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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이스트 할렘 117번가의 이스트 리버 플라자. 이곳은 인플레이션에 짓눌린 뉴욕 시민들이 발품을 팔아 찾아오는 유통 격전지다. 대형 할인점 ‘타깃(Target)’과 ‘코스트코(Costco)’ 매장이 나란히 붙어있다. 유통 공룡들은 여기서 매일 최저가 전투를 치른다. 그런 이스트 할렘에서도 물건을 가장 싸게 파는 곳은 독일 수퍼마켓 체인 ‘알디(ALDI)’다.

알디는 지난 4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유통 체인이다. 지난해 미국 내 매출은 182억달러(약 24조원)에 달한다. 점포 수로 따지면 2400개로, 월마트(4600개)·크로거(2800개)에 이은 미국 3위의 유통 기업으로 올라섰다. 알디는 지난달 미국 남부에서 400개 점포를 운영하는 마켓 체인 두 곳을 추가 인수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폐점하는 ‘소매업 재앙 시대’를 뚫고 미국에서 질주 중이다. 전 세계에서는 20국에 걸쳐 1만2000여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독일계 할인마트 '알디' 매장에 있는 로고./AFP 연합뉴스

독일 최대 유통 재벌 알브레히트 가문이 소유한 알디는 1946년 전후 독일에 등장한 첫 할인점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아 저렴한 상품에 목을 매는 독일인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주며 빠르게 성장했다. 공격적 초저가 전략으로 미국 유통업계에서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키운 알디의 성공 비결을 WEEKLY BIZ가 들여다봤다.

◇오직 가격에만 집중한다

알디는 저렴한 가격을 사명으로 삼는다. 지난달 24일 뉴욕 이스트 리버 플라자 알디 매장에서 스테이크용 쇠고기 등심 한 덩이는 14.94달러였다. 바로 옆 타깃에서는 20.24달러였고, 약 2km 떨어진 식료품 체인 홀푸즈 마켓에선 22.99달러였다. 이날 14개 주요 식자재를 최저가 상품으로 골랐더니 알디 44.85달러, 타깃 54.56달러, 홀푸즈 67.23달러였다.

알디가 눈에 띄게 싸지만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알디는 오직 가격에만 집중하는 ‘노프릴(no-frill·장식없음) 전략’을 쓴다. 친절한 서비스와 안락한 분위기가 없는 ‘독일식 무뚝뚝함’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한다. 쇼핑 카트를 정리하는 직원이나, 물건을 포장해주는 직원이 없다. 고객이 직접 25센트 동전을 넣어 대여해야 하고, 장바구니는 따로 구입해야 한다. 카트 분실을 막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한국과 유럽에선 익숙하지만, 미국에선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이뿐만 아니라 상품을 가지런히 진열하는 사람도, ‘마감 세일’을 외치는 사람도 없다. 물건은 상자째 선반 위에 쌓여 있고, 계산 시간 단축을 위해 바코드가 여러 군데 덕지덕지 붙어있다. 계산원은 일반 식료품점에 비해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품을 스캔한다. 점포당 평균 6명이 근무하는데, 낮에 매장을 지키는 직원은 단 2명 뿐이다. 인근 마트에 비해 영업 시간이 6시간 정도 짧다. 저작권료를 아끼기 위해 매장에선 음악도 틀지 않는다.

알디는 신선한 식품을 파격적인 가격에 내놓기 위해 90% 이상 산지에서 직매입한 뒤 자체 브랜드(PB·private brand)를 붙여 판매한다. 미국과 독일에서 활동해온 경영 컨설턴트 수잔 최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따져가며 한 푼이라도 더 깎는 독일식 깍쟁이 소비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공간이 알디”라며 “미국인들이 알디에서 색다른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알디 매장은 작다. 평균 면적은 1100㎡(330평)로 월마트(1만6500㎡)나 코스트코(1만3500㎡)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그만큼 취급 상품 수가 적다. 알디에는 1400종의 상품이 있는데, 10만종을 취급하는 월마트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하지만 평범한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의 상품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우유가 월마트에는 217종 깔려 있고, 알디에는 14종뿐이다. 특별한 우유가 아닌 ‘그냥 우유’가 필요한 사람에겐 14종도 다양한 선택지다.

작은 매장은 인건비·임차료·재고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있지만, 소비자의 동선도 줄여줄 수 있다. 다른 대형 마트처럼 1만보씩 걷지 않아도 된다. 알디 팬 블로그를 운영했던 다이앤 영페터는 CNN에 “나는 바쁜 엄마라 떼쓰는 애들을 데리고 대형 마트를 탐색할 시간이 없다”며 “알디는 순식간에 들락날락할 수 있고, 50종류나 되는 살사 소스를 일일이 살펴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벤츠 타고 알디 간다

지난해부터 미국에 몰아친 높은 인플레이션 파도 역시 알디의 성장을 도왔다. 부유층도 고물가에 지쳐 알디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의 알디 주차장에는 고급차인 벤츠·포르셰도 눈에 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계란 한 상자에 8달러를 내는 건 부유한 사람에게도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상위 1% 소비자마저 싼 물건을 찾아 할인점을 샅샅이 뒤진다”고 했다. 지난 6월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모닝컨설트가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연소득 10만달러 이상 응답자 가운데 45%가 저가 할인점을 찾겠다고 응답했다.

알디는 최근 아일랜드 치즈, 프랑스 브리오슈, 콤부차, 글루텐 프리 제품, 트러플 소금 같은 수입 품목을 강화하고, 교외 중산층 거주지에 잇따라 매장을 열었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알디의 핵심 고객층은 평균 대비 소득·교육 수준이 높다. 유럽에선 고소득 소비자가 저렴한 상품을 찾는 현상을 가리킨 ‘알디화(Aldisierung)’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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