기를 보던 시대에서 모바일로 경기를 보는 시대로 바뀌면서 스포츠 중계 분야 기술도 진화한 것이다.

경기 중계를 할 때도 데이터 시각화가 고도화되면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종 센서로 데이터를 모으고, 이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AI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NFL 중계에선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팀의 전술과 포메이션 변화 그리고 패스 성공 확률까지 화면에 보여준다.

그래픽=백형선

스포츠 테크는 프로 구단들의 수입을 늘려주는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미 프로농구(NBA)는 2020년 12월 코트 내 선수 움직임을 분석하고, 이를 팬들에게 전달하는 ‘코트옵틱스’라는 플랫폼을 도입했다.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경기당 1000만개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AI가 분석해 어떤 선수가 더블팀(두 선수가 공을 가진 한 선수를 집중적으로 수비하는 것)을 많이 받는지와 같은 예전에는 알기 어려웠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팬에게 전달한다.

이런 데이터 확보가 시청률 증가에 도움을 주고, 이것이 수익 증대로 연결되고 있다. NBA 최고기술관리자(CTO) 크리슈나 바가바툴라는 “이번 시즌에는 약 10억 건의 동영상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작년 총 조회수의 3배가 넘는 수치”라면서 “NBA 구독자 수는 올해 50%, 시청률은 52%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팬들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구단들도 나타나고 있다. 라 리가 명문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는 전 세계 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상품 구매 이력은 물론이고 팬들이 시청하는 영상이나 모바일 앱 사용 활동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마케팅을 한다.

이런 ‘기술 기반 마케팅’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실적은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 17일 레알 마드리드는 2022~2023시즌 매출이 8억4300만유로(1조2000억원)로서 2018~2019시즌 매출(7억5700만유로)을 웃돌았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AI 기반의 스마트 챗봇으로 팬들과 대화를 늘리고, AI 분석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조만간 상용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스포츠 테크 스타트업에 뭉칫돈

스포츠 테크가 주목을 받다 보니 관련 스타트업에도 투자금이 쏟아진다. 시장조사업체 스포츠테크엑스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스포츠 테크 관련 기업에 투자된 돈은 39억달러에서 2021년 114억달러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엔 82억달러로 다소 주춤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자본 시장에 돈줄이 말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게 스포츠테크엑스의 설명이다.

16조원 규모의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야구 카드 사업자인 파나틱스는 지난해 22억달러(2조8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잭팟’을 터뜨렸다. 이 회사의 야구 카드 위조 방지를 위한 대체불가토큰(NFT) 기술이 눈길을 끈 덕분이다. 심박수 데이터를 바탕으로 러닝 운동 강도를 알아서 맞춰주는 시스템을 내놓은 기업 아이핏도 지난해 3억5500만달러를 유치했다.

그래픽=백형선

축구 미디어 앱 ‘원풋볼’, 스프츠·공연 좌석 중개 서비스인 ‘시트긱’, AI 기반 무인 스포츠 경기 중계 시스템 ‘픽셀롯’, 클라우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AI가 하이라이트까지 만들어주는 ‘베오’ 등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픽셀롯과 베오는 실내 사이클링 시뮬레이션 앱 운영회사 ‘즈위프트’에 이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대열에 곧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월가는 기대하고 있다.

투자은행 드레이크 스타의 모히트 파릭 최고회계책임자(CFA)는 “올해도 자본 시장에 신규 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스포츠 테크에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에 장착한 센서로 정확한 판정

스포츠 테크는 정확한 판정으로 경기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도 해낸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이란과 웨일스의 경기에서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의 패스를 받은 알리 골리자데가 웨일스의 골문을 갈랐다. 이란 선수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곧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비디오 판독 결과 아즈문의 패스를 받기 전 골리자데의 어깨가 웨일스 수비수보다 살짝 앞서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정확한 판정은 심판이 눈으로 보기 어려운 찰나의 순간을 기술을 활용해 판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픽=백형선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에 탑재된 관성측정센서(IMU)는 공의 이동 속도와 방향, 중력, 가속도 등의 데이터를 모아 비디오 판독실로 전달했다. 여기에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12개의 카메라가 선수들의 발끝, 무릎, 어깨 등 신체 부위 29곳의 위치데이터를 초당 50번씩 수집해 선수의 정확한 위치정보를 파악했다. 이런 데이터들을 모아 오프사이드 판독 시스템(SAOT)이 정확한 판정을 이끌어냈다.

‘오심도 야구의 일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야구에서도 컴퓨터가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2019년 제휴를 통해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에서 처음으로 로봇 심판을 테스트했고, 2021년 로봇 심판을 마이너리그 싱글A에 도입했다. 작년엔 트리플A 일부 경기에도 로봇 심판을 테스트했다. 메이저리그도 로봇 심판 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테니스, 농구, 배구에서도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갔는지를 확인하는 호크아이 시스템을 통해 공정성을 높이고 있다.

◇'기술 도핑’ 논란 가열

기술이 기록을 당겨주면서 약물에 의존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빗대 스포츠 테크가 ‘기술 도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케냐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는 2019년 비공식 경기에서 1시간 59분 40초 만에 42.195㎞를 주파해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2시간 벽을 깼다. 당시 킵초게는 나이키가 특별 제작한 운동화를 신었는데, 밑창 중간에 탄소섬유로 만든 판이 3개 들어 있어 마치 스프링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운동화보다 뛰는 힘을 10%가량 높여주는 만큼 이 신발이 없었다면 2시간을 깨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이후 세계육상연맹은 도로에서 펼쳐지는 마라톤, 경보 경기에서 밑창 두께를 40㎜ 이하로 하고 탄소섬유 판을 1개까지만 넣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수영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수중 저항을 크게 줄인 폴리우레탄 소재의 전신 수영복 덕분에 세계 신기록이 양산되자 세계수영연맹(FINA)은 2010년부터 국제대회에서 전신 수영복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술 도핑 논란에 대해 웨이브라이트의 운영 책임자 브램 솜은 뉴욕타임스에 “인간이 맨발로 달리다가 신발을 신었고, 이후에 스파이크로 진화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지금은 웨이브라이트가 있지만 50년 후에는 (그보다 성능이 향상된) 또다른 장비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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