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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을 넘어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다’. 최근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지난 2분기 미 기업 실적 발표에서 체중 감량 약물에 대한 언급이 1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며 이렇게 표현했다. AI가 자사 사업과 미래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듯, 위고비 같은 비만치료제가 가져올 기회와 위협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이 비만인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6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내놓은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카밀라 실베스트 수석부사장은 지난 7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비만 인구가 8억1300만명에 달한다”며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노보노디스크뿐 아니라 일라이릴리 같은 다른 대형 제약사도 잇달아 비만치료제 개발에 나서면서 비만 인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중이다.
개별 기업 입장은 조금 복잡하다. 비만치료제 복용 인구가 늘어나면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설탕이 가득 든 음료와 기름진 음식을 파는 회사는 계속 번창할까. 비만치료제 열풍이 거세지면서 제약 업계를 넘어 다른 업계의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과자·맥주 업체 타격할 것”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비만 치료제가 식품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비만치료제를 복용하는 300명을 설문조사해 이들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덜 먹게 됐는지 분석했다.
설문조사 참여자의 72%는 ‘케이크·사탕 같은 단 식품을 이전보다 덜 먹는다’고 했다. 탄산음료·설탕 음료(70%), 쿠키·제과(69%), 술(66%), 짠 스낵(67%)을 줄였다는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반면 과일·야채(7%), 체중관리용 식품(14%), 가금류·생선(14%) 섭취를 줄였다는 응답자는 비교적 소수였다.
위고비는 음식을 먹으면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한 작용을 하게 한 약물로, 복용 시 식욕이 떨어지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배가 부르도록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하고 이전보다 음식을 덜 먹게 하는 것이다. 일라이릴리에서 개발 중인 비만치료제도 성분은 다르지만 원리는 유사하다. 모건스탠리는 “이런 비만치료제는 식욕을 감소시켜 하루 칼로리 섭취량을 20~30% 줄일 수 있다”며 초콜릿 업체 허시, 제과업체 몬데레즈인터내셔널 등이 상품군을 재편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류업체 역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해당 조사에서 비만치료제 복용자의 거의 4분의1이 술을 완전히 끊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사업 비중이 큰 콘스텔레이션브랜즈, 보스턴비어, 몰슨쿠어스가 가장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 CBS방송은 위고비·오젬픽을 투약한 환자 중 일부가 알코올, 니코틴 등 중독성 강한 물질에 욕구를 덜 느끼는 증상을 겪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패스트푸드점에 이전보다 덜 간다고 답했다. 피자 가게(74%), 패스트-캐주얼 식당(70%), 캐주얼 다이닝 식당(61%) 등에 덜 간다는 응답자도 많았다. 특히 피자와 도넛, 치킨 체인점처럼 메뉴를 쉽게 바꾸기 어려운 곳일수록 매출 둔화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모건스탠리의 레스토랑 분석가 브라이언 하버는 “식당은 음식뿐만 아니라 편리함·경험을 함께 파는 곳이며, 많은 체인점이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경제 전문지 배런즈는 “미국인의 ‘기름지고 단 음식’에 대한 사랑이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쪽이 항상 이겼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비만치료제 언급 두 배 증가”
비만치료제 열풍이 거세지면서 기업들이 실적 발표에서 비만치료제를 언급하는 횟수도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여름 실적 발표 자리에 선 최고경영자(CEO)들은 비만치료제 열풍이 자신들을 도태시키지 않았고 체중감량 신약의 혜택을 어떤 식으로든 공유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고 했다.
다이어트 식품을 만드는 메디패스트는 올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7% 감소했다. 메디패스트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짐 말로니는 “GLP-1 약물과의 경쟁, 인플레이션 압력,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변경 탓에 고객 확보에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다이어트 보조제를 파는 허벌라이프의 마이클 존슨 CEO는 “우리가 GLP-1 약물에 대한 잠재적 수요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고 했고, 다이어트 제품을 유통하는 심플리굿푸드의 조 스칼조 CEO는 “비만치료제 복용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보완책으로 우리 제품을 마케팅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기 업체도 영향을 받고 있다. 비만 수술 로봇을 만드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비만약에 대한 관심 증가로 비만수술 로봇 성장세가 둔화했다”고 했다. 당장 매출에 타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수면무호흡치료 의료기기, 무릎 인공관절 수술기기 업체 등도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비만 인구가 줄어들면 비만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도 줄어들고, 이에 따라 해당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월마트처럼 약국을 보유한 소매업체와 약국 전문 체인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 CEO는 지난 8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 “GLP-1 약물 인기가 오르면서 식품, 소모품, 건강·웰니스 부문이 매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약국 체인 라이트 에이드는 값비싼 비만치료제 판매량이 증가함에 따라 올해 연간 수익 전망을 올려 잡았다.
”식습관 개선” 강조하던 다이어트 업체의 변심
현재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다이어트 업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4월 “1980년대 에어로빅 비디오부터 최근의 체중 관리용 스마트폰 앱까지, 다이어트 산업은 운동과 식단 관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비만약의 인기가 치솟으며 전통적인 다이어트 업계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고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63년 설립된 미 최대 체중관리 업체 ‘웨이트 워처스’다. 웨이트 워처스는 창립 이래 수십년간 “살을 빼는 방법은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뿐”이라고 강조해왔다. 1990년대 중반 펜플루라민과 펜터민을 결합한 이른바 펜-펜(fen-phen)이라는 다이어트 처방이 개발됐을 때도 경쟁사들과 달리 열풍에 동참하지 않고 기존 사업 기조를 이어갔다. 1997년 FDA가 “이 약물이 심장 판막에 손상을 일으킨다”며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오히려 최종 승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비스 이용자 수가 급감하자 웨이트 워처스는 회원들이 함께 모여 다이어트 경험을 공유하던 오프라인 지점 수천개를 폐쇄했고, 지난봄 GLP-1 약물을 처방하는 원격 의료 업체 시퀀스도 인수했다. 위고비 열풍에 결국 굴복한 것이다. 웨이트와처스 기존 회원들은 “회사가 철학을 급격하게 바꿨다”며 충격을 표했다.
체중감량 스타트업 ‘눔’도 지난 5월 비만치료제 처방을 제공하는 새 서비스를 출시했다. 눔의 의학 책임자인 린다 아네가와 박사는 “우리는 항상 과학을 따라왔고 의학계가 비만을 질병으로 보기 시작한 이상 동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게으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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