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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운동화 ‘온(On)’과 미국 운동화 ‘호카(Hoka)’는 공통점이 있다. 두 브랜드는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발이 편한 기능성 러닝화를 만든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찾는 신발이었다. 그러다 2년 전쯤부터 Z세대에게도 ‘희귀하고 쿨한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온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68.7% 뛰었고, 호카도 58.5% 늘어났다.

지난 10여년 간 '아빠 운동화' 취급을 받았던 온(On)과 호카(Hoka) 운동화가 최근 '못생긴 운동화' 유행과 함께 2000년대생 사이에서 '희귀하고 쿨한 브랜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리뷰어 '클로에 하마드' 홈페이지·호카 인스타그램

온과 호카 열풍이 시작된 진원지는 세계 최대 운동화 리셀(re-sell·재판매) 플랫폼 ‘스탁엑스(StockX)’다. 한정판 상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중개 업체다. 리셀 시장 개척자이자, 세계 운동화 산업 트렌드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공간이다. 2015년 설립된 스탁엑스는 이듬해 운동화 거래 플랫폼을 띄웠다. 이후 1350만명이 한정판 상품 4000만건을 거래했다. 기업 가치는 38억달러(약 5조700억원)에 달한다.

스탁엑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WEEKLY BIZ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렉 슈워츠(42) 스탁엑스 공동창업자는 “우리는 에어 조던 운동화 매매에 최초로 주식 시장의 작동 방식을 적용했다”며 “온라인 명품 거래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렸다”고 했다.

"창업 전까지 갈색 로퍼 한 켤레만 신었다"는 그렉 슈워츠 스탁엑스 공동창업자 겸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이제 한정판으로 가득한 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스탁엑스

◇운동화를 주식처럼 거래한다

스탁엑스의 지향점은 ‘운동화의 나스닥 시장’이다. 슈워츠는 “성공의 비결은 주먹구구였던 리셀 시장에 주식 거래를 접목시킨 발상에서 나왔다”고 했다. 이곳에선 온갖 한정판 운동화를 실제 주식처럼 거래한다. 실시간 입찰·판매 희망가가 일치하면 익명 거래가 일어나고, 플랫폼은 중개 수수료(7~9%)를 취한다. 요즘 하루 평균 거래량은 2만건에 육박한다.

슈워츠는 “스탁엑스는 다른 온라인 상거래업체와 달리 구매자와 함께 판매자도 선택권이 있는 ‘양면시장’”이라며 “구매자가 판매자를 신뢰할 수 없거나 가격대가 천차만별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가격 변동률, 평균 거래가를 쉽게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스탁엑스는 판매자가 보낸 물건을 검수한 뒤, 다시 구매자에게 보내준다. 사이트에선 시세와 거래 동향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운동화뿐 아니라 명품 가방, 포켓몬 카드, 게임기 등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한다.

그래픽=김의균

한정 상품을 좇는 욕망의 시장이 펼쳐지자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스탁엑스가 출범한 지 8개월 만인 2016년 9월 3일 나이키는 한정판 운동화 ‘조던1 브레드(Bred)’를 출시했다. 슈워츠는 “이 운동화로 하루 평균 40~60켤레에 불과하던 거래량이 수백 켤레로 치솟고, 리셀 가격도 7~8배 뛰었다”고 했다. 이듬해 11월 아이다스 ‘이지’ 운동화 출시일에는 배송량 폭증으로 스탁엑스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택배 업체 UPS 서비스가 마비됐다.

슈워츠는 “스탁엑스는 운동화 시장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자부했다. 2021년 이른바 ‘범고래 대란’ 역시 스탁엑스를 통해 불이 붙었다. ‘범고래’는 흰색과 검은색이 배색된 나이키 ‘판다 덩크 로우’ 신발의 한국식 별명이다. 슈워츠는 “판다 덩크 로우는 스탁엑스에서 지금까지 50만켤레 거래된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억만장자·창업가·운동화광의 조합

슈워츠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 회사가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혁신적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2015년 NBA(미 프로농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구단주인 댄 길버트는 당시 일정관리 앱 회사를 운영하던 슈워츠에게 ‘운동화 주식 시장’ 얘기를 꺼냈다. 슈워츠는 “길버트가 이베이에서 운동화 사고 파는 아들 덕분에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고 했다.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업체 ‘퀴큰 론스(Quicken Loans)’의 댄 길버트(61) 회장은 2015년 그렉 슈워츠와 스탁엑스를 공동 창업했다. 길버트 회장은 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팀 구단주이자, 워런 버핏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의 사업 파트너다. /스탁엑스

운동화 리셀 시장은 팬들이 굳건하고, 수요가 확실했다. 슈워츠는 “1990년대에도 운동화 매장이 문 열기 전부터 대기하는 극성 소비자가 많았다”며 “스마트폰 시대엔 소셜 미디어에서 검증 안 된 한정판을 웃돈 붙여 파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었다”고 했다. 공동 창업에 나선 이들은 IBM 직원으로 운동화 정보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수집광 조시 루버(45)를 접촉했다. 슈워츠는 “길버트 회장이 루버를 NBA 경기에 초대하고, 디트로이트로 납치하듯 데려와 사흘간 설득했다”고 했다. 억만장자·연쇄 창업가·운동화광은 그렇게 손을 잡았다.

◇가짜 걸러내는 게 가장 큰 도전

슈워츠는 “스탁엑스 이용자의 60%는 35세 이하”라며 “이들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희소성이 있는 제품을 갈망한다”고 했다. ‘희귀 아이템’으로 인정받는 운동화는 수백만원까지 웃돈이 붙는다. 그렇다보니 가짜 물건도 늘었다. 슈워츠는 “가짜 상품은 리셀 시장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도전 과제”라며 “철저한 정품 인증을 거쳤음에도 실수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에만 세계 13개 도시 인증센터에서 1억달러 상당 33만개 위조품을 걸러냈다”고 했다.

2016년 2300달러에 출시 된 나이키 에어 맥 백투더퓨처는 2022년 스탁엑스에서 7만6925달러에 낙찰됐다. /나이키

요즘은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 영향으로 운동화 리셀을 둘러싼 거품이 꺼져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탁엑스에선 요즘 ‘생계형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그동안 수집한 운동화를 다시 내놓는다는 얘기다. 슈워츠는 “거시 경제 요인과 공급망 변화에 따라 가격이 출렁이는 사이클을 수차례 겪었다”며 “매물이 늘어나면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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