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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그들의 차를 보셨나요?” 일론 머스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2011년 블룸버그TV 인터뷰 도중 기자가 테슬라의 잠재적 경쟁자로 중국의 비야디(BYD)를 언급하자 이런 반응을 보였다.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며 공개적으로 비웃은 것이다.

12년이 지난 올해 머스크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지난 1월 실적 발표 때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꼽아 달라는 질문을 받고 “중국의 어떤 회사”라고 답했다. 이름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비야디를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과거에 비야디를 비웃은 것도 정정했다. 지난 5월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비야디를 비웃은 인터뷰는) 몇 년 전 일이다. 그들의 차는 요즘 매우 경쟁력 있다”고 했다.

X(옛 트위터)에서 '실리콘밸리 테슬라 차주모임'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12년 전 영상을 첨부하며 비야디에 대한 입장을 묻자(위), 지난 5월 일론 머스크는 "그들의 차는 매우 경쟁력 있다"고 트윗을 올렸다(아래). /X 캡처

머스크가 괄목할 경쟁 상대로 인정한 것처럼 요즘 비야디는 폭풍 질주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전례 드문 속도로 판매량이 늘고 있다. 2020년 41만대를 판매한 비야디는 2021년 73만대, 2022년 186만대를 팔았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25만대를 팔았다. 비야디의 올 상반기 매출(약 47조3700억원)은 이미 2021년 한 해 매출(약 39조3600억원)보다 많다.

그래픽=김현국

비야디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면서 테슬라의 독무대였던 세계 전기차 업계가 테슬라와 비야디의 ‘투 톱(G2)’ 체제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비야디 점유율(플러그인하이드브리드 포함)은 2019년 9.1%에서 올 상반기 20.9%로 두 배 가까이로 뛴 반면, 테슬라는 같은 기간 14%에서 14.4%로 현상 유지 수준에 그쳤다. 비야디 매출은 2021년에는 테슬라의 55% 수준이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74% 수준이 됐다. 테슬라를 따라잡는 움직임에 가속도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물론 비야디는 아직 순수 전기차 매출 가운데 해외 비율이 10%에 그치는 사실상 내수 기업이며, 테슬라는 전 세계에 걸쳐 비야디가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브랜드 가치를 쌓았다. 시가총액으로는 테슬라(약 1143조원)가 비야디(약 127조원)의 9배에 달한다.

그래픽=김의균

이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비야디가 워낙 빠르게 부상하는 데다,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을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야디는 올해 상반기에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합친 전체 신차 판매량에서 세계 10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 메이커’에 진입했다. 2021년에는 20위 밖이었지만 지난해 16위로 올라섰고 올해도 껑충 뛰어 10위까지 올라선 것이다. 판매량으로만 보면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를 제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비야디의 비약적인 성장을 분석하며 “’중국의 테슬라’가 세계를 향해 나온다”고 했다. 비야디가 어디까지 전진했는지, 그리고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WEEKLY BIZ가 들여다봤다.

◇판매량 글로벌 ‘톱10’ 진입

지난 5일 독일 뮌헨에서 ‘IAA모빌리티2023′에서 비야디 전시 공간을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 /AFP 연합뉴스

지난 5일부터 닷새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최대 모터쇼 ‘IAA모빌리티2023′에서는 단연 비야디에 관심이 집중됐다. 수백명의 각국 기자들이 비야디의 전시 공간을 찾았다. 6개 전기차 모델을 선보인 비야디의 전시 공간은 메르세데스 벤츠보다 배 이상 컸다. 마이클 슈 비야디 유럽 대표는 “자동차를 만든 지 20년밖에 안 됐지만 작년 186만대나 팔았다”고 자랑했다.

비야디는 내연기관 차량을 뺀 신에너지 차량 판매량으로는 이미 세계 1위에 도달했다. 올해 2분기의 경우 비야디는 70만244대를 팔았고, 테슬라는 46만6140대를 판매했다. 판매량으로만 치면 테슬라가 비야디의 3분의 2라는 것이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해 판매량이 테슬라는 83% 증가했는데, 비야디는 95% 늘어나며 테슬라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11일 중국 동부 타이창항 터미널에 선박에 선적하기 위해 쌓여있는 비야디 자동차들. /AFP연합뉴스

실적을 발판으로 비야디는 덩치를 키우고 있다. 비야디와 계열사 직원 수는 작년 기준 57만명인데 2020년과 비교해 2년 만에 2.5배로 늘었다. 테슬라(약 13만명)보다 4배 이상 많다. 연구시설 11곳에 있는 연구원만 7만명에 달한다. 비야디는 올해 3만명 넘는 신규 인력을 채용 예정이다. 기아자동차 직원 수가 약 3만5000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비야디는 무서운 속도로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비야디가 매출, 판매량, 직원 수 같은 외형만 커진 게 아니다. 이익은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내실을 다지고 있다. 비야디 순이익은 2021년 5542억원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3.6배로 뛴 1조9930억원을 기록했다. 올 하반기도 상반기 수준의 실적을 내면 산술적으로 2년 만에 순이익이 7.2배 증가하게 된다는 얘기다. 영업이익률은 올해 2분기 기준으로 비야디 18.7%, 테슬라 9.6%로 이미 비야디의 수익 구조가 더 탄탄하다.

이런 판매량 통계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포함하기 때문에 PHEV를 생산하지 않는 테슬라에 불리하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만 보더라도 비야디가 테슬라를 넘어설 기세다. 올해 2분기 비야디의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35만2100대다. 이는 테슬라의 75% 수준이지만, 작년 2분기에 70%였던 것과 비교하면 빠른 속도로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올해부터 비야디가 월 10만대 이상의 순수 전기차를 팔기 시작한 만큼 PHEV를 빼고도 비야디가 가까운 미래에 판매량에서는 테슬라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비야디와 테슬라의 양강 구도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PHEV 포함)에서 두 회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2021년 23%에서 올 상반기 35%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같은 기간 상하이자동차(10.2%→7.5%), 폴크스바겐(11.2%→6.7%), 스텔란티스(5.4%→4.7%), 현대•기아차(5.4%→4.3%)의 입지는 모두 좁아졌다.

◇배터리•모터•ECU 모두 자체 조달

그래픽=김현국

비야디는 다른 자동차 회사가 따라가기 쉽지 않은 경쟁력을 여럿 갖추고 있다. 먼저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차 대중화 시류를 탔다. 지난 6월 비야디는 소형 SUV 위안프로를 약 1800만원에 내놓으며 ‘전기차 1000만원대’ 시대를 열었다. 테슬라 엔트리 차종인 모델3를 중국에서 사려면 4700만원 줘야 하는 것과 비교해 훨씬 싸다. 모델3와 사양이 비슷해 ‘테슬라 킬러’로 불리는 비야디의 세단 (Seal)은 모델3보다 최대 30% 저렴하다. 비야디가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점점 향상되고 있어 이른바 ‘가성비’를 누릴 수 있다는 호평이 늘고 있다.

'테슬라 킬러'로 불리는 비야디의 전기 세단 씰(Seal). /뉴스1
테슬라 모델3. /AFP연합뉴스

비야디는 수직 계열화로 안정적인 부품 공급 체계를 갖췄다. 전기차의 3대 핵심기술이라고 불리는 배터리, 모터, 전자제어장치(ECU)를 모두 자체 조달하는 자동차 메이커는 비야디가 유일하다. 창업자 왕촨푸(王傳福) 회장은 내부 연구인력이 직접 개발한 제품만 생산•판매한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배터리를 비롯해 부품까지 자체 제작을 할 수 있어야 외부 환경으로 인한 타격을 덜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야디는 배터리 업체로 출발했다. 비야디의 성장 속도가 가팔라진 데는 자체 제작 배터리 성능이 크게 개선된 것이 한몫했다. 비야디의 주력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저렴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주행거리가 짧다는 약점이 있었다. 비야디는 이를 2020년 ‘블레이드 방식의 배터리’라는 신기술로 해결했다. 칼날처럼 얇은 배터리셀을 촘촘하게 박아 같은 부피에 더 많은 배터리셀을 넣어 주행거리를 늘렸다. 지난해엔 배터리가 바로 차체 바닥이 되는 셀투바디(CTB)를 적용한 모델을 내놓았다. 작년부터는 테슬라도 비야디의 배터리를 공급받아 유럽의 저가형 트림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도 비야디 배터리의 성능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 칼날처럼 얇은 배터리셀을 촘촘하게 박아 같은 부피에 더 많은 배터리셀을 넣어 주행거리를 늘렸다. /비야디

과감하고 빠른 의사 결정도 돋보인다. 작년 3월 비야디는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2021년에 비야디의 가솔린 차량은 14만대가 팔리며 전체 사업의 20% 가까이 차지했는데, 전기차 시대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과감히 포기했다.

◇배터리 연구원 출신 CEO 왕촨푸

비야디의 급성장과 맞물려 창업자 왕촨푸 회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왕 회장은 머스크와 달리 실적 발표 같은 공식 행사에만 최소한으로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올해 57세인 왕 회장은 안후이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조실부모한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후난성에 있는 중난대 야금물리화학과를 나와 1990년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배터리 분야 연구원으로 일하다 1995년 사촌 형으로부터 250만위안(약 4억5500만원)을 빌려 휴대전화용 배터리 제조사 비야디를 창업했다.

선전시의 낡은 차고에서 직원 20명과 함께 시작한 왕 회장은 밤낮없이 일했다. 딸이 태어났을 때 일에 몰두하느라 며칠 후 집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비야디는 창업 2년 만에 매출 1억 위안을 넘기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고, 창업 3년 만인 1998년에는 세계 니켈 카드뮴 배터리 시장의 40%를 차지했다. ‘배터리왕’으로 불린 왕 회장은 2003년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해 전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

비야디의 왕촨푸(왼쪽) 회장이 투자자인 미국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미국에서 만나 기념품을 주고 받고 있다. 워런 버핏의 투자 이후 비야디는 폭풍 성장했다. /중국 남방망(南方網)

왕 회장은 전기차 시대가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2009년부터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풀며 정책적으로 밀어주자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거침 없이 성장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1360만대)의 58%가 중국에서 팔릴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차 판매 3대 중 1대가 전기차다. 전기차 비율이 10% 내외인 미국, 유럽, 한국에 비해 크게 앞선다. 올 들어 7월까지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무려 433만대에 달하는데, 그중 35%가 비야디다. 왕 회장은 올해 블룸버그 집계로 재산 약 25조원을 보유한 세계 92위 부자다.

왕 회장은 품질과 기술에 집착하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술자들이 자본이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해외 인재 영입에도 욕심이 많다. 유럽 자동차업계 출신 인력들이 비야디의 연구개발을 이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 회장은 ‘비야디는 싸긴 한데 못생겼다’는 혹평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6년 아우디 수석 디자이너 출신 볼프강 예거를 영입했다. 예거는 ‘드래건 페이스’라고 불리는 비야디의 전면 디자인을 선보였고, 예거가 합류한 이후 비야디는 ‘디자인 경영’을 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테슬라 아성 무너뜨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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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디는 아직은 내수형 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중단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과 베트남에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남미에서도 브라질에 공장을 세워 교두보로 삼을 계획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2030년까지 점유율 4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동남아에서는 이미 비야디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비야디가 홈그라운드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석권하기 시작했다”며 “반세기 넘게 일본 업체들이 가솔린차 생산 체계를 구축해온 동남아 지역에서 비야디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위기감을 표시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중국 1위 전기차 회사인 비야디(BYD)와 함께 덴자(Denza)라는 고급 브랜드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중국 밖 시장을 뚫기 위한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에 비야디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테슬라를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도 해외 시장에서의 성패에 달려 있다. 비야디는 우선 유럽 시장을 겨냥한다. 전기차 시장이 중국 다음으로 유럽이 큰 데다, 유럽에서는 전체 자동차에서 중국산 비율이 8%에 그치고 있어 판매를 확대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달 초 IAA모빌리티쇼에서 비야디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한 고급 브랜드 ‘덴자’의 승합차 D9을 선보였다. 테슬라 모델Y를 겨냥한 브랜드 덴자의 가격대는 5000만~7000만원 선이다.

비야디는 미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비야디가 아직 판매를 개시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지만 결국은 진출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판매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비야디에) 시장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미래모빌리티사업단장은 “테슬라와 비야디 양강 체제는 향후 3년은 갈 것”이라면서도 “브랜드 가치가 더 높은 테슬라가 여전히 판매량을 늘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비야디가 세계 시장에서 가성비만으로 승부하는 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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