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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시(市)에 인도네시아 발리풍 스파(spa)가 문을 열었다. 가운 차림 남녀가 노천탕을 즐기는 이 건물 입구에 이런 간판이 붙어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운영센터.’ 이 사우나가 있는 자리가 몇 년 전까지 한국으로 치면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이 사무 공간으로 쓰던 곳이라는 얘기다. 업무 공간이 공실(空室)이 되자 사우나로 바꿔 ‘빈 사무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사무실을 개조한 스파./발리안스프링스

공실이 넘쳐 신음하는 미국과 유럽의 업무용 오피스 업계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 빈 사무실이 속출하자 다양하게 용도를 바꿔 활로를 찾는 중이다. 부동산 서비스업체 CBRE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18.2%로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4분기(12.2%)보다 6%포인트 높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지역 공실률은 역대 최고치인 31.6%에 달했다.

건물주들은 업무용 사무실을 아파트, 데이터센터, 농장, 양조장, 물류센터, 학교 등으로 잇따라 개조하고 있다. 눈에 띄는 트렌드는 생명공학 실험실로 개조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근년에 생명공학 분야에 기록적인 투자금이 몰리며 연구 공간에 대한 수요가 치솟자, 발 빠른 건물주들이 일반 사무실을 실험실로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실험실은 임차료가 비싸고, 원격 근무가 어려워 공실 위험이 낮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오피스 빌딩이 실험실로 바뀐 모습. /미국 포시스연구소

런던 킹스크로스에 있는 오피스 빌딩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 국부펀드는 이 건물 안에서 패션 기업 테드 베이커가 쓰던 사무실을 올 연말까지 실험실로 바꿀 예정이다. 미국에서도 신문사 보스턴글로브의 옛 사무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비어있는 위워크 사무실, 샌프란시스코의 의류 회사 올드네이비 옛 본사가 실험실로 잇따라 탈바꿈했다.

아파트로 개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건축업계에 따르면 사무실 가운데 30% 정도가 전기·배관·환기·방재 시스템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뉴욕의 건축회사 엠데스(MdeAS) 아키텍츠의 한 임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요즘 모든 주요 개발 업체 책상 위에는 사무용 빌딩의 아파트 전환 검토 자료가 놓여있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자동차협회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한 샌프란시스코 아파트. /미국 '100 Van Ness' 아파트

이외에도 최근 미국 포틀랜드의 대형 빌딩인 ‘유니언 뱅크 타워’에는 데이터 센터가 입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시청 맞은편 빌딩에 바질·토마토 키우는 ‘스마트 농장’이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다. 공실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사무실 용도 변경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빈 사무실을 개조한 실내 농장./에리어2팜

필사적으로 빈 사무실을 변신시키려고 애쓰는 이유는 업무용 부동산의 몰락이 지역 경제에 연쇄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어틀랜틱은 “사무실이 무너지면 건물주, 은행, 지방정부 세수,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 주변 상권과 대중 교통 이용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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